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병이 오면 따라오는 것들

슬기엄마 2012. 12. 29. 12:18

병이 오면

병만 생기는게 아니다.

좋은 일이 따라 올 수도 있지만

나쁜 일이 더 자주 따라 오는 것 같다.

평소에 잘 묻어두고 지내던 일인데 ,

평소에 그럭저럭 잘 지내던 관계인데

새삼 응어리가 터진다.

새삼 섭섭하고

새삼 원망스럽고

새삼 마음이 안맞는것 같다.

 

 

이 환자는 몸이 너무 약했다.

재발 후 처음 만난 환자, 항암제를 쓰기만 하면 너무너무 몸이 아프고 약을 견디지 못하였다. 항암제 효과를 평가하기도 전에 독성 때문에 너무 고생을 하셨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항암치료를 쉬었더니 전신 컨디션은 잠시 좋아지는 듯 했지만, 이번에는 겨드랑이 림프절이 너무 많이 커져버렸다. 커진 림프절이 팔신경을 누르니, 팔이 저리고 통증이 심하다. 진통제 부작용이 너무 심해 약을 제대로 쓸 수가 없다. 통증 역치를 조절하려고 정신과 약을 썼더니 너무 가라앉고 졸려 하신다. 모든 약에 부작용이 많으시다. 통증이 심하니 신경도 예민해지고 신경질적이 되기도 하고 자꾸 울고 그렇다.

 

그러던 분이 방사선 치료를 하면서 많이 좋아지셨다. 비록 간과 폐에 병이 있기는 하지만 방사선이 들어간 부위는 종양의 크기도 많이 줄고 통증도 좋아졌다.

환자는 지금 병이 문제가 아니라며, 안 아픈게 어디냐며 고마워하셨다. 나에게 고마워 할 일이 아니라 방사선 종양학과 선생님한테 고마워할 일이지만 여하간 나도 기뻤다. 이번에 좋아지면 항암제를 '매일 조금씩 지속적으로 쓰는 메트로노믹 치료'를 해봐야지 그런 생각을 할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좋은 마음으로 엊그제 외래를 봤던 환자가

오늘 토요일 외래에 예정없이 찾아왔다.

팔이 다시 너무 아파졌다는 것이다.

약이 바뀐 것도 없는데 갑자기 조절이 안된다고 하신다.

 

왜 그럴까요?

엊그제까지는 괜찮다고 하셨잖아요?

 

그러게 말이에요.

어제밤부터 너무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어제 그제 사이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네....

 

무슨 일이요?

 

멀리서 세브란스 병원 다니는게 너무 힘들어서 신촌 근처로 이사를 했어요.

그런데 이사하다가 돈이랑 귀중품이랑 중요한 문서를 담은 가방을 도둑맞았어요.

그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그래서 더 아픈 걸까요?

 

그럼요.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할 말이 없다.

뭐라 위로를 드릴 수가 없었다.

당연히 더 아프실 것 같다.

이런 상황적인 요인이 통증을 악화시킨 것 같다.

 

삶은 흘러 가는 길.

병이 있으나 없으나 자기 궤적을 밟아 가는 길.

조금 덜 힘드셨으면 좋겠다.

조금 덜 마음 상했으면 좋겠다.

 

너무 많이 아파도 울지 않고 참던 그녀.

마음 속에 숨겨둔 눈물을 훔쳐 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