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아무것도 안하고 퇴원하네요

슬기엄마 2012. 11. 30. 13:12

 

원래

말이 없는 그녀.

 

오늘 치료받을 수 있겠어요?

컨디션 괜찮나요?

 

하면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했다.

 

난 그동안 수개월 동안 외래에서 그녀를 위해 줄기차게 항암제를 처방해 왔다.

 

가끔 찍는 그녀의 가슴 엑스레이를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란다.

숨은 잘 쉬고 사시나...

폐전이가 심한데, 환자는 그런 폐에 적응을 해서인지 그럭저럭 살만하다고 하신다.

많이 움직이면 숨이 좀 차기는 하지만,

워낙 움직이지 않고 지내니 호흡곤란 때문에 힘들지는 않다고 했다.

 

그렇게 항암치료를 하던 중

얼마전 뇌전이가 생겨서 감마나이프를 하였다.

뇌막 전이가 의심되어 오마야도 넣었다.

오마야로 척수강 내 항암제를 투여하는 치료를 하던 중 그녀가 예정에 없이 외래에 왔다.

 

선생님, 너무 힘들어서 왔어요.

 

말이 없는 그녀가

나에게 힘들다는 말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CT를 찍어보니 여기저기 있던 병이 조금씩 다 나빠졌다.

그리고 왼쪽 콩팥으로 새롭게 전이된 병변이 보인다. 그래서 옆구리가 아팠나보다.

 

외래에서는 잠깐씩 볼때는 잘 몰랐는데

입원해서 곰곰히 지켜보니

손이 너무 떨리는 것 같다.

항경련제가 그녀에게 과다한 것 같다. 약을 조절해 주었다.

밥을 많이 못 먹는다. 영양제를 처방했다.

입맛이 없다고 해서 식욕촉진제를 주었다.

다행히 먹는 약으로 옆구리 통증이 잘 조절되었다.

기침은 코데인을 먹으면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굳이 입원하지 않고 외래에서 해도 되는 조치들이다.

40kg 미쳐 못 되는 그녀.

외래에서 그런 조치를 하며 견디기에 이제 많이 쇠약해진것 같다.

 

그렇게 몇일 지나니 볼에 살이 붙는 것 같다.

 

입원하라고 해놓고 별로 해주는게 없어서 미안해요.

너무 열심히 치료하고 싶지 않네요. 항암치료를 좀 쉬는 것도 괜찮은거 같아요.

 

병이 더 나빠지지는 않을까요?

 

조금은 나빠지겠죠.

하지만 지금 컨디션으로 무슨 치료를 받을 수 있겠어요?

그냥 조금 쉽시다.

 

맞아요.

저도 좀 쉬고 싶어요.

그동안 죽을 각오로 항암제를 맞았던거 같아요.

 

살려고 맞는 약을 왜 죽을 각오로 맞나요?

그렇게 힘들었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너무...

 

그녀가 병원에 입원해서 별 조치 없이 머물러 있다가

오늘 퇴원하였다.

우리 병원의 경영 담당자가 이 사실을 안다면 혼날 일이다.

급성기 환자에 대해 빨리 조치하고 빨리 퇴원시켜 병상 회전율을 높이는 것이

3차 병원의 역할이자 수익성 증대의 지름길인데

정작 난 환자 입원만 시켜 놓고 별거 한게 없다.

(내가 잘했다는 것이 절대 아님. 병원은 돈을 벌어야지...)

 

그런데

내가 보기에

환자 마음이 많이 안정된 것 같다.

그리고 원래 나한테 별로 말을 안하는 편이었는데

요즘에는 이것저것 불편한 것도 많이 얘기하고

자기 상태에 대해서도 설명을 잘 한다.

성격도 예전보다 많이 밝아진 것 같다.

 

그냥 이정도 기침하면서 견딜만하면 이대로 좀 삽시다.

2주 뒤에 외래에서 다시 만나요.

그때 경과보고 치료 시작할지 결정할게요.

 

퇴원하라며 악수를 하는데, 손떨림이 많이 좋아졌다.

 

어쩌면

의사가 해 줄 수 있는 건 아주 조금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안해 졌기를 기도할 뿐이다.

가끔은 환자에게도 위기를 견디고 재충전할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것 같다.

내가 해준건 없지만

우리 환자 마음이 많이 편해진것 같아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