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완전히 믿는다는 것 - 닥터쇼핑

슬기엄마 2011. 9. 6. 20:08


의사의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인 믿음과 권위가 떨어져서 그런걸까?
환자의 소비자 주권의식이 높아져서 그런걸까?
의사의 판단을 믿지 못하고 이 병원 저 병원 여러 곳을 다니는 환자들이 있다.

다른 의사의 의견을 듣는게 필요할 때가 있다. 그것을 의사들끼리는 Second opinion (2차적 자문 정도로 번역하면 될까?) 을 구한다고 한다.
질병의 세계는
환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의학적인 진단이 딱 떨어지지 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의술은 예술이라고 비유되기도 한다)
'조직검사해서 암세포가 나오면 암이다' 이렇게 진단하는게 사실 가장 쉽다.
(그러므로 암이 아닌 병은 진단이 더 애매하고 복잡한 경우가 많다.)

조직검사를 한번 해서 암이 안나오면 그게 진짜 암이 아니냐,
영상학적으로는 암인것 같은데, 정말 그게 암인지 확실하냐 반드시 조직검사를 해야 하느냐
임상 현장에서는 여러모로 애매한 상황들이 많다.
환자들에게 그런 애매한 상황을 설명하면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당연하다.
나 조차도 잘 모르겠을 때, 다른 과의 의견을 듣거나, 그 분야의 전문가 선생님이 계시는 다른 병원 선생님께 의견을 구한다. 그건 당연히 필요한 과정이다. 실재 암을 진단하는 병리 선생님들도 세포 모양이 확실치 않으면 슬라이드를 택배로 다른 병원에 보내고 여러 선생님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진단하기도 한다. 그럴 때 진단결과가 늦게 보고되기 마련이다. 의료진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의견이 상충할 수 있어서 여러 의견이 충분히 토의되고 결론을 내리는게 좋다.

그러나 환자가 스스로 판단해서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는 것은 불필요한 검사나 시간 낭비가 될 가능성이 높다. 병원마다 진료 패턴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비슷한 검사가 중복될 가능성도 높고, 검사하고 결과 기다리고 다시 선생님 만나고 하는 동안 몇일의 시간이 지나가게 된다. 의료진마다 설명방식이 조금씩 다를 수도 있기 때문에 설명을 듣다보면 더 헷갈리고 오해가 생기기도 쉽다. 이 병원에서는 이렇다고 했는데 저 병원에서는 저렇다고 하고 어떻게 하란 말인가요 그런 심정이 든다.
그래서 차라리 담당 주치의에게 나는 이러이러한 면에서 의구심이 들고 확실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표명을 명확히 하는게 낫다. 물론 이런 얘기를 여유롭게 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 현실의 한계이다. 괜히 얼굴 붉힐 것 같고 의사에게 눈치보이고 하니까 슬쩍 의무기록을 다 떼어가서 다른 병원에 가게 된다.

자기 담당 의사를 완전히 믿고 그의 의견을 따르려면 환자에게도 뭔가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병이 진단되는 초기 몇번의 만남에서 그런 믿음을 갖기는 쉽지 않다.
대개의 의사들은 사회성이 떨어지고, 환자 입장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잘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환자의 마음에 못 박는 말도 잘 한다.
환자는 불안한 마음을 의지할 곳이 없어
소위 명의로 이름만 의사를 찾아 긴 대기시간을 감수하며 병원을 옮겨 의견을 들으려고 한다.
그 마음을 잡을 수 없다.

내가 노력해야 하는 것은
그런 믿음을 주는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외형으로 그럴싸한 말을 번지르르하게 해서 환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아니라,
실력으로, 교과서적으로 진료하고 최선을 다해 치료하는 의사라를 믿음을 얻는 것이다.

올 초, 당신은 우리 어머니와 같은 환자를 몇 케이스나 보았냐고 질문한 아들이 있었다. 그 말은 나에게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그로서는 당연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사실 그 질문을 받고 매우 당황에서 아주 적절하게 대답하지 못했던 것 같다.

환자 본인의 마음도 흔들리고
주위 가족들 - 나는 한번도 보지 못한 주위의 친척들 - 말을 들으니 더 흔들리고
그런 환자와 대화를 나누며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환자가 원하는 병원의 선생님들도 제가 잘 아는 분입니다. 모두 저보다 오래 유방암 환자를 진료하셨고 유방암 치료 잘 하십니다.
저의 소견을 담아 진단서를 써 드리고, 저는 어떤 방식으로 치료하려고 했는지 의견을 전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선생님께서는 다른 의견을 제시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단 치료를 시작하면 그 선생님을 믿고 치료를 받으세요.
그 선생님은 제가 알기로 정말 좋은 분입니다.
환자는 자신을 담당하는 의사를 믿고 치료를 받을 때 치료효과가 더 좋습니다.

환자는 우리 병원에서 치료하기로 하였다.
가려는 환자 잡으면 안되는데...
나를 믿어준 것일까?
내가 잡은 꼴이 된 걸까?
내가 너무 부담 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