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외래지연을 막을 수 있는 설명방식

슬기엄마 2012. 7. 13. 00:23

 

4기 유방암을 진단받은 환자,

환자 : 저 언제까지 항암치료 해야하나요?

의사 : 병이 나빠질 때까지요.

환자 : 네? 뭐라구요? 병이 좋아질려고 하는데 나빠질 때까지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구요? 그게 무슨 말이죠?

 

그 이유와 기전에 대해 한참을 설명해야 한다.

일단 첫마디에 당황한 환자에게 그 다음 의사 설명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앞에서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는 의사의 목소리는 그녀의 귓가에서 웅웅거릴 뿐.

그녀는 갑작스러운 당황스러움으로 의사의 설명을 이해할 겨를이 없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난 그래서 설명을 바꿨다.

나 : 일단 여섯번 정도 해보구요 치료 효과가 좋으면 조금 더 할께요. 아홉번 혹은 12번.

환자 : 효과가 좋은데 더 한다구요? 효과가 좋다는 건 낫는다는 거 아니에요? 효과가 좋은데도 12번이나 항암치료를 하라구요? 그렇게 오래 항암치료를 하는게 말이 되나요?

나 : 그러니까 항암제의 최대반응은 대개 4-6 주기 안에 판명이 나는데요, 그 이후에도 계속 좋아지는 타입은 항암제에 감수성이 높으니까 계속 치료하는게 도움이 될거에요. 만약 6번 정도 했는데 더 이상 좋아지지 않으면 항암제를 더 쓴다해도 큰 이득이 없기 때문에 중단하고 경과를 보는거죠.

환자 : 좋아지지 않는데 항암제를 중단하고 나빠질 때까지 기다리는 거라구요?

 

난 그래서 설명을 또 바꿨다.

나 : 일단 치료하면서 봅시다. 2번이나 3번 항암치료 해보고 CT찍고 결정할게요.

환자 : 네

 

이렇게

전형적으로 썰렁한 의사식으로 대답을 하면 진료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처음 암을 진단받은 환자에게는

자세히 설명을 해주어도, 혹은 설명을 해주지 않아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설명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 그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도 욕심을 버렸다.

처음에 다 설명해주고 이해하기를 바라기 보다는

서서히

관계를 맺고

서로 라뽀를 갖게 되면 조금씩 설명해 드려야지.

 

그래서

처음 만난 환자에게 무리하게 임상연구를 권하지 않는다.

나와 시간을 갖고 치료적 관계가 형성된 환자는 이후 내가 임상연구에 대해 설명하면 그냥 하신다고 한다. 내 설명을 듣고 그 연구를 잘 이해하고, 자신에게 도움이 될거라고 믿기 때문에 하는게 아니라, 그냥 나를 믿고 한다고 하신다. 합리적 관계라기 보다는 믿음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 같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 믿고 나에게 진료를 받는 환자를 위해 한치 오차도 없어야겠다.

그 믿음을 저버리는 의사가 되어서는 절대 안되겠다.

세상이 변해도

그것만은 잊지 않는 의사가 되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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