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기다려지는 그녀

슬기엄마 2012. 12. 11. 23:06

 

 

3주마다 한번씩 허셉틴을 맞으러 오는 그녀.

벌써 4년이 넘었다.

 

그녀는 항상 예정시간보다 일찍 와서 진료를 기다린다.

오늘처럼 추운 날, 새벽기차를 타고 선잠을 자며 올라왔을텐데

진료실에 들어서는 그녀의 얼굴은 밝고 화사하다.

원래 미인이기도 하고,

항상 세련된 옷차람과 화장으로 그 미모가 더해진 탓도 있겠지만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은

친정엄마같은 넉넉한 마음씀씀이다.

 

진료실에 들어서면

그녀는

내 안색을 살피면서

3주 전보다 얼굴색이 좋아졌다는 둥

얼굴에 뭐가 많이 났다는 둥

나의 안부를 소소히 챙기신다.

내가 그녀의 안부를 묻기 전에 그녀가 나의 안부를 먼저 묻는다.

 

그녀는 짧은 외래 시간 동안에도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모르는 나의 한쪽 귀걸이 자리의 피부가 성했다 가라앉았다 하는 것도 알고 있다. 자기도 알레르기가 있어서 안다며, 설탕에 탱자를 재워서 액기스처럼 해서 먹으면 알레르기가 감쪽같이 좋아진다고, 나에게도 그걸 꼭 해보라며 처방을 추천해준다. 중도 자기머리 못 깎는다고, 의사도 자기 병은 못 고치는 거라며 꼭 그걸 좀 해먹어 보라고 성화다.

 

주전부리 할때는 영양을 생각해야 한다며 가끔 아몬드와 땅콩 같은 견과류를 선물로 주신다. 몇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무거운 그것들을 싸들고 오신다.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족히 일년치 간식은 되는 것 같다.

 

오늘은

올해 난 햇콩으로 만들었다며 청국장 가루를 만들어 오셨다. 냄새 안나게 꽁꽁 쌔매 왔다며 집에 가지고 갈 때 걱정하지 말라는 당부까지 하신다.

 

그녀는 경상도 사투리도 예쁘게 한다.

 

청국장 끊여먹을 줄 알아요?

 

ㅎㅎ 몰라요. 엄마한테 끓여달라고 할래요. ㅎㅎ

 

아이고, 나랑 똑같네.

나도 유방암 걸리기 전까지는 음식이라고는 하나도 만들지 몰랐지.

뭐든지 다 인스턴트로 사먹었어요.

항상 바쁘니까.

그땐 부엌에서 손에 물도 안묻히고 살았어요.

 

근데 지금은 이렇게 청국장까지 만들 줄 아시게 된거에요?

 

청국장 만드는 거랑 김치 담그는 거 다 작년에 처음 해 봤어요.

맨날 친정 엄마가 해주는 것만 받아 먹다가

내가 해 보니까

이게 의외로 재미있고 나한테 솜씨도 있는 거에요.

내가 이런 걸 잘할 수 있을지 미처 몰랐지요.

그래서 올해는 햇콩 잔뜩 사다가 청국장 엄청 만들어서 보관해 놨어요.

이렇게 주위 고마운 사람들한테 한통씩 선물할려구요.

 

내 선물만 챙기지 않고 우리 배영숙 간호사 선생님 것까지 꼭 같이 챙겨오신다.

2인분 선물을 들고 오시느라 힘 좀 드시겠다.

 

근데, 선생님, 나 언제까지 주사맞아야 해요?

 

지금 심장기능에 문제 없으니까 그냥 좀 더 맞으세요. 주사맞는거 힘든거 없잖아요.

왔다갔다 하는 힘드시죠?

 

내가 좀 미안해 하는 눈치를 보이자 바로 말을 바꾼다.

 

아니에요. 그냥 서울 여행다닌다 그렇게 생각할게요. 집 나올 핑게도 되고 좋아요.

 

매사 긍정적이다.

유방암 치료하면서 집도 공기좋은 시골로 옮겼다고 하신다.

장작불 때고

그 불에 요리하고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걸 준비하고 나눈다.

 

예쁜 얼굴보다 마음이 더 예쁜 그녀.

나갈 때도 인사를 잊지 않는다.

 

아이고, 나같은 사람이 이렇게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면 진료가 지연되는데 미안해요.

다음에는 와서 얼굴만 비치고 허셉틴 맞고 갈께요. 오늘은 미안~~~

 

그녀가 오는 화요일이 기다려진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 기분이 상쾌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