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명절연휴, 에너지 재충전!

슬기엄마 2011. 9. 10. 12:16

마지막 항암치료를 받는 날.

그동안 감사합니다.
저한테 감사할일 있나요. 고생은 환자가 다 했는데요. 수고하셨어요. 이제 잘 지내세요.
이제 선생님 외래는 안 오나요?
네, 외과 외래 다니시면 되요.
무슨 일 있으면 와도 되죠?
그럼요. 그렇지만 무슨 일 있으면 안되죠.
불안해서요...

치료를 다 끝냈는데 불안하다 하신다. 그동안은 병원 다니는 싸이클에 맞춰서 혹은 그 생활리듬에 의지하며 살았는데 이제 자기 스스로 일상생활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불안하신가 보다.

그동안은 블로그에 들어가보지 않았어요.
그런 글 읽고 싶지 않았어요. 걱정이 더 많이 생길 것 같아서요.
그런데 치료를 마친다고 생각하니까 뭐라도 의지할게 없을까 싶어서 어제 들어가봤는데요...
마음이 더 심란해지네요
.
네 많은 분들이 그렇다고 하십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시간을 얼마간 견디시면 다시 마음이 강해집니다. 분명히 그러실거에요.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추석 연휴를 앞둔 토요일 외래, 사소한 증상으로 환자들이 많이 왔다.
별 특별한 증상은 아닌데, 연휴기간 동안 더 아프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어 오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았다. 괜찮다는 의사의 한 마디를 듣고 싶으셨던 것 같다.

추석을 앞두고 여러 환자들이 카드, 편지, 선물을 주셨다.
다들 자기가 고생한건데, 나한테 고생했다며, 고맙다고 하시니 원...
여자 환자들이 많아서 그럴까? 긴 편지가 많다. 마지막엔 꼭 나의 안부와 건강을 잊지 않으신다.
편지를 읽어볼 때마다 마음이 짠하다.
외래보다 배고프면 먹으라고 칼로리바를 주고 가시는 분, 멀리서 오시면서도 무거운 애플망고를 사가지고 오신 분, 심지어 한약을 지어 오신 분, 자기가 먹어보니 좋은 거 같다며 영양제를 선물로 주시는 분, 직접 말려 다듬어 오신 건어물을 주신 분.
그러고 보니 먹을 것이 많구나. 정말 고맙지만 내심 마음이 짠하다.  그들 삶이 느껴지는 애잔한 선물이다. 

환자들은
3주에 한번씩 오는 외래, 그 시간동안 자기 얘기도 많이 하고 싶고, 궁금한 것도 묻고 싶고, 의사랑 이런저런 얘기 많이 하고 싶어 하신다.
그렇지만 정작 자기가 그렇게 시간을 뺏으면 다른 환자의 진료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신다. 그래서 말을 아끼려고 노력하는게 느껴진다. 매일매일 외래를 볼 때마다 그런 환자들의 마음을 잘 보듬어 줄 수 있는 의사가 되어야 겠다고 결심한다.

명절연휴.
휴식할 시간이 생겼다.
재충전 잘하고, 에너지 많이 보충해서 이 가을을 맞이해야겠다.
오랫만에 훤한 낮 시간에 산에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우리 환자들도 잠시 걱정과 불안을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명절을 잘 보내셨으면 좋겠다. 
명절 음식 잘 못 드시고, 응급실 오시는 분이 없었으면 좋겠다.

블로그에 들어오시는 분들께 명절연휴 인사드립니다.
시원한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이번 한가위, 좋은 일 많으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