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206

우 ** 환자분께

멀리서 오시면서 무겁게 떡까지 가져다 선물 주시고 감사합니다. 외래 간호사 선생님들과 나눠서 먹었습니다. 집에도 가지고 갈려고 좀 챙겨놨습니다. 저녁도 주신 떡으로 먹고 일합니다. 올리신 글에 댓글을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제가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번은 댓글을 달기 위해 블로그에 들어오는데 말이죠. 아마 글을 읽고 무슨 생각이 있어서 더 생각해보고 댓글을 달려다가 아마 시간이 지나가 버렸나봐요. 정말 죄송해요. 마음을 담아 글을 올려주셨는데... 상처도 좋아지고 치료 부작용도 심하지 않고 마음도 씩씩하게 치료 받으시는 것 같아 정말 다행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아무리 힘들어도 그걸 극복하고 이겨내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나 봅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요. 남몰래 흘렸을 눈물. 좌..

환자의 편지를 몇번이고 다시 읽으며

환자의 편지 5월 가정의 달 오늘 외래에서 환자에게 받은 선물 탈모샴푸 – 나 머리 빠지는거 걱정하며 때 되면 탈모샴푸를 사다 주시는 분이 계심 돋보기 – 노인 환자들에게 설명할 때 쓰라며. 달걀 – 자기 농장에서 손주 키운 닭에서 난 달걀 다섯꾸러미 (지푸라기에 싸 오심) 김치 - 내 인생 마지막으로 담그게 될 김치가 될 것 같다며 딸에게 보내심 ㅜㅜ 떡 – 당신이 먹으려고 샀는데 점심도 못 먹고 외래본다며 나보고 먹으라고 주고 가심 쿠키 – 럭셔리 쿠기 5개 초코파이와 사탕과 초콜렛 – 외래보면서 다른 환자들과 함께 나눠 드시라고. 야생 블루베리 – 외래 보면서 힘들 때 한 개씩 드시라고 천호석류액 – 여자 몸에 좋다며 포카리 스웨트 – 외래 올 때마다 꼭 2개씩 비닐 봉다리에 싸다 주심 요플레 – ..

오늘 항암치료 해도 되요?

우리나라 유방암의 평균 발생 나이가 40대 후반이다 보니 환자의 부모님들이 살아계시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을 모실 자식이 자기밖에 없다며 환자는 항암치료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 항암치료 받으면서 어떻게 부모 수발을 제대로 들 수 있겠냐고. 그냥 치료를 안받겠다고 한다. 항호르몬 치료를 하기에는 여기저기 병이 많은데 울며 겨자먹기로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였다. 파킨슨병에 걸린 노모를 모시는 딸은 기도한다. 제발 제가 엄마보다 일찍 죽지 않게 해주세요. 엄마가 먼저 돌아가시게 해주세요. 젤로다 2주기를 먹고 많이 좋아졌는데 수족증후군이 심해 손이 많이 거칠어져서 먹지 않겠다고 한다. 그 손으로는 부모님 목욕을 시켜드릴 수가 없어서 도저히 못 먹겠다고. 효과가 좋아 아까워도 그냥 다른 약으로 바꿔달라고 한다. ..

먼저 보내지 않게

환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나보다 오래 살게 해주면 되지? 선생님께서 그런 말씀 하시는 걸 들으면 옆에서 마음이 조마조마 했습니다. 근거가 없는 말씀 아니신가? 지키지도 못할 말을 저렇게 당당하게 하시고 나중에 환자와 가족들이 상처받으면 어쩔려고 저러실까? 선생님께서 술을 많이 드셨는데, 환자보다 당신이 먼저 가서 환자와 약속을 지킬려고 그러시는건가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환자와 가족은 주치의가 신념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걸 듣고 싶으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그런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 단 1%의 확률이 있어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남편의 말씀에 가슴에 못을 박는 말씀을 드립니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확률이 높지 않습니..

환자도 결국 환자맘대로

제가 하지 말라 말씀드려도 결국 하고 싶은데로 하시잖아요 제가 이런 말씀 드릴 때 꼭 삐치거나 화가 난 건 아닙니다. 저도 환자 눈높이에서 설명하려고 애 쓰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제 설명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한 두번도 아닌데 맨날 다시 설명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뭐 물어보면 다 하지 말라고 하는 거 같으니까 물어보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저에게 아무 말씀 안하시고 본인이 생각해봐서 해도 되겠다 싶으면 다른 보조식품을 드시거나 다른 치료방법을 병행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걸 저는 나중에 알게 되는 셈입니다. CT를 찍었더니 병이 나빠졌을 때 그때 슬그머니 얘기합니다. ‘*** 다린 물 먹어서 그런걸까요?’ ‘그동안 계속 *** 먹고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병이 않좋아 진걸까요?’ 때론 좋아질 때도 ..

걸어서 퇴원하는 그녀

무슨 사연이 있었을 거에요. 그녀는 1년전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는데 치료를 받지 않고 지냈어요. 자기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 있었대요. 아직 나에게는 그 사연을 자세히 말하지 않네요. 부모님도 모르고 계셨나봐요. 그녀는 누워서 잘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져서 휠체어를 타고 병원에 왔어요. 그녀는 나랑 동갑. 아주 얌전하고 말수도 별로 없는 스타일이에요. 얼마나 아프냐고 물어도 참을만 하다고만 해요. 내가 봤을 땐 너무 아파서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거 같은대요. 통증 때문에 자세가 굳어버린거 아닌가 싶어요. 조직검사를 하고 사진을 다시 찍었어요. 척추에 전이가 되고 골절까지 겹쳐서 많이 아팠던거 같아요. 이제 제가 항암치료를 하자고 하면, 하실 건가요? 항암치료 많이 힘든가요? 저 지금도 ..

통화를 하고 나니 마음이 정말 별루다

얼마전 돌아가신 환자의 딸이 조금 전에 나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 엄마, 왜 돌아가신 걸까요? 직접 사인이 뭐에요? 난 신장 수치가 정상이 아닌 환자 심장 기능이 약한 환자 75세 이상의 노인으로 항암치료를 하고 있는 환자 갑작스럽게 안 좋아질 가능성이 있는 환자에게 내 명함을 준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을 때 전화하시라고. 외래 전화번호, 종양내과 코디네이터 등 통화를 할 수 있는 전화번호가 있지만 이들과 통화가 연결되지 않는 오밤중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전화하시라고 명함을 드린다. 환자들은 주치의 명함을 받는 것 자체로 안도감을 많이 갖는 것 같다. 나에게 실재 전화하시는 분은 많지 않다. 사실 환자에게 명함을 주는 건 만만치 않은 부담이 있는 행위다. 환자는 언제든 의사가 자신의 상태를 잘..

당신은 나의 슈퍼맨

3년전 4기 유방암 폐전이를 진단받았다. 나는 그녀의 진단 순간을 함께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최초 장면을 모른다. 나는 그녀가 3주에 한번씩 허셉틴을 맞으러 오는 그 평온한 순간에 그녀를 진료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 마음의 동요를 느낄 수 없다. 흉부 CT를 찍어보면 변화없는 폐 병변들이 그대로 자리잡고 있다. 처음 CT 에서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그렇지만 아직 병이 있는 건 확실하다. 그러나 증상이 없다. 평소 CT 결과를 묻지 않는 그녀가 오늘 나에게 묻는다. 선생님, 저 직장생활 다시 해도 될까요? 그럼요. 직장잡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기회가 되면 해보세요. 그래도 되겠죠? 어렵게 직장 생활을 시작했는데 다시 재발되면 어떻게 하죠? 그 말을 물어보고 싶었을텐데 우린 그런 말 하지 않았다. 직장..

여인들의 마음

노란 김밥 방사선 치료를 시작한 그녀 치료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금새 울렁증이 생겼나보다. 안 그래도 하얗고 헬쓱한 얼굴이 오늘 보니 더 야위었다. 그렇게 힘든 그녀가 오늘 노랗게 물들인 밥으로 식욕을 돋우는 노란 김밥 5통을 싸 왔다. 평소 같으면 쓰지도 않는 럭셔리한 냅킨에 예쁜 포크 5개를 럭셔리한 끈으로 묶어서 나에게 선물하였다. 밥 냄새를 맡고 싶지도 않았을텐데 이런 정성들일 심신의 여유도 없었을텐데 내가 이런 정성과 사랑을 받아도 되는 사람인가 고마움과 뭔가 알 수 없는 울컥함으로 그녀의 노란 김밥을 먹을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외래 끝나자 마자 한통을 홀라당 다 까먹었다. 블루베리 요구르트 항상 시원한 블루베리 요구르트 세 병을 사오는 분이 있다. 진료 보는 나, 외래 간호사, 그리고..

제 마음 아시죠?

암 진단 수술 항암치료 또 다른 암 진단 또 항암치료 또 재발 또 항암치료 이런 과정을 반복적으로 거치면서 마음 흔들림없이 굳세게 자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제가 오늘 화 낸건 순전 제 욕심 때문이에요. 그렇게 견디고 참고 항암치료 받았는데 또 좋아졌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더 욕심내고 싶었어요. 이렇게 좋아지기 힘든데 또 좋아졌으니까 전 더 치료하고 싶었어요. 진료할 때마다 눈물 보이고 마음 힘들어하는거 다 이해하면서도 전 계속 욕심 부리고 있어요. 저는 한번도 맞아본 적 없는 항암제를 그래서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는 주제에 자꾸 치료를 강요해서 미안해요. 제 마음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