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101

폐 하나로 마라톤을 완주하신 68세 근육질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임상연구로 항암치료를 받으셨던 분들은 평소 문제가 있거나 불편한 점이 있을 때 임상연구간호사들과 전화를 하면서 치료를 받으셨던 터라 치료가 끝난 후에도 궁금한 점이 있으면 연구간호사선생님들께 전화를 자주 하시는 모양입니다. 당장 환자가 병원에 올 정도도 아니고 올 필요도 없지만 궁금한게 생기니 임상연구간호사 선생님들이 저에게 대리로 질문을 많이 합니다. 치료가 일단 끝났는데 흑염소 먹어도 되냐고... 홍삼을 다려 먹어도 되냐고 민들레 물 먹어도 되냐고 저는 우리나라에 엄청나게 많은, 이름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좋은 음식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의사가 단칼에 '노'하면서 '그런거' 드시지 말라 해도 사실 환자들은 '알아서' 다 드시고 있기 때문에 저는 가능하면 환자가 제 뜻을 이해하시게 설명하려고 하..

남편들의 메일을 받으면

나는 유방암을 처음으로 진단받은 환자와 면담할 때 남편이 있는 분들은 가능하면 남편도 함께 대동하시도록 한다. 환자와 남편을 앞에 두고 병기, 예후, 치료방침, 치료시 주의사항을 설명한 다음 남편에게 당부하는 말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치료를 시작할 때는 다들 잘 해주지만 시간이 지나면 멀쩡히 잘 치료받고 견디는 아내를 보며 슬슬 마음도 안심되고 처음의 충격도 가시기 때문에 도와주고 보살펴주려는 마음도 약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환자들은 치료를 마치고 더 힘들다. 재발의 위험성에 대하 공포심이 제일 큰 부담이고 몸이 완전히 정상이 될거라는 기대감이 컸는데 상당히 오래동안 후유증에 고생하기 때문도 있고 치료 후에 폐경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애매한 폐경 후 증상들 때문에 설명할 수 없는 불편감도 크고 부..

주말에 병원에 나와

외래 진료가 없고 공식적인 업무를 쉴 수 있도록 허락받은 주말 휴일. 어제는 오전 외래를 잽싸게 보고 학회에 갔습니다. 나보다 백만배 훌륭하신 선생님들의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였습니다. 오늘은 늦잠자고 엄마생신기념 점심식사를 가족과 함께 하고 오후에 병원에 나왔습니다. 일요일 오후, 오자마자 EMR을 열어 입원한 신환들의 상황을 점검합니다. 내일 외래도 예습해야 합니다. 다음주 있는 발표 준비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재임용에서 탈락되지 않을려면 논문도 써야 합니다. 일을 하다보면 논문이 제일 뒤로 밀립니다. 그래서 아주아주 진행속도가 느립니다. 뭔가가 내용전개가 좀 막힌다 싶으면 그걸 돌파할 실마리를 찾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마음은 입원한 환자들에게로 돌아갑니다. 그것은 내가 마음..

결국은 돈....

악성 고혈압이 의심되는대도 그냥 집으로 가신 환자분이 오늘 오셨다. 오늘도 220/120mmHg, 증상은 없다. 나는 외래지연을 각오하고 환자분 손을 꼭 잡고 부탁드렸다. 약 먹었는데도 전혀 조절되지 않으니 입원하시자고. 왜 입원하자고 하는지, 지금 왜 입원해서 혈압을 떨어뜨려야하는지, 유방암은 재발했지만 그냥 포기한다고 끝나는 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환자는 점점 눈시울이 벌게온다. "돈 많이 드나요?" "심장 초음파는 보험이 안되니까 한 20만원 들거에요. 그거 빼고 나머지는 다 보험이 되는 검사랑 보험이 되는 약만 쓸게요." "그럼 다인실로 입원하게 해주세요" "제가 최대한 원무과에 알아보고 부탁할게요." 이런 대화 과정은 사실 이렇게 클리어 하지 않고 지지부진 좀 시간이 지났다. 나는 오늘 외래..

나만 고생이 아니야

72세 할머니. 유방암 3기로 수술전 항암치료를 받으신 후 수술을 받으셨다. 그리고 요즘은 수술 후 허셉틴을 맞고 계신다. 이제 4-5개월 남으신 것 같다. 다행히 다 보험이 되는 시절의 치료라 치료비 자체가 아주 큰 부담은 아니다. 그래도 할머니는 본인의 경제적 능력은 없는 상태에서 자식들이 비용을 다 대주는 최근 1-2년의 치료과정이 아주 부담스러우신 모양이다. 무슨 약이든 안 쓰겠다고 하고 검사도 안 하시겠다며 그냥 대충 견디시겠다고 한다. 외래를 정기적으로 보다보니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할머니가 내 질문에 너무 대충 대답하는 것 같아서 꼬치꼬치 캐묻고 성가시게 굴어봤다. 그리고 보니, 주로 지금 외래 방 구조상 할머니의 왼쪽 방향이 나를 향하게 되어 있는데 왼쪽귀의 청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소위..

암 최초 진단 설명에 적절한 설명 시간은?

암을 진단받으면 1기든 4기든 누구든 큰 충격과 절망, 그리고 공포감을 느낀다. 의사는 무조건 위로할 수도 없고 처음부터 너무 겁나게 얘기할 수도 없고, 예후를 운운하며 협박할 수도 없고 정확한 정보는 줘야 하고... 환자는 의사의 설명을 듣는 와중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반문도 해야 하고 궁금함이 생기면 추가적인 질문도 해야 하고 의사는 그런 환자의 질문을 들으면 눈높이에 맞는 적절한 답변을 해야 하고 때론 비유를 드는 것이 적절할 때도 있고 수많은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구사해야 한다. 환자는 다 이해한 줄 알았는데 막상 의사가 가고 나니 또 다른 질문이 생기기도 하고 의사는 이미 다 설명한 것을 또 물어보면 짜증이 나기도 하고... 여하간 이런 몇 단계의 과정을 거치며 환자와 가족들은 병을 조금씩 이..

pCR

처음 유방암 진단시 유방 내 병의 크기가 크다거나 겨드랑이 림프절까지 부분전이가 되어 있는 경우 바로 수술을 할 수도 있지만 수술전 항암치료를 8차에 걸쳐 받을 수도 있다. (혹은 약제에 따라 6번을 받을 수도 있다.) 우리병원은 수술전 항암치료를 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수술 전 항암치료를 하면 이 환자에서 항암제가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잘 알수가 있다. 예를 들면 처음에 크기가 얼마만큼 컸는데 나중에 수술을 하고 보니 종양의 크기가 얼마만하게 줄었다 하는 것들은 항암제 효과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직접적인 지표가 된다. 치료를 받으면서 환자들이 스스로 만져보면서도 알 수 있다. 앞에 4 주기를 할 때는 많이 줄었는데, 뒤쪽 4주기에는 별로 안 줄어드는거 같아요. 혹은 앞에는 잘 모르겠는데 뒷쪽 4..

집에 가면 암환자가 아닌것 같아요

2년만에 재발된 유방암 지금은 폐, 뼈로 전이된 상태시다. 이분은 원래 HER2 양성 유방암이었는데 처음에 유방암을 진단받고 수술하던 당시에는 수술 후에 허셉틴을 사용하는 치료가 보험으로 인정되지 않던 시절이다. (보험으로 인정되지 않으니 100% 약값을 환자가 다 내겠다고 해도, 그런 진료는 불법진료로 규정되어 있다. 일부 환자는 일단 자기가 약값을 내고 치료를 다 받은 후 심평원에 병원의 과잉진료로 민원을 제기한다. 불법진료를 했기 때문에 병원이 약값을 다 환불해야 한다. 결국 환자는 공짜로 치료받고 손해는 병원이 감당하는 사례가 아주 적지는 않다.) 환자는 이번 재발 후 허셉틴과 탁소젤을 근간으로 하는 임상연구에 참여하시게 되었다. 탁소텔을 맞자마자 전신 근육통이 심하게 왔다. 뼈로 전이된 부분의 ..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족쇄가 되어

과거의 일을 자꾸 되새겨 생각하다보면 기억이 재구성될 수 있다. 진실이 아닌 재구성으로... 오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미리 걱정하다보면 현재의 불안이 심해질 수 있다. 그렇게 불안하면 미래에 나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평범한 우리는 재구성된 과거와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무엇보다 소중한 현재의 시간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5년전에 자궁경부암 1기로 수술을 받았다. 10년만에 재발하였다. 복강내 림프절 전이가 꽤 크게 생겼다. 그러나 완전관해가 되었고 환자는 이번에 유방암 3기로 진단을 받았다. 이제 유방암 항암치료 때문에 날 만나게 되었다. 5년전 자궁암 재발시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를 병행하던 중 직장과 방광, 피부 사이에 누공이 생겨서 우리병원에 오시게 되었다. 누공에 대..

저 죽어도 항암치료는 안받을거에요

환자가 분해서 죽겠다는 듯이 꾹 참다가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전 다 결심하고 왔어요.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항암치료 안할거에요" 색조화장도 진하게 하고 마스카라도 많이 바르고 왔는데 우니까 얼굴이 더 무서워졌다. 나는 전날 예습을 하면서 이 환자분은 정말 행운이라고 감탄을 했었는데... 1년반 전에 처음 유방암을 진단받았을 때 이미 오른쪽 유방과 양쪽 겨드랑이 림프절에 전이가 되어, 위치가 양쪽이라 4기로 진단, 전이성 유방암으로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손주혁 선생님께서 일단 항암치료를 8차에 걸쳐 하시고 - 마치 3기 환자에게 하듯이 - 오른쪽 유방 및 겨드랑이 림프절 절제, 왼쪽 겨드랑이 림프절 제거술을 다 진행하였다. 일단 눈에 보이는 병을 다 제거한 것이다. 처음에 양쪽 겨드랑이 림프절에서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