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에 SOS call 을 받았다.
안면이 있는 외과 선생님이 밤 10시가 다되어 전화를 하셨다.
내 환자도 아니고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있는 환자는 아닌데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서 상의를 하시려고 전화하신 것 같다.
내과 레지던트 당직 시스템이 가동되는 시간이기는 한데
자기가 보기에 환자 상태가 설명이 잘 안되고 빨리 나빠지는 것 같으니
내과의사인 내가 지금이라도 빨리 신속히 좀 봐줬으면 한다고 전화를 주셨다.
수술한지 3일째인 60대 후반의 여자 환자.
오전까지 괜찮았는데 오후들어 갑자기 소변량이 줄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산소 포화도가 갑자기 90% 미만으로 떨어진다. 산소를 주니 올라가는 듯 하다가 시간이 지나니 다시 또 떨어지기를 반복.
오래된 당뇨 고혈압. 만성 신부전까지는 아니어도 콩팥 기능도 별로 좋지 않은것 같다.
수술 전 검사를 위해 사용한 조영제 때문에 급성 신부전이 오고
신장기능이 떨어지니 폐부종이 이어서 온 것 같다.
조영제로 인한 급성신부전은 대개 72시간을 전후로 나타난다. 이 환자에서 전형적인 코스다.
그러나 이런 증상 변화가 눈에 띄게 나타나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3-4시간. 그 사이에 급격하게 나빠지는 것이다.
그게 노인 당뇨 환자가 폭탄이 되는 이유다. 당뇨 환자는 기본적으로 혈관 및 심장기능이 좋지 않아서 평소에는 멀쩡한 것 같지만 위기 상황에서 갑자기 기능이 확 떨어진다. 수술 후 수액 조절을 300-500cc 만 잘못해도 금방 폐부종이 와버린다. 젊은 환자들이라면 스스로의 기능으로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 일들을 전혀 조절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급변해 버린다.
내과 레지던트에게 전화했더니 자기가 2시간 전에 환자 봤을 때는 괜찮았다고 말한다. 그 한두시간 사이에 환자 상태가 금방 변한것이다. 산소 주고 검사 follow up 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거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숨소리가 너무 나쁘다.
정작 환자는 힘들어서 별 말이 없다.
보호자는 주의깊게 보지 않았는지 환자가 수술 후 지쳐서 기운이 없나보다 그렇게 생각했다고 하신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곧 투석을 하지 않으면 인공삽관하고 급성 폐, 심장, 신장부전이 동시에 진행될 기세다. 환자는 중환사실로 옮겼다.
그리고 투석을 시작했다. 인공삽관을 하지 않고 환자가 안정화되었다. 아침 엑스레이가 좋아졌다.
정식체계를 거치면 2-3시간 사이에 노티가 되고 조치가 이루어졌겠지.
정식체계를 거치지 않고 내가 중간에 나타나는 바람에 여러 사람 피곤했을 거다.
그렇지만 체계가 어떻든, 환자를 빨리 rescue 하려면 누구라도 급한 사람이 서두르지 않을 수 없다. 병원에서 이런 행동을 잘못 하게 되면 마치 나만 환자 열심히 보는것 같고, 내가 보는 환자만이 소중하고 급한 것처럼 구는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다. 즉 혼자 오바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어야 하고 가능한 그 시스템의 원칙 내에서 진료하는게 필요하다. 나도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제 득달같이 독촉하고 전화하고 푸쉬를 했던 내과 레지던트들에게 미안하다.
원칙없이 굴어서.
정작 당직 레지던트는 그 환자만 보는게 아니라 여러 중환을 같이 보는 당직 시간이라 일이 많은데 말이다. 꼭 당부했다. '내 환자처럼 생각하고 봐줘'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병원이 제대로 된 시스템을 잘 갖추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 전까지는 개인이 열심히 뛰는 수 밖에 없다.
안그래도 위암 2등급 운운하여 병원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눈앞의 환자라도 잘 보는 것.
욕을 좀 먹겠지만, 그래도 환자가 좋아졌으니 Everything is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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