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인생 대비

오늘 병원 안 안산에 갔다가 소나기를 만났어요. 산이라 아름드리 나무가 있어 그 아래로 잠깐은 피할 수 있지만 갑자기 강하게 후두둑 내리는 소나기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어요. 그냥 쫄딱 맞았죠. 오늘 소나기가 올거라는거, 남부지방에 소나기가 왔다갔다 한다는 소식을 들어서 곧 소나기 구름대가 북상할 걸 알았지만 우산을 가지고 나오지는 않았어요. 어차피 우산을 쓸 정도로 비가 오면 그냥 맞는거랑 큰 차이 안나니까 비 오면 맞을 생각으로 산행을 시작했어요. 어차피 산에 갔다 오면 셔워도 해야 하고 갈아입을 옷도 있고 ㅋㅋ 오늘은 휴일이니 이 모든 과정을 서두를 필요도 없고 (바쁜 날 산에 다녀올 때가 있는데 그럴땐 정말 정신없이 뛰어갔다 뛰어내려와야 하고 갔다와서 씻을 시간도 없을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소..

뇌 MRI 검사 미리 하면 안되요?

한 신경외과 선생님이 그러신다. 암 환자가 치료받다가 뇌 전이되서 신경외과로 전과되면 환자들의 불평불만이 너무 심해서 그거 대처하는거 너무 힘들다고. 왜 진작 검사해서 미리미리 전이가 생겼는지 확인하지 않고 증상이 심해져서야 비로소 검사하고 왜 그제서야 치료를 시작하냐고 왕창 전이되기 전에 미리미리 검사로 확인하면서 병변의 크기가 조금이라도 작을때 빨리 발견해서 치료하면 성적이 더 좋은 거 아니냐고 환자들의 불만과 억울함이다. 교과서적인 원칙에 의하면 - 그리고 수많은 암치료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 뇌전이 여부를 스크리닝하기 위해 뇌 MRI 등의 검사를 주기적으로 하라고 권고하지 않는다. 즉 주기적인 검사가 주는 이득이나 이에 대한 의학적 근거가 아직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증상이 생긴 다음에 검사해서..

SOS call

어제 밤에 SOS call 을 받았다. 안면이 있는 외과 선생님이 밤 10시가 다되어 전화를 하셨다. 내 환자도 아니고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있는 환자는 아닌데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서 상의를 하시려고 전화하신 것 같다. 내과 레지던트 당직 시스템이 가동되는 시간이기는 한데 자기가 보기에 환자 상태가 설명이 잘 안되고 빨리 나빠지는 것 같으니 내과의사인 내가 지금이라도 빨리 신속히 좀 봐줬으면 한다고 전화를 주셨다. 수술한지 3일째인 60대 후반의 여자 환자. 오전까지 괜찮았는데 오후들어 갑자기 소변량이 줄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산소 포화도가 갑자기 90% 미만으로 떨어진다. 산소를 주니 올라가는 듯 하다가 시간이 지나니 다시 또 떨어지기를 반복. 오래된 당뇨 고혈압. 만성 신부전까지는 아니어도 콩팥 기능도..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외래 진료를 보다가 왠지 마음이 석연치 않을 때 다시 사진을 확인하는게 필요할 때 다른 의사들의 의견을 들어보는게 필요할 때 난 포스트 잇 메모지에 환자의 이름과 번호를 적어둔다. 외래가 끝나면 메모지 뭉치를 들고 내 방으로 와서 하나씩 깔끔하게 대답을 얻고 마무리가 되면 그 메모지를 버린다. 메모지를 버리는 그 기분, 매우 통쾌하다. 지난 몇일 정리를 제대로 못했더니 내 책상앞에 메모지가 쌓여있다. 오늘 오전 내내 그 메모지들을 정리했다. 찜찜했던 사진은 꼼꼼히 다시 한번 리뷰해 보고 환자에게 설명이 미흡한 부분은 다시 전화로 설명하고 내 판단이 미흡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으면 다시 한번 외래에 오시라고도 말씀드렸다. 환자 진료와 관련된 여러 과 선생님들께도 전화드려서 환자의 ..

우 ** 환자분께

멀리서 오시면서 무겁게 떡까지 가져다 선물 주시고 감사합니다. 외래 간호사 선생님들과 나눠서 먹었습니다. 집에도 가지고 갈려고 좀 챙겨놨습니다. 저녁도 주신 떡으로 먹고 일합니다. 올리신 글에 댓글을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제가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번은 댓글을 달기 위해 블로그에 들어오는데 말이죠. 아마 글을 읽고 무슨 생각이 있어서 더 생각해보고 댓글을 달려다가 아마 시간이 지나가 버렸나봐요. 정말 죄송해요. 마음을 담아 글을 올려주셨는데... 상처도 좋아지고 치료 부작용도 심하지 않고 마음도 씩씩하게 치료 받으시는 것 같아 정말 다행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아무리 힘들어도 그걸 극복하고 이겨내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나 봅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요. 남몰래 흘렸을 눈물. 좌..

내 어릴 적 꿈은

이 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저는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죠. 매 수업시간에 선생님들의 수업이 좋았고 들려주시는 말씀이 귀감이 되었어요. 저도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인생이 어찌어찌 흘러 지금은 의사가 되었습니다. 의사도 의사선생님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고전적인 의미에서 선생님이라 함은 자고로 교육을 하는 존재. 실습나오는 학생이나 함께 환자 진료를 하며 배워가는 레지던트들에게 교육을 잘 하고 귀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학생 눈높이에 맞추어 교육을 하려면 노력이 아주 많이 필요합니다. 따라가기도 힘들게 발전하는 의학적 지식을 학생들 수준으로 체계적으로 잘 가르치고 공부해야 겠다는 의욕도 불어넣어주려..

지난 몇일 동안

한 10일 되었나요. 블로그에 글을 별로 못 썼습니다. 제가 박사논문 심사를 받는 준비를 하느라고 그랬습니다. 평소에 잘 준비하고 대비했으면 되었을 것을 게으르고 능력도 안되서 준비를 잘 못하고 있다가 몰아쳐서 벼락치기를 하는 바람에 그리 되었습니다. 우린 다 알고 있죠. 벼락치기 하면 안된다는 거. 인생을 그렇게 초치기로 살면 안된다는 거.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보같이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매일 밤 연구실에서 몸부림치다가 아침이 되면 초췌해진 몰골로 외래를 보고 그런 저를 보고 환자분들이 오히려 제 걱정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의사가 그런 모습 보이면 안되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건강과 안녕을 챙겨주시는 환자분들께 정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이 1차 심사라..

부러우면 지는거다

살면서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 자기 신세를 남과 비교하게 됩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부럽습니다. 부럽기도 하고 솔직히 배도 아픕니다. 나만 너무 없어보이고 부족한것 천지인것 같아 위축감이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래서 나 스스로 마음 속에 상처를 남깁니다. 나 스스로를 주위로부터 고립시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게 그런 수준입니다. 저도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김민기의 봉우리를 듣습니다. 기도처럼 틀어놓고 몇번이고 반복해서 듣습니다. 남을 부러워하기보다 나를 돌아보는 하루를 위하여, 내가 살아야 할 하루를 위하여 봉 우 리 김민기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환자의 편지를 몇번이고 다시 읽으며

환자의 편지 5월 가정의 달 오늘 외래에서 환자에게 받은 선물 탈모샴푸 – 나 머리 빠지는거 걱정하며 때 되면 탈모샴푸를 사다 주시는 분이 계심 돋보기 – 노인 환자들에게 설명할 때 쓰라며. 달걀 – 자기 농장에서 손주 키운 닭에서 난 달걀 다섯꾸러미 (지푸라기에 싸 오심) 김치 - 내 인생 마지막으로 담그게 될 김치가 될 것 같다며 딸에게 보내심 ㅜㅜ 떡 – 당신이 먹으려고 샀는데 점심도 못 먹고 외래본다며 나보고 먹으라고 주고 가심 쿠키 – 럭셔리 쿠기 5개 초코파이와 사탕과 초콜렛 – 외래보면서 다른 환자들과 함께 나눠 드시라고. 야생 블루베리 – 외래 보면서 힘들 때 한 개씩 드시라고 천호석류액 – 여자 몸에 좋다며 포카리 스웨트 – 외래 올 때마다 꼭 2개씩 비닐 봉다리에 싸다 주심 요플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