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206

마음 속 슬픔을 묻고

아주 용감씩씩한 환자가 있어요. 4기지만, 그리고 병이 좋아지는 듯 하다가 다시 나빠져서 지금 꽤 오랜 기간 동안 항암치료를 유지하며 치료하고 있지만 그는 정말 명랑하고 쾌할하고 잘 지내요. 그를 보기만 해도 내가 힘이 나는, 그런 젊은 환자입니다. 어두운 그늘이라고는 없어요. 젊어서 그런가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 그가 배가 아파서 예정에 없는 외래에 왔네요. 진통제 안 먹고도 잘 지내던 환자인데 배가 아프다고 하니 덜컥 겁이 나네요. 병이 나빠져서 그런가? 의사가 환자에 대해 갖는 그런 마음을 너무 솔직하게 노출하면 안된다고 해서 요즘 노력중이에요. 가면을 좀 쓰려구요. (우리 환자들은 제 표정을 너무 잘 읽어서 걱정이에요). 그래서 태연하게 내 마음의 걱정을 감추고, 요즘 뭐 특별히 다른 음식 먹은..

도시락

토요일 진료를 마칠 무렵 예정에 없던 그녀의 방문이 있었습니다. 나를 위해 손수 만든 도시락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녀는 내가 힘들어 보이고 내가 박사논문 쓰느라 고생했고 그런 나를 위로하고 축하해 주고 싶었나 봅니다. 이제 기분 업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담은 카드와 함께. 그녀도 힘든데 각종 약 부작용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밝은 표정으로 씩씩하게 치료받으려고 애쓰고 있는 거 내가 아는데 그런 그녀가 나를 위로해 줍니다. 나눔은 자신에게 뭔가가 많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에너지를 나에게 나누어주고 갔습니다. 전이성 유방암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그렇게 나에게 가르침과 에너지을 주는 환자들을 종종 만납니다. 환자지만, 또 다른 생활이 있기 때문에 온전히 환자로 살..

중환자실에서

표정을 감추고 내 할 일을 다할 것 나라는 사람은 마음이 표정에 다 드러난다. 그래서 남들이 내 마음을 쉽게 읽는다. 환자들도 날 보고 내 마음을 아는 것 같다. 항암치료를 하고 나서 찍은 종양평가 사진이 많이 좋아졌을 때 항암치료를 하고 나서 복부 불편감, 뼈 통증이 좋아졌을 때 항암치료를 하고 나서 숨차던 게 좋아졌을 때 복막전이로 장 마비가 심해 몇 주를 고생하다가 장루 수술을 하고 나서 환자가 잘 먹게 되었을 때 너무 기운이 없었는데 갑상선 호르몬 검사를 해서 진단하고 약을 먹은 후 기운이 좋아졌을 때 뇌전이로 실망하고 눈물짓던 환자가 방사선치료하면서 증상이 좋아지고 다시 씩씩해 졌을 때 심지어 변비가 심하다고 툴툴거리다가 내가 준 마그네슘 먹고 좋아졌을 때 하다못해 알러지로 눈물 콧물로 고생하다..

오래된 뼈전이

뼈로만 전이되면 예후가 좋다면서요 유방암이 재발하면 몇 년만에 재발했는지 호르몬, HER2 수용체 상태가 어떤지 재발한 장기가 어디인지 재발과 관련된 증상이 있는지 그런 것들이 이 환자의 예후를 가늠하게 하는 임상적 요인들이다. 예를 들면 유방암 수술을 하고 7년만에 재발하였고 (2년이 미쳐 못 되어 재발하면 예후가 나쁘다) 뼈로만 전이되었으며 (뇌나 간, 폐 등의 장기보다는 뼈나 림프절 전이만 있는 경우 예후가 좋다) 호르몬 수용체가 강양성이고 전이가 되었지만 증상이 없으면 항암치료보다는 호르몬 치료를 권고한다. 강력한 항암제를 무조건 많이 쓴다고 해서 환자에게 이득이 되는게 아니라는 점이 이미 잘 입증이 되었기 때문에 항호르몬제로 치료한다. 그래서 우리 병원 유방암 클리닉을 다니시는 전이성 유방암 환..

감기걸린 엄마

최초 진단부터 병기가 높았다. 수술전 항암치료를 했지만 HER2 양성인 환자는 수술 전 요법으로 허셉틴을 허용하지 않는 우리나라 보험제도 때문에 수술을 하고 허셉틴을 써야 보험이 되었다. 수술시 종양은 별로 줄지 않았다. HER2 양성 환자는 가능한 빨리 HER2를 막는 약을 쓰는게 성적이 좋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임상연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여하간 수술을 하고 허셉틴 1년을 썼다. 치료 받는 내내 환자는 작은 일에도 병원에 찾아와서 증상을 호소하였다. 환자는 자신의 증상을 자세히 의사에게 표현하고 대응지침을 받는게 필요하지만, 너무 자주 증상을 호소하면 의사도 무덤해지는 마음이 생기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그런 나의 무덤한 마음을 지적이라도 하듯이 그녀의 증상은 항상 어떤 병과 ..

합병증에 합병증을 더하여

합병증에 합병증을 더하여 75세 할머니. 아마도 3년쯤 되셨다고 한다. 유방에서 뭐가 잡히기 시작한게. 다 늙어서 암 진단하면 뭐하겠냐며,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다고 아웅다웅 하고 싶지 않다고, 병원에 안 오셨다고 했다. 그렇게 지내시다가 숨이 차서 병원에 오셨다. 유방암 폐전이가 진단되었는데 폐로 전이된 병변의 위치가 심장으로 들어가는 큰 혈관을 누르는 바람에 혈액순환이 제대로 안되서 숨이 차고 얼굴이 부었다. 환자가 숨을 제대로 못 쉬고 힘들어 했다. 할머니 나이도 많고 전신 컨디션이 나빠서 호르몬제를 먹으면서 방사선치료를 하여 폐 전이된 부분의 종양크기를 줄이기로 했다. 그리고 많이 좋아지셨다. 그동안 왜 병원에 오지 않으셨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열심히 치료 과정에 임하셨다. 아마 양가감정이 있으..

전이되면 수술 안하나요?

선생님, 전이되었어도 수술하면 완치 되지 않나요? 유방암은 전신적인 질환이라고 말한다. 영어로는 systemic disease 라는 말. 시스템적인 병이라는 말의 뜻은 우리가 CT 등의 영상 사진을 찍어서 눈으로 볼 수 있는 병변은 어떤 한 장기에 국소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눈에 보이지 않은 암세포들이 전신적으로 분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는 뜻이다. 우리가 사진에서 어떤 이상을 발견할 때면 이미 10억개 이상의 암세포가 집중해서 모여있기 때문에 사진에서 이상 소견이 없다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숨은 암세포가 존재해 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암세포가 10억개가 아니라 1000만개 모여있으면 우리가 검사에서 놓칠 수 있다. (물론 좀 더 예민한 검사방법으로 숨은 암세포를..

약 바꿔줘서 고마워요

먹는 약으로 바꿔줘서 고마워요 유방암이 재발한 할머니 할머니 나이는 70세. 이제 우리 사회에서 70세는 애매한 나이이다. 노인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고. 항암치료를 하기도 그렇고 안하기도 그렇다. 삼중음성유방암이라 항호르몬제도 못 쓰고 표적치료도 못 쓴다. 할머니 치료를 위한 선택은 항암제 뿐이다. 할머니 컨디션이 그리 나쁘지 않다. 아주 심한 것은 아니지만 폐정맥에 혈전도 생겼다. 4기 암환자에서 혈전증이 생기는 것은 병의 활성도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 이제 막 재발하면서 병의 활성도가 막 올라가고 있나보다. 가족들과 상의하여 항암치료 용량을 표준보다 낮춰서 치료에 도전해 보기로 하였다. 할머니 본인은 상황을 자세히 모르지만 지금 항암치료를 하는게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

인생 대비

오늘 병원 안 안산에 갔다가 소나기를 만났어요. 산이라 아름드리 나무가 있어 그 아래로 잠깐은 피할 수 있지만 갑자기 강하게 후두둑 내리는 소나기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어요. 그냥 쫄딱 맞았죠. 오늘 소나기가 올거라는거, 남부지방에 소나기가 왔다갔다 한다는 소식을 들어서 곧 소나기 구름대가 북상할 걸 알았지만 우산을 가지고 나오지는 않았어요. 어차피 우산을 쓸 정도로 비가 오면 그냥 맞는거랑 큰 차이 안나니까 비 오면 맞을 생각으로 산행을 시작했어요. 어차피 산에 갔다 오면 셔워도 해야 하고 갈아입을 옷도 있고 ㅋㅋ 오늘은 휴일이니 이 모든 과정을 서두를 필요도 없고 (바쁜 날 산에 다녀올 때가 있는데 그럴땐 정말 정신없이 뛰어갔다 뛰어내려와야 하고 갔다와서 씻을 시간도 없을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소..

뇌 MRI 검사 미리 하면 안되요?

한 신경외과 선생님이 그러신다. 암 환자가 치료받다가 뇌 전이되서 신경외과로 전과되면 환자들의 불평불만이 너무 심해서 그거 대처하는거 너무 힘들다고. 왜 진작 검사해서 미리미리 전이가 생겼는지 확인하지 않고 증상이 심해져서야 비로소 검사하고 왜 그제서야 치료를 시작하냐고 왕창 전이되기 전에 미리미리 검사로 확인하면서 병변의 크기가 조금이라도 작을때 빨리 발견해서 치료하면 성적이 더 좋은 거 아니냐고 환자들의 불만과 억울함이다. 교과서적인 원칙에 의하면 - 그리고 수많은 암치료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 뇌전이 여부를 스크리닝하기 위해 뇌 MRI 등의 검사를 주기적으로 하라고 권고하지 않는다. 즉 주기적인 검사가 주는 이득이나 이에 대한 의학적 근거가 아직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증상이 생긴 다음에 검사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