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부모님이 혼자 사시면 건강검진 꼭 챙겨주세요

슬기엄마 2012. 7. 28. 16:35

 

3년전부터 유방이 이상했다.

혼자 사는 70세 어머니는 딸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으셨나 보다.

최근 유방 상태가 나빠지면서 고름도 나오고 피가 나올 때까지도 말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숨이 차기 시작하니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가야 했고

자식들은 뒤늦게

어머니가 유방암이고, 온 몸 여기 저기로 전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 진단받은 병원에서 찍은 CT를 보니 폐 늑막에 물이 많이 고여있다. 늑막도 이미 많이 두꺼워져 있다. 지금 고여있는 물이 최근에 생긴게 아니라 꽤 오래전에 생겨서 오랫도안 고여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미 맑은 물이 아니고 지들끼리 뭉쳐있는 (loculated fluid) 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상태에서 환자가 숨차다고 흉수 천자를 시도했다간

약해진 폐에 조금만 자극이 가해져도 구멍이 생기기 쉽다. 건드리지 않는게 원칙이다.

 

환자 전신상태도 좋지 않고

주요 장기에 이미 전이가 다 진행되어서

70세라는 환자 나이를 고려할 때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꽤 부담스럽다.

산소를 외부에서 공급해 주어도 별로 증상 호전이 되지 않는다. 당연하지...

항암치료를 시작하기도 겁나고

치료 후 발생하는 독성을 얼마나 견디실지 잘 모르겠다.

할머니 댁은 여기서 아주 먼 경상도 어느 시골 마을.

치료를 시작해도 정기적으로 서울까지 병원을 다니시기 힘들 것 같다. 항암치료 중 부작용이 생기면 자주 병원에 와야 하는데 지리적으로 그게 어려울 것 같다. 아직 현재 한집에서 모시고 사는 자식도 없이 혼자 힘으로 살고 계신다.

 

 

호르몬, HER2 수용체 결과가 나오지 않아 2-3일을 기다리는 동안

환자가 똑바로 누워서 잠을 못자고

낮에도 계속 안절부절하는 기색을 보인다. 

환자들이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안절부절하는 것은 좋지 않은 싸인이다.

하루하루 상태가 나빠지는 것 같다.

 

가족을 불러 사진을 보여드리고 이것 저것 설명드린다.

 

1. 병이 오래된 것 같다. 너무 늦게 발견되었다. 항암치료로 암세포의 성장을 어느 정도 억제시키기 않으면 증상도 좋아지지 않고 지금 상태가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 문제는 항암치료를 시작하기에 좋은 상태가 아니시다. 항암치료는 컨디션이 좋을 때 받아야 하는 치료인데, 지금처럼 숨도 차고 식사도 잘 못하시고 이렇게 않좋은 컨디션에서 항암제를 맞으면 치료효과 보다는 부작용을 더 고생하실 가능성이 높다. ................................... (의사의 경고성 발언.....)

 

2. 항암치료를 시작하게 되면 서울까지 왔다갔다 하실 수 있으신지 여쭤보니, 첨에 진단받은 병원에서는 항암치료 못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셨다. 그런 판단에 충분히 동의할 법 하다. 그만큼 환자 상태가 않좋으시니...

 

3.  항암치료를 시작하든 안 하든 간에, 가족은 환자의 죽음에 대해 대비하실 필요가 있고 

본인도 그 사실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나는 

결정이 어려운 점도 있고 치료의 위험성도 있지만 항암치료를 했으면 한다는 의견을 말씀드렸다.

 

가족은 몇 차례 상의를 하더니

일단 항암치료를 시작하기로 결정하셨다.

 

그리고 이틀째, 다행히 환자는 숨쉬는 것도 많이 좋아지고 잠도 더 잘 주무시고 식사량도 많이 늘었다. 뭔가 항암치료 후 환자 상태가 호전되는 느낌을 준다. 조금 더 입원을 지속하면서 경과를 지켜볼 예정이다.

 

가족과는 앞으로도 여러 차례 가족미팅을 하고 환자에 관해 상의할 일이 많을 것 같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암을 진단받게 되면

가족이 함께 머리를 모아 환자를 지지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당장의 병원비도 분담해서 내야 하고

옆에서 환자의 일상을 도와줄 사람이 있어야 하고

병원에 왔다갔다 할 때 동행할 스케줄도 짜야 하고

응급 상황에서 환자를 위해 어떤 조치가 가능한지도 미리 예상하고 대처법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치료가 잘 되서 좋은 날이 올 수도 있지만,

결국 언젠가 올 그날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임종 후를 준비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환자에게 배우자가 있다면, 사별을 맞이할 배우자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한다.

 

치료를 받는 환자도 힘들지만

가족도 그만큼, 혹은 그 이상 힘든 일이 많이 생긴다.

이런 일은 한 순간에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천천히 예상치 못하게 다가와서 가족들을 당황시킬 것이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운명인 것을. 준비하여 마음의 충격을 줄여야지...

혼자 사시는 부모님이 계시다면, 건강검진 챙겨드리고, 너무 나빠진 상태에서 발견되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 괜찮으신지, 불편한 증상은 없으신지, 꼭 여쭤보고 말이다. 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 자신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자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