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포도 깻잎 고추 감자 마늘 미나리 쥐포

슬기엄마 2012. 7. 18. 22:11

 

뼈로만 재발했다.

유방암은 재발된 위치에 따라 예후의 차이를 보이는데

뼈로만 전이된 유방암은 비교적 예후가 좋은 편이다.

그녀의 상태는 뼈로만 전이되기는 했지만 그 범위가 광범위했다.

그런데 증상은 거의 없었다. 사진을 보면 깜짝 놀라는데, 직접 그녀를 보면 더 깜짝 놀라게 생겼다. 그녀에게는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그녀의 유방 조직에서 시행한 호르몬 수용체 검사는 강양성.

이런 사람은 호르몬치료를 시도해봐도 되겠다 싶어서 일단 호르몬 치료로 1차 치료를 시작하였다.

전이성 유방암 치료의 원칙은 일단 호르몬 치료의 대상이 되는지 안되는지를 확인하여 가능한 호르몬 치료를 하는 것이다. 약간 애매한 면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의 컨디션이 너무 좋아서 나도 그렇고 그녀도 그렇고 항암치료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게 항호르몬치료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척추 압박 골절 왼쪽 팔 골절이 발생했다.

경추 압박 골절에 대해서는 수술을 하고 이 더운 여름, 목에 넥칼라를 쓰고 다닌다.

왼쪽 팔 골절도 수술을 안하고 넘어가 보려고 했지만 어깨 가까운 곳이라 캐스트로 기브스를 하기에도 위치가 적절치 않아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2번째 전신마취를 하여 골절 수술을 하였다.

골절을 예방하기 위해서 예방적 방사선치료까지 했는데 골절이 오고 말았다.

여기 말고도 뼈 곳곳에 골절의 위험이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수술하지 않고 약물치료나 방사선치료를 하는게 좋은데 벌써 수술을 두번이나 하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수술을 할라치면 해야 할 곳이 여러 곳이다.

그녀는 팔 골절에 대한 수술을 하고 팔걸이를 하고 다닌다.

그러니까 넥칼라에 팔걸이.

이 끕끕한 여름 그녀는 그런 뭉탱이들을 몸에 두르고 그것들에 몸을 의지하며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나를 원망할 법도 하다.

처음부터 항암치료를 하지 그랬어요.

그런데 그녀는 말 한마디 없다. 마음으로는 어쩔지 모르지만 나에게 항상 웃는 낯으로 항암치료도 견딜만 하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엊그제 유기농 포도 두송이를 선물로 주고 갔다. 날도 더운데 과일 먹고 지치지 말라고.

 

 

 

소일거리로 농사지은 깻잎과 고추를 싸가지고 오셨다.

직접 농사지은거라고, 화학비료 안쓰고 정성껏 재배했다며 처음 해본건데 농사가 잘 되었다며 깨끗한 비닐 봉지에 농사작물을 싸다 주셨다. 군침이 꿀꺽 넘어가는 싱싱한 고추들. 나는 당장 병원 매점으로 가서 전자레인지용 밥이랑 양념장을 사서 환자가 준 고추를 반찬 삼아 황제의 식사를 하였다. 그런 정성어린 반찬으로 밥을 먹으면 그게 황제의 식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실은 황제의 책상이었다 ㅎㅎ)

 

 

감자랑 마늘을 농사지어 택배로 보내주신 분도 있다.

엄마는 이렇게 좋은 마늘은 처음 본다며 너무 귀한 선물이라고 하신다. 조금씩 나누어 지인들에게 또 선물을 하였다. 감자도 상태가 아주 좋다. 쪄서 식사대용으로 싸가지고 다니며 먹는다.

 

 

돈으로 치면 만원어치도 안되는 미나리를 택배로 부쳐주신 분도 있다. 택배비가 미나리값보다 더 나가는거 아닌가 싶다.

동네에서 파는 미나리인데 너무 싱싱해서 내 생각이 났다며 보내주셨다. 상자를 여는 순간 상큼한 미나리향이 어떤 향수보다도 좋은 냄새를 풍긴다. 미나리를 선물로 주시고 나서 뇌전이로 방사선치료를 받으셨다. 기운이 아주 없어하신다. 이번에는 내가 뭔가 상큼한 선물을 드려야 할 차례가 된 것 같다.

 

 

바닷가 도시에 사는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건어물이라며 멀리서 KTX 기차를 타고 오는 외래날, 비리한 쥐포와 건어물을 싸다 주신다. 심심풀이로 최고다. 많이도 싸다 주셨다. 컨디션이 최고로 좋은 그녀. 전이성 유방암 환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예쁘고 건강하고 멋지다. 외래보시는데 힘들다며, 자기는 증상 하나도 없다며,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저 오늘 허셉틴 맞고 갈까요 라며 자리에 앉지도 않는다.

자기는 할말 없다고, 증상없다고, 자기같은 환자라도 빨리 진료를 봐야 내가 편할거라며 그렇게 총총 진료실을 나가신다. 몇시간을 기차타고 와서 나는 1분도 안만나고 돌아가신다. 의사는 짧게 봐야 좋은거라며 서운한 마음을 감추신다.

 

 

나는 이런 선물을 받을 때마다

좀 황송하지만

솔직히 너무 행복하다.

아줌마들의 선물.

아줌마들의 마음.

너무 받기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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