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학생 실습 강의

실습 학생 강의 오늘 오전에 종양내과 실습을 도는 학생들에게 ‘임상연구란 무엇인가’에 대해 강의를 하였다. 우리 의과대학의 똑똑한 아이들. 내가 재미있는 예를 들어가면서 설명하는데도 계속 졸고 있다. 이번 3학년들은 작년 ‘나쁜 소식 전하기’ 수업시간에 한번 만난 녀석들이다. 내심 나는 반가운데 애들은 계속 존다. 세상에 7명이 함께 하는 수업에서 조는 저 배짱은 무엇이란 말이냐. 확실히 수업시간에는 여학생들의 태도가 훨씬 좋고 적극적인 것 같다. 똑똑한 질문도 많이 하고. 졸고 있는 남학생에게 질문을 하나 하면 수업을 끝내겠다고 했더니 아까 설명한 내용을 못 들었는지 내가 설명한 내용을 질문한다. ㅋ 난 그래도 학생들이 좋다. 그들의 말랑말랑한 뇌에 내가 뭔가 중요한 것을 심어줄 수 있으니까. 뭔가 호..

스마일 톤즈

스마일 톤즈 오늘밤 KBS 스페셜 이태석 신부님이 돌아가시고 2년이 지난 수단. 풀죽어 보이는 아이들끼리 브라스 밴드를 지키고 있다.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의료시설과 장비, 물품, 사람들이 사소한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출산하다가 죽는 산모와 아기가 가장 많다. 그런 남수단에 이태석 의과대학을 설립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고 있다. 우리나라 기획재정부가 지원하고 있다. 노르웨이 정부도 뛰어들었다. 정부와 사단법인 이태석재단이 협력한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일도 있구나. 2003년 이태석 신부가 살아생전 남수단에 8병상짜리 general hospital 을 짓는 장면이 오버랩된다. 공사장 인부처럼 까맣게 그을린 그가 말한다. 지금은 어렵지만 희망이 있으니까. 그의 웃음이 영영 함께 할 것만 같다. 공사장을 ..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아들을 만나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아들을 만나 환자는 항상 혼자 병원에 다녔다. 씩씩한 환자. CT를 찍고 병이 나빠졌다고 하면 선생님, 방법이 있겠지요? 잘 해주세요. 선생님만 믿어요. 그렇게 말할 뿐 자기 마음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조금 좋아지다가 나빠지면 약을 바꾸고 또 조금 좋아지다가 나빠지면 약을 바꾸고 그렇게 몇 번 치료약제를 바꾸는 와중에 간 전이가 심화되면서 간경변 환자처럼 간 모양이 찌글찌글해지기 시작했다. 보통 이 정도의 간 상태를 보이면 가족에게 환자의 상태와 앞으로 예후가 좋지 않을 수 있음을 설명해야 한다. 효과적인 항암제가 있다 하더라도 지금의 간 기능을 고려했을 때 환자가 항암제를 견디기 어려울 것 같고 적극적인 치료가 역으로 환자를 더 빨리 나빠지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를 해야 한다..

합병증에 합병증을 더하여

합병증에 합병증을 더하여 75세 할머니. 아마도 3년쯤 되셨다고 한다. 유방에서 뭐가 잡히기 시작한게. 다 늙어서 암 진단하면 뭐하겠냐며,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다고 아웅다웅 하고 싶지 않다고, 병원에 안 오셨다고 했다. 그렇게 지내시다가 숨이 차서 병원에 오셨다. 유방암 폐전이가 진단되었는데 폐로 전이된 병변의 위치가 심장으로 들어가는 큰 혈관을 누르는 바람에 혈액순환이 제대로 안되서 숨이 차고 얼굴이 부었다. 환자가 숨을 제대로 못 쉬고 힘들어 했다. 할머니 나이도 많고 전신 컨디션이 나빠서 호르몬제를 먹으면서 방사선치료를 하여 폐 전이된 부분의 종양크기를 줄이기로 했다. 그리고 많이 좋아지셨다. 그동안 왜 병원에 오지 않으셨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열심히 치료 과정에 임하셨다. 아마 양가감정이 있으..

슬기의 일기 4 - 완전 멋진 가족여행을 꿈꾸며

완전 멋진 가족여행을 꿈꾸며 친구들 대부분은 방학이나 공휴일을 낀 연휴가 되면 부모님과 가족여행을 간다며 자랑을 한다. 토요일 학원을 결석하고 월요일까지 쭉 이어서 놀다 오는 친구들도 있다. 가족과의 야외 여행 후 까무잡잡한 피부색을 자랑하는 친구들이 부럽지 않냐고? 글쎄…. 솔직히 난 집 나가면 고생이라고, 집에서 쉬는 게 편하다. 여행보다는 집이 편하다는 이런 애늙은이 같은 생각을 언제부터 하게 되었을가? 아마도 어렸을 때 몇 번 다녀오지도 않은 부모님과의 여행 때문이 아닐까? 여행에 대한 안좋은 추억 1.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당시 레지던트 2년차 엄마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였다. 내가더 크면 같이 놀러 갈 시간이 더 없을 거라며 1박2일 동안이라도 놀다 오자고 하여 나의 여름방학과..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며

2001년에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동기들보다 8년 늦게 시작한 의대생 시절. 체력이 딸려서 주위 젊은 아해들과 같이 공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때 점심 시간을 이용해, 아침 등교 시간을 앞당겨서 달리기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년만에 마라톤 풀코스에 출전했죠. 2002년에 풀코스를 세번 뛰었습니다. 세번 완주 후 오른쪽 고관절이 아파서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선천적으로 고관절에 구조 이상이 있음이 발견되었습니다. 빨리 마모되면 인공관절 수술을 해야 하니 평생 조심히 아껴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달리기는 저에게 별로 좋지 않다고 했어요. 그래서 접었죠. 본 3때 마라톤을 뛴 셈인데 본 4때는 코 앞 국시 때문에 운동을 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쉬움없이 마라톤을 접었습니다. 그리고 ..

전이되면 수술 안하나요?

선생님, 전이되었어도 수술하면 완치 되지 않나요? 유방암은 전신적인 질환이라고 말한다. 영어로는 systemic disease 라는 말. 시스템적인 병이라는 말의 뜻은 우리가 CT 등의 영상 사진을 찍어서 눈으로 볼 수 있는 병변은 어떤 한 장기에 국소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눈에 보이지 않은 암세포들이 전신적으로 분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는 뜻이다. 우리가 사진에서 어떤 이상을 발견할 때면 이미 10억개 이상의 암세포가 집중해서 모여있기 때문에 사진에서 이상 소견이 없다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숨은 암세포가 존재해 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암세포가 10억개가 아니라 1000만개 모여있으면 우리가 검사에서 놓칠 수 있다. (물론 좀 더 예민한 검사방법으로 숨은 암세포를..

이불을 선물로 받다

드디어 난 오늘 이불을 선물로 받았다. 내가 받은 가장 인상적인 선물 넘버원, 빤스 2벌을 누르고 이불은 가장 인상적인 선물로 등극했다. 나는 보자기를 열어보고 빵 터졌다. 딸이 사준 거라며 엄마환자가 놓고 간 선물이다. 내가 ‘뭘 이런걸’ 이렇게 말하기도 전에 그냥 놓고 나가버렸다. 아주 어색해 하면서. 내가 간간히 연구실 라꾸라꾸에서 자는 걸 딸이 눈치챈 것 같다. 여름용 라꾸라꾸 커버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짱아찌도 받았다. 5년째 호르몬치료를 받고 있는 뼈전이 유방암 환자. 안정적으로 치료를 잘 받고 계신다. 그래서 별로 할 말도 없다. 그냥 스케줄대로 한달에 한번씩 뼈주사도 맞고 호르몬제를 타가신다. 그렇게 별로 말이 필요없는 관계가 좋은거다. 내가 ‘뭘 이런걸’ 이렇게 말하니까 워낙 많..

약 바꿔줘서 고마워요

먹는 약으로 바꿔줘서 고마워요 유방암이 재발한 할머니 할머니 나이는 70세. 이제 우리 사회에서 70세는 애매한 나이이다. 노인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고. 항암치료를 하기도 그렇고 안하기도 그렇다. 삼중음성유방암이라 항호르몬제도 못 쓰고 표적치료도 못 쓴다. 할머니 치료를 위한 선택은 항암제 뿐이다. 할머니 컨디션이 그리 나쁘지 않다. 아주 심한 것은 아니지만 폐정맥에 혈전도 생겼다. 4기 암환자에서 혈전증이 생기는 것은 병의 활성도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 이제 막 재발하면서 병의 활성도가 막 올라가고 있나보다. 가족들과 상의하여 항암치료 용량을 표준보다 낮춰서 치료에 도전해 보기로 하였다. 할머니 본인은 상황을 자세히 모르지만 지금 항암치료를 하는게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

이종범 은퇴식

그가 은퇴하던 날 2012년 5월 26일 경향신문 28면 이종범 은퇴식날 팬들이 전면광고를 실었다. 1993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 프로야구, 바람의 아들로 살았던 그를 기억하며…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혼자 있을 때만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우린 그 사람의 눈물을 그 사람의 땀방울을 통해 보며 숨겨두었던 사실은 포기해왔던 그래서 지워버렸던 용기를 다시 만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포기하고 싶을 때 만나는 공포와 외로움과 나약함 그리고 그것을 이겨낼 때 흘러나오는 눈물을 세상은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포기하라고 얘기한다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그때마다 당신이 참 많이 그리워질 것 같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부터 해태 어린이 야구단 팬클럽 멤버였던 나는 이종범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