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206

암친구를 위한 식탁

전이성 유방암으로 2년이 넘은 환자.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볼 수 없을만큼 외모 단정, 패션퀸, 멋진 분이다. 아직 CT를 보면 폐에 병이 남아있지만 잔존 병변이 별 변화없이 2년이 지나가고 있다. 그는 병원 생활의 도사다. 외래 대기 시간 중에 다른 환자들과도 좋은 이야기 많이 나누고 외래 시간이 지연될까봐 걱정하는 나를 위해 방에 들어서자 마자 자기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보고해주신다. 진통제 부작용이 꽤 있었는데 혼자 이리저리 시도해보면서 자기 몸에 맞게 먹는 방법을 찾았다. 치료중 발생하는 많은 부작용들을 스스로 많이 극복하였다. 그래도 종양평가 CT를 찍는 날이면 잠을 설치고 마음에 불안함이 생기는 걸 어쩔 수 없다고 토로하신다. 나는 조용히 당연하다고 맞장구 쳐드린다. 같이 치료받던 누구..

부모님이 혼자 사시면 건강검진 꼭 챙겨주세요

3년전부터 유방이 이상했다. 혼자 사는 70세 어머니는 딸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으셨나 보다. 최근 유방 상태가 나빠지면서 고름도 나오고 피가 나올 때까지도 말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숨이 차기 시작하니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가야 했고 자식들은 뒤늦게 어머니가 유방암이고, 온 몸 여기 저기로 전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 진단받은 병원에서 찍은 CT를 보니 폐 늑막에 물이 많이 고여있다. 늑막도 이미 많이 두꺼워져 있다. 지금 고여있는 물이 최근에 생긴게 아니라 꽤 오래전에 생겨서 오랫도안 고여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미 맑은 물이 아니고 지들끼리 뭉쳐있는 (loculated fluid) 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상태에서 환자가 숨차다고 흉수 천자를 시도했다간 약해진 폐에 조금만..

환자의 상태가 나빠졌을 때 보호자의 표정/태도

환자는 벼랑 끝에 서있다. 마지막 선을 넘을 듯 말듯 간신히 무게중심을 잡고 겨우 똑바로 서 있다. 겉으로는 티가 안나게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하루에도 몇번씩 그 선을 넘어갈듯 말듯 위태위태하다. 잔잔한 바람만 불어도. 그래도 그는 아무 일 없는 듯이 현실을 꾸려나간다. 그 표정을 유지하기가 힘들지만 애써 감춘다. 그래서 항상 예쁘게 화장하고 멋진 옷을 차려입는다. 누가봐도 환자인지 모르게 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그가 요즘 지쳤는지 얼굴도 가꾸지 않고 옷차림도 헐렁하다. 환자의 상태 변화에 대해 의사의 표정이 어느 정도 중립적일 필요가 있듯 (그래서 내가 늘 반성하듯) 보호자의 표정도 마찬가지다. 환자 상태가 좋아져도 미소로, 환자 상태가 나빠져도 아무일 없는 듯이 환자를 대해주는 것이 좋다. 좋아졌..

신발

나와의 인연을 끊어버리고 싶다며 신발을 선물하려고 했단다. 의사-환자로 더 이상 만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이 신발을 신고 멀리 멀리 자기 곁을 떠나가 버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온 신발이 내 발 크기랑 맞지 않는다. 그녀는 대신 초콜렛과 와인을 선물로 주었다. 의사에게 의존하는 마음 나의 치료 선택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환자의 마음 그런 의존적인 마음을 털어버리고 싶은 환자의 마음 그런 마음이 신발을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했나 보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오늘 모르핀 주사를 주고 있다. 신발을 신고 떠나는 대신...

항암제 저항성

논문을 읽으며 든 생각. 암세포는 우리 몸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무수한 스트레스를 견디고 피해가야 합니다. 우리 몸 자체가 암세포를 인식하고 제거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항암제, 방사선치료도 암세포가 맞닥뜨리게 되는 엄청나게 큰 스트레스 중의 하나죠. 많은 암세포가 항암제에 의해 죽지만 그 공격을 피하는 놈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들은 다양한 기전을 통해 자신의 생존방식을 바꿔가며 환경에 적응/스트레스로부터 회피하며 살아남습니다. 그렇게 성격이 변한 암세포들은 같은 항암제가 공격했을 때 이제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렇게 저항성을 회득합니다. 저항성을 획득하는 다양한 기전을 설명하는 논문들을 읽으며 그런 메카니즘을 잘 들여다 보고 있으면 바로 그 내부에서 ..

포도 깻잎 고추 감자 마늘 미나리 쥐포

뼈로만 재발했다. 유방암은 재발된 위치에 따라 예후의 차이를 보이는데 뼈로만 전이된 유방암은 비교적 예후가 좋은 편이다. 그녀의 상태는 뼈로만 전이되기는 했지만 그 범위가 광범위했다. 그런데 증상은 거의 없었다. 사진을 보면 깜짝 놀라는데, 직접 그녀를 보면 더 깜짝 놀라게 생겼다. 그녀에게는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그녀의 유방 조직에서 시행한 호르몬 수용체 검사는 강양성. 이런 사람은 호르몬치료를 시도해봐도 되겠다 싶어서 일단 호르몬 치료로 1차 치료를 시작하였다. 전이성 유방암 치료의 원칙은 일단 호르몬 치료의 대상이 되는지 안되는지를 확인하여 가능한 호르몬 치료를 하는 것이다. 약간 애매한 면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의 컨디션이 너무 좋아서 나도 그렇고 그녀도 그렇고 항암치료를 피하고 싶은 마음..

병 들어도 마음만은 떠나지 마요

끝까지 병원을 같이 다니는 부부들이 있다. 첫 수술 할 때도 재발했을 때도 컨디션이 나빠 입원할 때도 임종을 맞이할 때도 그렇게 끝까지 같이 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사랑이란 이런거구나 깨닫는다. 손잡고 싶고 뽀뽀하고 싶고 그런 마음이 아니라 아플 때 안아주고 꺼져가는 등불을 지펴주는 지지자가 되어주고 힘없으면 밥도 떠 먹여주는 그런 사랑... 그런 보호자들은 환자 스스로보다 병에 대해 상태의 변화에 대해 더 잘 안다. 의사와도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나에게 미안해 하면서도 많은 상담을 원한다. 내가 그 마음의 십분의 일도 제대로 알수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겸허히 그들의 상담신청을 받는다. 그 마음은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커플도 꽤 많다. 암에 걸린 배우자를 원망하며 이혼을 요구한다. ..

엄마의 진료

전이성 유방암 전이된 곳이 한 두곳이 아니었다. 첨에 진단받을 당시 그녀의 상태는 많이 않좋았다. 너무 않좋아서 첫 항암치료를 하던 날, 나는 남편에게는 위협적인 경고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항암치료하고 상태가 더 않좋아질 수도 있습니다. 간세포가 깨지면서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어요. 각오하고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환자와 남편, 그리고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1년반이 넘었다. 그녀는 직장의 배려로 근무조건이 조금 편한 곳으로 옮겨서 직장을 쉬지 않고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다. 두 아이의 엄마로 직장맘이 학교, 유치원을 오가며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점점 컨디션이 좋아지니 직장에서의 업무도 늘어나서 지난주에는 1주일 내내 야근을 했다고 한다. ..

외래지연을 막을 수 있는 설명방식

4기 유방암을 진단받은 환자, 환자 : 저 언제까지 항암치료 해야하나요? 의사 : 병이 나빠질 때까지요. 환자 : 네? 뭐라구요? 병이 좋아질려고 하는데 나빠질 때까지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구요? 그게 무슨 말이죠? 그 이유와 기전에 대해 한참을 설명해야 한다. 일단 첫마디에 당황한 환자에게 그 다음 의사 설명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앞에서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는 의사의 목소리는 그녀의 귓가에서 웅웅거릴 뿐. 그녀는 갑작스러운 당황스러움으로 의사의 설명을 이해할 겨를이 없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난 그래서 설명을 바꿨다. 나 : 일단 여섯번 정도 해보구요 치료 효과가 좋으면 조금 더 할께요. 아홉번 혹은 12번. 환자 : 효과가 좋은데 더 한다구요? 효과가 좋다는 건 낫는다는 거 아니에요? 효과가 좋은..

오늘 한잔 하세요!

CT를 찍고 온 환자 결과를 들으려고 남편도 같이 왔다. 잔뜩 긴장한 표정들. 결과가 좋다. 난 한마디 했다. 오늘 두분 맥주 한잔 하세요. 이 평범한 한마디에 너무나 고마워 하는 환자. 내가 그런 말을 해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어서 으쓱하다. 그래 이맛이야. 이런 말을 좀 더 자주 할 수 있는 의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기분좋은 말 축복하는 말 기쁨주는 말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생의 아름다움을 공유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