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외래 대기실 풍경

슬기엄마 2011. 10. 8. 18:56

제일 많이 하는 얘기 : 먹는 얘기
그거 먹어봤수?
지난 주 생로병사 봤어? 브로컬리가 그렇게 몸에 좋대.
그거 말고 무슨 무슨 음식이 면역력 올리는데는 그만이래.
닭발 먹으면 백혈구 수치 않떨어진대.
누가 그거 먹고 병원에서 치료포기했는데 지금 완치됬대.
홍삼은 도대체 먹어도 되는거야 안되는거야?
이수현선생님이 블루베리는 먹어도 된다고 했대.

그 다음으로 많이 하는 얘기 : 부작용 관리법
손발 저린데는 뭐뭐뭐 하면 좋아.
호르몬제 그거 먹는거 너무 힘들지 않아? 아주 짜증나 죽겠어.
항암제 맞고 속 않좋을 때는 이렇게 하면 좀 덜하대.
피부 까매지니까 밖에 나갈 때 꼭 화장해야 되.
뼈주사 맞으면 그날 밤은 왜 그렇게 힘들어? 그래? 나는 괜찮던데...
백혈구 촉진제 그거 안맞으면 안되나? 나는 자꾸 열이 나긴 하는데 그거 맞으면 더 힘든거 같애.
나는 항암치료 끝나고 허셉틴만 맞는데 왜 머리 안나는거야? 자기는 머리 많이 자랐네.
근데 머리카락 다시 나면서 곱슬거리고 좀 이상하지 않아?

그그 다음으로 많이 하는 얘기 : 병원 다니면서 느끼는 고충토론
오늘 외래는 왜 이렇게 지연되는거야?
외래 들어가면 질문 좀 그만해. 자기가 더 많이 하면서. 자기는 꼭 나보다 늦게 나오더라.
CT는 왜 이리 자주 찍는거래? CT 찍는것도 지겨워.
세브란스는 병원구조가 뭐 이리 복잡해?
지하철에서 내려서 병원까지 너무 멀지 않아? 셔틀버스 생겼잖아. 그거 타. 그거 너무 띠엄띠엄 와서 별로야.
자기는 피 어디서 뽑아? 검사결과 빨리 나오게 하려면 암센터에서 뽑는게 좋다며?
의사들은 왜 그렇게 바빠보여? 무슨 질문을 못하겠어. 

이런 대화에 끼지 못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검사 결과를 듣기로 되어 있는 환자들.
언제까지 이렇게 검사하고 결과 기다리고 하는 생활을 해야 할까? 오늘은 다른 동료 환자들의 이야기에 끼고 싶지 않다. 어제 밤에 잠 한숨 못자고 걱정과 불안 가득.
한명 한명 진료실에서 나오는 다른 환자들 표정이 밝으면 부러움 가득. 좋겠다. 별일 없나 보구나.
이 자리에, 이렇게 초조한 마음으로 진료를 기다리는게 싫다.

누구씨는 오늘 왜 안보여?
머리 아파서 MRI 찍었는데, 머리로 전이되서 입원했대. 아까 들러보고 오는 길이야.
그이 허투 양성이지? 허투는 머리로 전이가 잘 된대.
나도 허투 양성인데...


진료실 문이 여닫힐 때마다 바깥에서 환자들이 하는 이야기소리가 들린다.
아줌마들이 많아 아주 시끌벅적할 때가 많다.
친한 환자들끼리 외래 시간을 같은 날 같은 시간으로 맞춰서
외래 때마다 만나기도 하는 것 같다.
하도 시끄러울 때면 나가서
'떠드는 사람 이름 적습니다' 하고 싶을 때도 있다.
사실 우리 유방암 클리닉은 대기실 장소도 협소하고 공간도 별로다.

대기실을 좀더 쾌적하게 만들고
은은한 음악도 들을 수 있고
유방암에 관한 유용한 정보를 다양한 형식으로 제공하고
Q & A 게시판도 설치해서
블로그에 들어오지 않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질문지를 써 내고, 많이 들어오는 질문을 선별해서 게시판에 답변도 올리고, 기다리는 동안 그런 게시판 읽으면서 공부하고.
그렇게 하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