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씩씩해진 그녀를 보며

슬기엄마 2013. 1. 31. 19:45

 

 

2년전 처음 만난 그녀

재발을 진단받고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다.

 

하얗고 예쁜 얼굴이 겁에 질려서 더 하얗게 변해 있었다.

그녀는 잊을만한데 재발한 병도 병이었지만

첫 유방암 수술 후 받았던 항암치료와 호르몬 요법 모두가 너무너무 힘들어서

다시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를 걱정하고 있었고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내 인생이 이대로 끝나버리는 건가 싶은 공포스러운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하였다.

 

외래에서 치료를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세차게 흔들리는 그녀의 마음을 묻어버리고 일단 치료부터 받으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폐 일부와 뼈 여기 저기에 전이가 심해서 항암제 치료를 시작해야 했다.

설명하고 또 설명하고

달래고 또 달래고

그녀의 울음을 달래기 위해

나도 마음을 많이 써야 했다.

 

1년 가까이 항암치료를 받았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작한 치료라서 그런지

그녀는 매번 외래에서 허옇게 질린 얼굴을 하고 오면서도 꿋꿋하게 잘 견뎠다.

만만치 않은 독성으로 여러 불편한 증상이 많아 이 약 저 약 추가적인 치료가 필요했고

그렇게 추가한 약들의 부작용 때문에 때론 고생을 더 하기도 했다.

 

그녀는

그런 경험을 통해

치료라는 게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니 너무 조급해 하지 말 것,

불편한 증상이 해결되기까지 여러 번의 시도가 필요하며

나에게 맞는 약과 조건을 찾기 위해서는 환자 스스로도 마음을 굳세게 먹고 쉽게 넘어지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외래에서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만큼 그녀는 강해지고 있었다.

 

손발저림이 심해서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호르몬제를 복용하기로 했다.

예전에 호르몬제를 복용했을 때는 폐경증상이 너무 심해서 결국 5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중단한 바가 있어 나도 긴장이 되었다. 처음에는 호르몬제를 2주치만 처방하고 부작용과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면서 자주 외래 진료를 보기로 했다.

이제 그녀는 3개월에 한번씩 외래에 오셔도 될만큼 안정되었다.

 

뼈전이 때문에 맞던 조메타는 앞으로 투여하지 않기로 했다.

발치를 해야할 것 같은 치아가 두세개 있는데 잇몸상태가 좋지 않다. 턱뼈괴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조메타도 중요한 약이지만 장기적으로 환자의 치료와 안전을 위해서는 일단 호르몬제만 먹는게 좋겠다. 그런 설명을 해도 이제 환자는 별로 놀라지 않는다. 치료 중 발생하는 소소한 이벤트와 부작용이 발생하고 그 때문에 나의 치료 지침에 변화가 와도 더 이상 허옇게 질리거나 눈빛이 흔들리지 않는다.

 

선생님, 저 괜찮아요. 별일 없어요.

약 타가지고 갈까요?

다음 번에 검사하면 되나요?

 

그렇게 쿨 하게 질문하고 씽 나가버린다.

그렇게 서서히 강해지고 씩씩해지는 그녀를 보며

매번 외래에서 그녀를 볼 때마다 나는 마음 깊이 그녀에게 박수를 보냈다.

 

지난 달에는

재발을 진단받고 처음으로 4주간 외국 여행을 다녀오셨다.

여행 코스에 터키도 있다길래 내가 너무 부러워하며

터키는 나의 로망이라 했던 말을 기억하고

오늘 한말씀 하신다.

 

터키에 대한 오해가 약간 있는것 같아요.

한국에서 신비화시켜서 관광코스로 개발한다는 느낌도 들구요.

고대 로마사의 문명권 중의 한 사회라 유적지가 많다고 보시면 될것 같아요.

(내가 모르는 유적지 지명과 문화재들을 언급하시며)

그런 것들이 볼만한 거리이기는 하지만 선생님의 로망이 될 만큼 크게 대단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없는 시간 쪼개서 여행가셔야 할텐데

터키에서 너무 많은 시간 보내지 마세요.

 

단호하고도 간결한 그녀의 코멘트.

 

그녀는 고등학교 선생님이다. 이번 3월부터는 학교에 복직하기로 했다.

많이 절망하고 힘들어했던 환자가 씩씩하고 강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을 보니

내가 마음을 많이 쓰고 고민했던 성과(!)가 있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그건 내가 한게 아니라 환자 스스로가 노력한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선생님,

잘 지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