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할머니는 끝까지 내 환자

슬기엄마 2013. 2. 3. 19:42

 

할머니는 저 멀리 경상도 끝자락에 사신다.

재발한 유방암이 벌써 7년이 되었다.

재발 초창기에는 이런 저런 항암제, 호르몬제로 치료를 하셨다.

 

그런데

아주 드물게 발생하는 치료의 합병증이 할머니에게 몰려서 나타났다.

아드리아마이신의 심장 독성으로 인해 심부전 상태, 심장기능이 매우 약하다. 그래서 금방 숨이 차고 늘 피곤하다. 몸 상태가 이러니 항암치료를 할 컨디션이 안된다.

 

뼈전이에 사용하는 조메타를 쓴지 1년도 되지 않아 발치한 곳의 턱뼈 괴사가 발생했다. 잇몸으로 덮혀 있어야 하는 뼈가 노출된 상태이기 때문에 백혈구 수치가 떨어지는 항암치료를 하면 구강 내 보호막이 없는 발치 부위에서 열이 나고 염증이 생긴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하기 어려워졌다.

 

연세가 있으시니 이런 전신상태는 할머니를 늘 기운없고 힘들게 만든다. 사소한 문제도 잘 해결되지 않는다. 부신피질호르몬이 부족하여 스테로이드를 줄였다 늘였다 반복한다. 그러니 뼈는 점점 더 약해진다.

 

 

몸 상태가 이러니 마음도 말이 아니다. 툭하면 우신다.

우울증이 와서 약으로 우울증 증상을 조절하고 있다.

진료실에 들어선 할머니는 들어오자 마자 울기 시작한다. 증상을 묻는 나의 질문에 옆에서 할아버지가 대답을 하려고 치면 신경질을 내면서 말을 못하게 막는다. 그리고 당신은 계속 울면서 힘들어서 못살겠다고만 하신다. 늘 할머니와 함께 병원에 오시는 할아버지도 지치신 것 같다. 할아버지 표정을 보니 할아버지에게도 우울증이 오는게 아닌가 걱정된다.

 

유방암 치료는 하지도 못한채 심장내과, 내분비내과, 치과, 종양내과 진료를 위해 멀리서 기차타고 버스타고 한달에 한번 서울 병원으로 향한다. 심리적 의존성이 커져서 그 고생을 하면서도 이제 우리병원 아니면 다른 병원은 가고 싶지 않다며 우리 병원 진료를 고집하신다.

 

멀리서 오시니 하루에 외래를 다 몰아서 볼 수 있게 스케줄을 맞춰야 한다.

첫 진료를 본 심장내과에서부터 할머니는 힘들다고, 나 집에 못간다고, 입원시켜 달라고 하신 모양이다. 심장내과, 내분비내과 진료를 보고 나서 종양내과 오기 전에 CT를 찍고 오기로 했는데, 아침에 한 피검사를 보니 신장수치도 정상 범위를 넘어서 조영제를 쓰지 못하고 CT를 찍었다. 다소 흐릿한 영상이지만, 간 전이가 나빠진 것을 알 수 있었다. 호르몬 수용체 양성 할머니라 병이 빨리 빨리 나빠지지 않는다. 최근 몇개월간 암은 나빠지지 않고 고만고만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병도 악화되었다. 간 기능이 떨어지면서 알부민 수치도 떨어졌다.

 

심부전으로 드시는 약의 체내 농도가 안 맞았는지 혈압도 낮다. 최근 10일 정도 너무너무 힘드셨다고 하는데 아마 혈압이 떨어지면서 소변기능도 떨어지고 그에 따라 소변량이 줄면서 양쪽 늑막에 물이 고인 것 같다. 심장내과에서는 혈압약을 끊고 1주일 후 경과관찰을 하겠다고 한다.

 

부진피질호르몬 수치도 떨어져 있다. 내분비내과에서는 호르몬제를 증량하고 경과관찰을 하면 된다고 한다.

 

괴사된 잇몸뼈에서도 냄새가 많이 난다고 한다. 치과 드레싱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총체적 난국이다.

 

환자는 결국 종양내과로 입원하였다.

 

 

오래 치료받는 암환자는

암도 암이지만 그외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여

종양내과 단독의 진료로는 해결이 안되는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할머니처럼 치료의 합병증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고, 암과는 관련 없는 다른 만성 질환이 악화되기도 한다. 그래서 다른 과 선생님들의 협조와 관심이 필요하다. 치료 후반부로 갈수록, 말기에 가까와 질수록, 환자는 나의 능력만으로는 해결이 안된다.

 

암 환자 치료는

암 치료를 중심으로 진료가 이루어지되

기타 다른 질병과 문제들이 적절히,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잘 해결되어야 한다.

 

말기 암환자니까 너무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잘못되어 치료가능한 증상에 대해 소극적인 조치가 되는 경우도 있고,

말기 암환자니까 적극적인 검사와 조치를 하는 것이 환자에게는 부질없고 무리가 되는 수도 있다.

그 과정을 균형있게, 저울질을 잘 하여 환자에게 최적의 진료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판단은 종양내과 의사의 몫이다.

 

치료의 합병증, 정신적 우울감, 그리고 병의 진행

그 모든 것들이 할머니를 힘들게 하고 있다.

할머니는 날 보면 늘 징징거리신다. 솔직히 순간 미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렇지만 할머니를 힘들게 하는 그 모든 증상이 암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들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기때문에 할머니를 미워할 수 없다. 미워하면 안된다.

 

할머니는 입원 후 

몇일 사이 혈압약을 조절하고 호르몬제를 증량하고 수혈도 하고,

힘들었던 증상이 많이 좋아지셨다.

할머니는 집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도 보내기가 무섭다.

그래도 다음주는 퇴원 준비를 해 봐야지.

많이 좋아졌으니 일단 집에 가 보시라고 달래봐야지.

 

항암치료로 인한 수명의 연장이란

적절한 삶의 질이 유지되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인데

이렇게 오랫동안 고생하는 할머니가 안쓰럽다.

죄책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