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101

환자의 편지

아줌마끼리라 그럴까? 편지를 건네는 환자들이 많다. 한장 빼곡히 치료 받으며 궁금한 사항을 적어 온 메모도 있고 치료 과정 중 마음의 변화과정, 갈등, 고통, 의사에 대한 고마움, 병원에 대한 불만 이런 내용을 담은 편지도 있다. 난 책상서랍 하나를 비워 그런 환자들의 메모와 편지를 모아둔다. 20년전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 처음으로 편지지를 사서 손편지를 써본다는 환자의 편지를 받았다. 6번의 항암치료 후 수술을 받고 퇴원하면서 외래를 들르셨다. 막막했던 진단의 순간, 몸보다 마음이 힘들었는데, 그래도 시간은 갔다며 시작하는 그녀의 편지. 20년을 쉬지 않고 일했는데 유방암을 진단받고 자신의 모든 과거, 열정, 업적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았는데 힘들게 고비를 넘기며 치료를 받고 나서 생각해보니 얻..

외래 대기실 풍경

제일 많이 하는 얘기 : 먹는 얘기 그거 먹어봤수? 지난 주 생로병사 봤어? 브로컬리가 그렇게 몸에 좋대. 그거 말고 무슨 무슨 음식이 면역력 올리는데는 그만이래. 닭발 먹으면 백혈구 수치 않떨어진대. 누가 그거 먹고 병원에서 치료포기했는데 지금 완치됬대. 홍삼은 도대체 먹어도 되는거야 안되는거야? 이수현선생님이 블루베리는 먹어도 된다고 했대. 그 다음으로 많이 하는 얘기 : 부작용 관리법 손발 저린데는 뭐뭐뭐 하면 좋아. 호르몬제 그거 먹는거 너무 힘들지 않아? 아주 짜증나 죽겠어. 항암제 맞고 속 않좋을 때는 이렇게 하면 좀 덜하대. 피부 까매지니까 밖에 나갈 때 꼭 화장해야 되. 뼈주사 맞으면 그날 밤은 왜 그렇게 힘들어? 그래? 나는 괜찮던데... 백혈구 촉진제 그거 안맞으면 안되나? 나는 자꾸 ..

치질의 아픔

98년 슬기 낳고 나서 치질이 생겼다. 여자들은 애 낳을 때 치질이 많이 생긴다고 한다. 이놈의 치질은 나왔다 들어갔다 하기 때문에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아서 모르고 살지만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계속 앉아 있을 때, 힘든 일이 겹칠 때, 스트레스 많이 쌓일 때 바깥 세상으로 나온다. 그놈이 나오는 걸 느낄 정도면 좀 심각하다. 그리고 치질은 변비와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난 그래서 변비에 무지하게 예민하다.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치질과 변비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있다. 사실 처음 항암제 부작용 설명할 때 치질과 변비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빈도나 심각성 면에서 더 자주 발생하는 증상을 주로 설명하다보니까 그런것 같다. 그래서 예상치 못하고 이들 증상이 발생하면 거의 울상이 되어 허리를 똑바로 못..

명절연휴, 에너지 재충전!

마지막 항암치료를 받는 날. 그동안 감사합니다. 저한테 감사할일 있나요. 고생은 환자가 다 했는데요. 수고하셨어요. 이제 잘 지내세요. 이제 선생님 외래는 안 오나요? 네, 외과 외래 다니시면 되요. 무슨 일 있으면 와도 되죠? 그럼요. 그렇지만 무슨 일 있으면 안되죠. 불안해서요... 치료를 다 끝냈는데 불안하다 하신다. 그동안은 병원 다니는 싸이클에 맞춰서 혹은 그 생활리듬에 의지하며 살았는데 이제 자기 스스로 일상생활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불안하신가 보다. 그동안은 블로그에 들어가보지 않았어요. 그런 글 읽고 싶지 않았어요. 걱정이 더 많이 생길 것 같아서요. 그런데 치료를 마친다고 생각하니까 뭐라도 의지할게 없을까 싶어서 어제 들어가봤는데요... 마음이 더 심란해지네요. 네 많은 분들이 그렇..

사진 찍어도 되요?

나의 첫 대학시절, 스무살 풋풋한 나이. 그때 나의 꿈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Portrait (인물사진)를 찍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진작가 최민식의 사진집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시장에서, 버스에서, 길거리에서, 논밭에서 우리의 일상을 포착하였다. 사람의 얼굴, 표정을 통해 시대를 상징하였다. 나도 그렇게 사진으로 사람의 얼굴을 담고 그것으로 시대를 표현하는 사진찍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삶의 리얼리즘을 담은 사진도 찍고 싶었다. 그래서 항상 50mm 단렌즈 니콘 카메라를 매고 다녔다. 화장실 갈 때도 카메라를 매고 갔다. 삶의 한 순간이라도 내가 원하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때 내가 가장 찍고 싶었던 것은 학생들이었다. 미래의 희망. 그들을 통..

완전히 믿는다는 것 - 닥터쇼핑

의사의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인 믿음과 권위가 떨어져서 그런걸까? 환자의 소비자 주권의식이 높아져서 그런걸까? 의사의 판단을 믿지 못하고 이 병원 저 병원 여러 곳을 다니는 환자들이 있다. 다른 의사의 의견을 듣는게 필요할 때가 있다. 그것을 의사들끼리는 Second opinion (2차적 자문 정도로 번역하면 될까?) 을 구한다고 한다. 질병의 세계는 환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의학적인 진단이 딱 떨어지지 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의술은 예술이라고 비유되기도 한다) '조직검사해서 암세포가 나오면 암이다' 이렇게 진단하는게 사실 가장 쉽다. (그러므로 암이 아닌 병은 진단이 더 애매하고 복잡한 경우가 많다.) 조직검사를 한번 해서 암이 안나오면 그게 진짜 암이 아니냐, 영상학적으로는 암인것 같은데, 정말 ..

즐겨찾기

나의 블로그는 2011년 3월 1일 오픈하였다. 나는 블로그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냥 매일 글을 써서 올리는 것 밖에 하지 못한다. 그 글을 쓰면서 듣는 음악도 같이 올리고 사진도 올리고 뭐 그런 짓도 곰살궂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른다. 내가 체크할 수 있는 기능은 방문건수하고 방문 경로 정도. 8월들어 블로그 방문건수는 하루 평균 200건이 넘는다. 300건이 넘는 날도 가끔 있다. 방문경로는 페이스북을 통해 들어오는 친구들. 그리고 검색엔진에 키워드를 쳐서 들어오는 사람들, 헬스로그에서 연결되어 들어오는 사람들 정도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내 환자들이 가장 많이 방분하고 계신것 같다. 나의 원래 목표를 달성한 것 같아 흐뭇하다. 젊은 엄마와 딸이 ..

환자의 제안

내 환자 중에 좀 지위가 높으신 공무원이 있다. 사실 무슨 일을 하시는지는 잘 모른다. 암튼 좀 높다고 들었는데 직급을 까먹었다. 3급이라고 했던가? 그 분은 수술하기 전 항암치료를 하시는데 항암제를 잘 견디는 편이라 직장을 쉬지 않고 계속 근무중이시다. 직장에서도 본인이 항암치료 중인지 모른다고 하신다. 항암제는 금요일 밤에 입원해서 늦게 항암제 맞고 주말에 가신다. 그리고 월요일은 정상 출근을 하신다. 딱히 병을 숨기려고 했던 건 아니고 괜히 이사람 저사람 아는 척 하면 말하기도 귀찮고, 특별 대접 받기도 싫고 그럭저럭 치료 견딜만하니까 말 안하고 지낸다 하신다. 나중에 수술하고 나면 얘기할거라고 하셨다. 너무 씩씩하시다. 항암치료 중에 큰 발표도 하셨다. 지방자치단체도 무슨 큰 사업같은 걸 잘 따고..

비타민, 오메가3 먹어도 되나요?

주말동안 학회가 있었다. 올 6월 미국암학회에서 발표된 주요 논문과 의미있는 연구들을 리뷰하고 공부하는 학회였다. 유방암 폐암 위암 대장암 ... 각종 주요 암종의 최신 지견을 이틀간에 걸쳐 요약정리하는 시간.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했다. 그중 한 세션에서 항암제의 효능과 관련된 것은 아니나, 암 생존자나, 치료 중인 환자를 지지/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연구도 소개되었다. 예를 들면 요가는 폐경기 증상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는 통계적으로 의미있게 보고 되었다. 아마씨는 유방암 환자에게 증상개선이나 삶의 질, 생존율 향상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 되었고 통계적으로 확실하게 negative data임이 보고되었다. 암의 재발을 막기 위해 암의 치유를 위해 환자의..

혈압약 당뇨약 고지혈증약, 다 드리지는 못하겠어요

선생님, 혈압약하고 고지혈증약도 같이 한달치 주세요 오늘 혈압 잰 종이 좀 보여주실래요? 안 쟀는데... 한번 재고 오실래요? 네 그러는 동안 최근 콜레스테롤 검사결과를 찾는다. 정상. 고지혈증약의 보험기준은 나름 까다로워서 수많은 과거병력과 언제 수치가 올랐었는지 이런걸 다 따져야 하는데 외래에서 그걸 뒤져볼 시간이 없다. 삭감을 각오하고 그냥 처방해 드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개는 설명을 한다. 환자가 이해를 못하거나 오해를 하는 것 같으면 설명시간이 길어진다. 외래 지연의 원인이 된다. 제가 암을 주로 보는 의사이다 보니까 혈압이나 지질대사 관련 전문지식도 짧고, 부작용에 대해서도 어떻게 모니터링 해야하는지 잘 모릅니다. 이 약을 처음 처방해주신 의사선생님께 가서 약제를 계속 유지해도 되는지, 앞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