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사진 찍어도 되요?

슬기엄마 2011. 9. 7. 22:00

나의 첫 대학시절,
스무살 풋풋한 나이.
그때 나의 꿈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Portrait (인물사진)를 찍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진작가 최민식의 사진집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시장에서, 버스에서, 길거리에서, 논밭에서 우리의 일상을 포착하였다.
사람의 얼굴, 표정을 통해 시대를 상징하였다.
나도 그렇게 사진으로 사람의 얼굴을 담고 그것으로 시대를 표현하는 사진찍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삶의 리얼리즘을 담은 사진도 찍고 싶었다.
그래서 항상 50mm 단렌즈 니콘 카메라를 매고 다녔다. 화장실 갈 때도 카메라를 매고 갔다.
삶의 한 순간이라도 내가 원하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때 내가 가장 찍고 싶었던 것은 학생들이었다. 
미래의 희망. 그들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을 담고 싶었다. 찌들은 학교생활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아이들을 찍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인생의 여러 전환점을 돌아 지금은 의사가 되었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심지어 카메라 자체를 외면하고 산지 20년쯤 된것 같다.

가끔 병동에서, 외래에서
환하고 밝은 표정의 환자들을 보면서 사진을 다시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처럼 아이폰의 카메라 기능이 좋아진 시절이라면, 사실 이제 사진 한장 찍는게 큰 부담은 아니게 되었다. 환자에게 큰 부담 주지 않고 한장 정도 슬쩍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이폰 사야하나...

얼마전 병동에서 항암치료 후 컨디션이 많이 좋아진 환자가 있어 환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그때는 사실 우리 암센터 홍보 리플렛용 사진이 필요했다. 환자는 흔쾌히 허락했고, 마침 교회에서 성가대가 와서 노래를 해 주어 다같이 사진을 찍었다. 환자는 아직 복수도 있고 하지부종도 심해서 완전히 좋은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입원 당시에 비해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사진 촬영을 허락해주었다. 그리고 퇴원할 때 잘 나온 사진 몇장을 뽑아 선물로 드렸다. 환자와 가족이 참 좋아하였다. 우연한 선물이었는데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흐뭇했다.

아무때나 카메라 들이대도 환자들이 놀라지 않을 정도의 신뢰감이 생기면
환자들의 일상을 담는 사진을 찍고 싶다.
한장 찍을께요
그러시든가...
이 정도 반응이 나오면 좋겠다.

열심히 치료받고 최선을 다해 일상을 살아가려고 애쓰는 환자들의 지금 모습.
추래하게 보일까봐 병원에 올때는 더 정성들여 예쁘게 화장하고 화사하게 차려입고 그 모습 그대로,
항암치료 끝나고 삐죽삐죽 나는 머리 예쁘게 다듬고 오는 그 모습 그대로,
자기가 직접 뜨게질 한 모자로 탈모를 커버하는 그 모습 그대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일상을 투쟁하며 애쓰는 나의 슈퍼맨 환자들을 담은 사진을 찍고 싶다.
좋은 카메라, 완성도 높은 촬영 기술이 아니어도
그냥 일상을 자연스럽게 담은 사진으로 그들을 담고 싶다.
아마도 의사가 아니면 부자연스러울 그 상황에서
내가 주치의이기 때문에 갖는 특권으로 그들을 담고 싶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환자들과 마음이 더 잘 통하게 되면
제안하고 싶다.
오늘 사진 한장 찍어도 되요?
이렇게 말이다.


힘든 치료를 받고 있는 지금을 기억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기약없은 치료를 하고 있는 중이라면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힘들고 견디기 어려울지 모르겠다.
애써 태연한 척 외래 진료를 받고 돌아가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항암치료 4번을 마치고, 혹은 항암치료 8번을 마치고
당분간 나를 만나지 않아도 되는 환자분들께는 내가 먼저 악수를 청한다.
마음 속으로 '힘든 치료를 견딘 당신, 장하지 않소! 사진 한장 찍읍시다!' 그렇게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