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통증 조절은 혈압 조절을 하는 것처럼

슬기엄마 2012. 11. 29. 07:13

 

 

암환자가 컨디션에 나빠 입원했다가 혈압이 떨어지는 이벤트가 생기는 경우,

패혈성 쇼크인 경우가 많다.

패혈성 쇼크는 항생제가 투입되는 시간, 혈압이 정상화되는 시간을 가능한 짧게, 모든 조치를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패혈성 쇼크가 의심되면 - 확진되지 않았더라도 - 아주 집중적인 검사와 과량의 약제 투여가 시작된다. 살고 죽는 것이 시간싸움이다.

약을 쓰고 환자 옆에서 계속 혈압을 잰다.

소변줄을 끼우고 시간당 소변량을 체크하며 약제의 반응을 거의 실시간으로 확인해야 한다.

혈압승압제를 쓰고 몇 분 단위로 혈압을 재면서 환자의 상태가 안정화되는지를 확인한다.

같은 혈액 검사도 수치가 안정화될 때까지 반복하는 경우도 많다.

대개 환자 옆에서 서너시간을 서성거리게 된다.

 

 

암환자의 조절되지 않는 암성 통증도

마치 패혈성 쇼크 환자에서 응급으로 승압제를 쓰고 혈압을 재서 반응을 확인하는 것처럼

속효성 진통제를 투여하고 통증이 얼마나 호전되는지를 그 자리에서 확인해야 한다.

속효성 몰핀을 주사로 투여하고 15분 이내에 통증 점수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확인하여

용량을 결정해야 한다.

혈압처럼 신경써서 섬세하게 조절해 주어야 한다.

서너시간까지는 아니더라도

환자 곁에서 서성거리며 반응을 확인하고 약제 용량을 조절해주는 것이

성공적인 통증 조절의 지름길이다.

 

 

외래에서는 그렇게 할수가 없다.

입원할 정도는 아닌데, 통증으로 인한 불편감을 해결하기 위해 약제 변경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다음 외래시까지 3주, 4주치 약을 처방해주면 안된다.

일단 약을 넉넉하게 주고

마약성 진통제 복용방법에 대해 설명해주어야 한다.

원칙을 설명하고

모니터링은 전화로 하는게 좋다.

용량을 변경하여 약을 먹은지 24시간이 지나서 전화로 통증 점수를 확인하고

다음날 용량을 증량할지 유지할지 감량할지에 대해 결정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매일 전화로 확인하고

병원 외래에 오시는 것이 가능하다면 약을 변경한지 1주일째 외래에서 다시 한번 환자를 직접 보고 용량을 확정해 주는 것이 좋다.

 

그래서 우리 암센터에서는 암성통증클리닉을 따로 두고 이 일을 전담하는 간호사를 고용했었다.

병원에서 정식으로 채용한 직원이 아니라

우리 과에서 자체적으로 인건비를 감당하면서 사람을 썼었는데

이 자리가 병원의 정규직이 아니다 보니

일하던 간호사가 더 좋은 조건의 직장이 생기면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여

현재는 암성통증클리닉을 운영하지 않고 있다.

잦은 인력교체는 진료의 질과 환자와의 신뢰형성에 치명적인 약점이 되기 때문에 좀더 안정적인 고용조건이 형성될 때까지 잠정적으로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진료지원 인력이 없다보니

외래 진료 때에는 내가 알아서 환자에게 설명하고 반응을 챙겨야 한다.

마약성 진통제가 최초로 처방되는 환자에게는

마약성 진통제 복용에 대해 최소한 20분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다.

외래에서는 그걸 실행하기가 어렵다.

마약성 진통제를 최초로 투여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도 있다.

그런데 마약성 진통제에 관한 임상연구를 설명하기란 더 어렵다.

 

 

아무리 교육하고 홍보해도

환자들은 진통제, 특히 마약성 진통제를 먹으면 중독이 되고, 병이 나빠지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채 시간이 갈까봐 아파도 약 먹는 것을 꺼려한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가능한 참는다. 나에게 말 하지 않고.

 

그러나

통증을 느끼는 것 자체가 몸에 매우 좋지 않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더라도 통증을 느끼지 않는 것 자체가 몸에 가장 좋다.

기전은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암환자에서 마약성 진통제는 거의 중독되지 않는다.

나는 변비만 오지 않게 조심하라고, 변비예방약을 같이 드시면서 진통제를 복용하라고 설명하고 약을 처방한다.

암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수많은 건강강좌나 집담회, 학생, 레지던트, 간호사 교육 때

암성통증의 조절원칙과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만

실재 환자 및 가족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데는 뭔가 더 효과적인 교육 및 홍보 수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암환자에서 통증은

제5의 바이탈 사인이라고 하는데에는 이유가 있다.

 

통증만 잘 조절되면

일단 몸 컨디션이 좋다.

일상 생활의 activity도 좋아진다.

자신이 받는 치료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치료받으려고 한다.

마인드도 긍정적이 된다.

사람들과도 잘 지낸다.

 

통증이 잘 조절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비관적이다.

가능한 치료적 대안이 있어도 받고 싶지 않다.

몸 컨디션이 전체적으로 너무 나빠 그 무엇도 귀찮아 진다.

통증을 느끼는 순간, 죽음을 떠올리고 비관적인 마인드가 자라난다.

감염이나 다른 질환도 덩달아 많이 발생한다.

악순환이다.

 

 

그런데

암성통증은

나도 눈치채기 어려운 무의식 상태에서도 조절되는 신호체계가 있는 것 같다.

몸의 통증이 마음에 의해 영향을 받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하면 통증을 더 많이 예민하게 느낀다.

나도 그런 편이다.

마음이 안 좋으면 뭔가 신체적 증상을 더 예민하게 느끼고 실재로 더 아프다.

그래서 잘 조절되지 않는 통증은

정신과 선생님과 상의하여 약물을 추가할 때 기존 진통제의 효과가 배가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신과 약물이 암성통증 조절에 도움이 되는 기전도 아주 명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분명히 도움이 된다.

 

 

통증이 조절되지 않아 울면서 외래에 왔다.

입원 후 몇일 동안

속효성 주사 몰핀으로 용량을 조절하여 붙이는 진통제로 바꾸었는데 상태가 잘 유지된다.

그래서 오늘 퇴원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어제밤부터 통증이 갑자기 10점 만점에 10점으로 악화되었다.

집에 가라고 하니 불안하셨나...

10점이면 퇴원할 수가 없다.

 

환자의 마음은 쉽게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