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206

나 너무 좋아한 걸까?

진료실 들어서는 그녀 얼굴 표정이 환하다. 몇개월 전 마음의 고통이 온데 간데 없어 보인다. 이번에 찍은 사진 결과도 좋다. 뼈전이가 있기는 하지만 병변이 별로 넓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되기를 몇년째. 안색이 좋으시네요. 피부도 좋아졌어요. ㅎㅎ 나의 추임새 한방에 그녀가 입을 연다. 우리 딸이 이번에 한림대 의대 갔어요. 그녀가 겪었던 지난 몇개월 간의 마음의 고통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하나뿐인 그녀의 딸이 대학입학, 그것도 의대에 갔다는 사실에 너무나 기뻤다. 의대라서 그런거냐 속물적이라 비난해도 나는 너무 기뻤다. 거봐요. 그때 괜히 고민한거 였잖아요. 할 놈은 다 해요. 부모가 필요없어요. 괜한 잔소리에 불과한 거에요. 그러게요. 지가 다 알아서 하고 있었나봐요. 학원도 별로 못 보내줬는데... ..

미나리와 계란

환경 오염이 덜 된 유기농 음식, 깨끗하게 준비한 음식, 정성껏 만든 음식. 아줌마 환자들이 자신을 위해 일상적으로 노력하는 것들이다. 당신이 먹어보니 맛도 깔끔하고 염분도 낮은 것 같다며 소금을 사다 주기도 하고 동네 뒷산에서 주었다며 밤을 쪄다 주시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맛있는 밤은 처음이라고 하니 옆집 창고까지 뒤져서 밤을 더 삶아다 주신다. 당신 집에서 키우는 닭이 낳은 거라며 꾸러미 달걀을 갖다 주신다. 세줄 삽십알. 마트에서 파는 그런 달걀보다 훨씬 속이 알차고 튼실하다. 멀리 대구 사시는 분, 미나리 한박스를 손수 가지고 오신다. 벌써 세번째다. 뇌전이 방사선 치료 이후 걸음걸이가 아직 완천치 않은데 불편하고 거추장스럽게 이 무거운 짐을 가지고 서울 오는 기차를 타신다. 내가 마음으로 늘 ..

내 맘 편할라고요

42kg 156cm 몸집도 조막만하다. 얼굴도 조막만하다. 항암치료를 처음 시작할 때는 얼굴도 거칠었는데 요즘 보니 영 피부도 좋아졌다. 얼굴이 참 맑은 사람이다. 처음 유방암 진단을 받을 무렵 척추 전이가 너무 심해서 허리를 제대로 굽히지도 못했다. 많이 아팠다. 진통제를 주면 다 토했다. 나는 많이 걷지도 말라고 했다. 신경을 누르기 직전이라 방사선 치료부터 했다. 방사선 치료를 하면서도 너무 힘들어 했다. 넓적뼈이긴 해도 몇마디 포함 안되었는데 환자가 5번 치료받고 기진맥진 상태가 되었다. 방사선 치료조차 너무 힘들게 받은 환자. 유방암 치료는 안하기로 하고 집으로 가셨다. 기차타고 세시간. 저 멀리 경상도 사신다. 나이는 36세. 6살난 아들이 있다. 나에게 갖가지 경고성 협박을 다 듣고도 환자는..

할머니는 끝까지 내 환자

할머니는 저 멀리 경상도 끝자락에 사신다. 재발한 유방암이 벌써 7년이 되었다. 재발 초창기에는 이런 저런 항암제, 호르몬제로 치료를 하셨다. 그런데 아주 드물게 발생하는 치료의 합병증이 할머니에게 몰려서 나타났다. 아드리아마이신의 심장 독성으로 인해 심부전 상태, 심장기능이 매우 약하다. 그래서 금방 숨이 차고 늘 피곤하다. 몸 상태가 이러니 항암치료를 할 컨디션이 안된다. 뼈전이에 사용하는 조메타를 쓴지 1년도 되지 않아 발치한 곳의 턱뼈 괴사가 발생했다. 잇몸으로 덮혀 있어야 하는 뼈가 노출된 상태이기 때문에 백혈구 수치가 떨어지는 항암치료를 하면 구강 내 보호막이 없는 발치 부위에서 열이 나고 염증이 생긴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하기 어려워졌다. 연세가 있으시니 이런 전신상태는 할머니를 늘 기운없고..

반복적인 검사 반복적인 치료 그리고 그녀의 눈물

그녀는 지난 8년 동안 거의 쉼없이 치료를 하고 있다. 전이성 유방암 폐전이 상태로. 치료 중간에 조직검사를 두번 했는데 호르몬 수용체가 양성이 음성이 되었고 HER2가 음성이었다가 양성이 되었다가 다시 음성이 되기도 하였다. 호르몬제를 썼다가... 항암제를 썼다가... 표적치료제를 썼다가... 호르몬 수용체나 HER2 수용체 검사는 거의 모든 병원에서 손쉽게, 값싸게, 그리고 비교적 어느 병원에서 하든지 그 검사법이 안정적이고 검사의 유효성이 입증이 된 검사이다. 항암치료를 하면 치료 중에 세포의 생물학적, 분자적 속성이 변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진행되는 임상연구들은 새롭게 전이가 발견될 때마다 그 곳에서 조직검사를 하고 첨단 기법으로 그 조직을 분석, 연구하여 생물학적 속성이 어떻게 바뀌었..

씩씩해진 그녀를 보며

2년전 처음 만난 그녀 재발을 진단받고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다. 하얗고 예쁜 얼굴이 겁에 질려서 더 하얗게 변해 있었다. 그녀는 잊을만한데 재발한 병도 병이었지만 첫 유방암 수술 후 받았던 항암치료와 호르몬 요법 모두가 너무너무 힘들어서 다시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를 걱정하고 있었고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내 인생이 이대로 끝나버리는 건가 싶은 공포스러운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하였다. 외래에서 치료를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세차게 흔들리는 그녀의 마음을 묻어버리고 일단 치료부터 받으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폐 일부와 뼈 여기 저기에 전이가 심해서 항암제 치료를 시작해야 했다. 설명하고 또 설명하고 달래고 또 달래고 그녀의 울음을 달래기 위해 나도 마음을 많이 써야 했다. 1년 가까이 항암치료를 받았다...

마음이 통하는 벗

겉으로 보기에 씩씩하게 잘 치료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검사 때가 되면 잠도 안오고 기분도 우울해지고 눈물도 나고 그러시나보다. 그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이 너무 힘들고 괴롭다고 하신다. 오늘 외래를 보는데 한 환자가 자기 전화기에 저장된 문자 메시지를 보여준다. 의사의 한마디에 생과 사가 왔다갔다 결정되는 것처럼 생각되니 우리 인생 불쌍하죠? 친한 환자들끼리 서고 주고받는 문자 메시지이다. 검사하면 서로 결과 확인해 주고 컨디션도 물어봐주고 힘들어하면 집에 방문해주고 자기 컨디션 좋을 때는 맛있는 것도 해다주고 그렇게 지내시는 관계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실날같은 희망을 공유하며 벗으로 지내고 있다. 벌써 몇년째다. 나의 한마디가 그렇게 무거울 수 있다니 참 부담스럽다. 내가 의사라는 ..

최선을 다하는 환자

멀리 경상도 사는 나랑 동갑내기 환자. 항상 남편이 같이 온다. 환자는 갑작스럽게 생긴 복시로 뇌전이를 진단받았다. 수술 후 치료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뇌전이를 진단받고 큰 상실감에 빠졌다. 뇌 방사선 치료를 받는 동안 어지럽고 너무 기운이 떨어져 병원에 내내 입원해 있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 그녀가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내 마음도 너무않좋았다. 매일 회진하는 동안 서로 마음의 불편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만큼 힘든 재발의 치료가 시작되었다.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하였고 오늘은 3주기를 시작하는 날. 그녀는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이렇게 프린트가 된 치료 일지를 내 놓으신다. 첫칸에는 날짜, 둘째칸에는 증상, 셋째칸에는 자기 컨디션, 넷째 칸에는 식사량, 마지막 다섯째 칸에는 몸무게를 기록할 ..

무사히 시간이 흘러도 기억해야 할 것

사람의 마음은 늘 정지해있지 않고 뭔가의 이벤트에 의해 시시각각 변화한다. 그래서 간사하다고 하는걸까? 환자들의 마음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변한다. 굳세게 마음먹고 열심히 치료하다가도 순식간에 무너지고 눈물을 글썽거린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허약해보여 또 자책한다. 그게 간사한 걸까? 당연한거다. 객관적 사실로 알려진 것들 병기와 예후, 치료법과 그 효과 및 부작용, 그리고 통계적인 생존기간 그런 정보들은 나를 중심으로 놓고 보면 크게 의미가 없다. 나는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기필코 좋은 성적은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 그러니까 통계적인 수치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래도 마음 한 켠에 불안함이 자리잡고 있다. 잊으려고 해도 또아리를 틀고 자리잡고 있다. 언제듯 깨어질 것 같이 여..

처음 본 환자에게

외래 초진 제가 처음 본 환자인데 그냥 원래 치료받던 곳에서 계속 치료받으세요. 우리병원 오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환자가 가지고 온 진료 기록을 보면 그 의사가 어떤 의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치료 과정을 검토해 보고, 나로서도 다른 이견이 없을 때, 공연히 병원을 옮기는 것은 환자에게 이득이 없으니 자신을 꾸준히 진료한 원래 의사에게 계속 치료받는게 좋다고 권합니다. 환자를 위해 그 사람만큼 오래 고민한 사람 없으니까 그를 믿으라구요. 초진이니까, 그날 외래 진료의 제일 마지막에 순서를 잡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음 환자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면담하기가 어려워서 나 스스로 마음이 초조해집니다. 그래서 처음 온 환자를 많이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지만 그렇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