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반복적인 검사 반복적인 치료 그리고 그녀의 눈물

슬기엄마 2013. 2. 2. 20:48

 

그녀는 지난 8년 동안 거의 쉼없이 치료를 하고 있다.

전이성 유방암 폐전이 상태로.

 

치료 중간에 조직검사를 두번 했는데

호르몬 수용체가 양성이 음성이 되었고

 HER2가 음성이었다가 양성이 되었다가 다시 음성이 되기도 하였다.

호르몬제를 썼다가...

항암제를 썼다가...

표적치료제를 썼다가...

 

호르몬 수용체나 HER2 수용체 검사는 거의 모든 병원에서 손쉽게, 값싸게, 그리고 비교적 어느 병원에서 하든지 그 검사법이 안정적이고 검사의 유효성이 입증이 된 검사이다.

 

 

항암치료를 하면 치료 

세포의 생물학적, 분자적 속성이 변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진행되는 임상연구들은 새롭게 전이가 발견될 때마다

그 곳에서 조직검사를 하고 첨단 기법으로 그 조직을 분석, 연구하여

생물학적 속성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결과에 기반해 새로운 치료를 시도해 보고 있다.

 

그러나 그런 한 두편의 논문과 소규모 연구 결과를 현실에 바로 적용해서는 안된다.

연구 결과가 현실의 치료법이 되기까지에는

반복적으로, 누가 연구를 해도, 같은 결과가 나오고,

대규모로 규모를 확대해서 시행해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 입증되어야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지식, 교과서적인 지식이 되는 것이다.

그런 근거를 확고히 하지 않으면 환자는 실험적 대상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연구윤리이다.

 

 

그녀는

그 오랜 기간 동안 치료를 하면서

독성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잘 견뎠다.

늘 별 내색이 없었다.

그리고 어떤 약제를 써도 반응이 좋았다.

꽤 오랜 기간 한가지 약제로 치료 반응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결국 저항성을 획득하고 약제를 바꾸어야 했다.

또 반응이 좋았고 치료가 잘 되다가 또 병이 나빠지고...

 

다른 환자들의 경과와 임상적으로 다른 양상이라는 판단이 들어 조직검사를 다시 해보았다. 수용체 발현 양상이 바뀌는 것으로 보아 암세포의 속성이 계속 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거기에 맞게 약을 바꾸어 보고 또 반응을 확인하고...

 

그렇게 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그녀는 자기 마음 속 깊은 절망과 슬픔을 별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냥 말 없이 '다른 치료 할 수 있는거죠?' 그렇게 두려움을 감추고 용감하게 치료받고 싶어했다.

나보다 8살 많은 그녀. 언니같은 사람이다.

 

도저히 잘 설명이 안되는 이상한 증상이 생겼다며 외래에 오셨다.

사실 한달 전부터 증상이 왔다갔다 했다고 한다. 자기도 확실하게 잘 못 느낄 정도로 서서히.

최근에 찍은 PET-CT가 있어서 환자의 증상에 맞추어 다시 꼼꼼히 들여다 봤지만

도저히 환자의 증상을 설명할 수 없었다.

어느 과에 협진을 의뢰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일단 환자에게 집에 가 있으라고, 내가 여러 과 선생님들하고 상의해보고 연락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가능성이 높지 않고 근거도 명확하지 않지만 뇌 MRI를 찍어보자고 했다.

1년전에 두통 때문에 뇌 MRI를 찍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정상이었다.

환자는 MRI를 찍고 일단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 사진을 확인했다.

새롭게 뇌전이가 발생했다. 그리고 내가 잘 이해할 수 없었던 환자의 애매한 증상을 설명할 수 있는 위치에 병변이 자리잡고 있었다. 내가 설명하지 못한 그 증상은 일종의 경기(seizure)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병변이 1개라서 감마나이프수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환자를 다시 불러 MRI 검사 결과를 설명하고 감마나이프수술을 하는게 좋겠다고 설명했다.

환자의 아버지도 암 치료 중 감마나이프를 하신 적이 있어서 잘 알고 있다고 한다.

8년 동안 병은 폐에만 있었는데 이제 뇌로 새로운 전이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그녀는 충격을 받은 것 같았지만 역시 큰 내색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묻는다.

 

'저... 살 수는 있나요? 저희 아버님은 감마나이프 하시고 나서 금방 돌아가셔서요...'

 

'네. 그럼요'

 

대답하는 내 목소리에 사실 큰 힘이 실리지는 않는다.

 

'선생님, 그동안 선생님이랑 치료하면서 항상 마음 편했어요. 병이 나빠져도 선생님이 다 좋아지게 해줄 것 같았어요. 선생님이 약이 독할거라고, 힘들거라고 설명해주셨지만, 다 견딜만 했어요. 편한 마음으로 치료받게 해주셔서 고마워요. 이번 치료도 잘 되겠지요?'

 

'네. 감마나이프 별로 힘들지 않아요. 잘 될 거에요'

 

아직 내 목소리는 크지 않다.

 

'그런데... 그 다음에 저 치료할 약이 남아있나요?"

 

'고민해 볼게요..'

 

난 그녀가 마지막 질문을 할 때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걸 못 본척 하고 나왔다.

처음 보는 그녀의 눈물.

매번 치료 반응이 좋았으니

난 어떻게든 묘안을 찾아야 한다.

 

환자 볼 때

내 감정이입 하면 안된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나도 눈물을 흘리는 때가 있다.

입증 안됬어도 신기술로 검사해 보고

입증 안됬어도 신약 갖다가 써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

환자 보호자들이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하는 것처럼 나도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해 본다.

 

PS

사실 말도 안되는 생각은 아니다.

임상연구를 짜면 된다.

From bedside to Bench

좋은 의사는 마음만으로 되는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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