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슬기엄마 2012. 5. 25. 15:00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외래 진료를 보다가

왠지 마음이 석연치 않을 때

다시 사진을 확인하는게 필요할 때

다른 의사들의 의견을 들어보는게 필요할 때

난 포스트 잇 메모지에 환자의 이름과 번호를 적어둔다.

외래가 끝나면 메모지 뭉치를 들고 내 방으로 와서

하나씩 깔끔하게 대답을 얻고 마무리가 되면 그 메모지를 버린다.

메모지를 버리는 그 기분, 매우 통쾌하다.

 

지난 몇일 정리를 제대로 못했더니 내 책상앞에 메모지가 쌓여있다.

오늘 오전 내내 그 메모지들을 정리했다.

찜찜했던 사진은 꼼꼼히 다시 한번 리뷰해 보고

환자에게 설명이 미흡한 부분은 다시 전화로 설명하고

내 판단이 미흡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으면 다시 한번 외래에 오시라고도 말씀드렸다.

환자 진료와 관련된 여러 과 선생님들께도 전화드려서

환자의 치료계획에 대해서도 상의하고 그 과에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들어보았다.

급하지 않은 경우에는

메일이나 문자도 드리고 답신을 기다려본다.

오늘 오전 내내 그렇게 내 지난 한주간 환자 진료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

 

환자들은

진료가 이루어지는 그 순간의 내 판단에 대해

100%의 정확성을 기대할텐데

이렇게 사후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놀랠 노자일까?

진료를 하다보면 100% 정답이 없는 경우가 꽤 있고

의사들 간의 토론을 통해서 여러가지 옵션이 제시되는 경우도 많다.

내 스스로 내 판단에 자신이 없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어떤 환자는 그런 나의 망설임을 눈치채고 집요하게 묻는다.

그럼 난 그렇게 말한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좀 생각해볼께요.

 

때론

 

다른 선생님들의 의견을 들어보는게 좋겠어요.

 

그런 나의 대답에

혹자는 어이없어 하신다. 아니 뭐 의사가 이리 실력이 없어?

혹자는 그냥 나를 인간적으로 이해해 주기시도 한다. 그래도 이 의사는 솔직하기는 하구나. 사기는 안 치겠네.

 

종양내과에서

암 환자를 보다 보면

온 몸 구석구석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온 몸에 병이 생길 수도 있고, 약의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그리고 심지어 암과 상관없는 일도 생긴다.

그래서 온 몸 구석구석 physical examination도 잘 해야 하고

몸의 정상 생리적 변화과정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지금 발생한 증상이 문제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검사를 해야 하는 것인지 놔두고 보면 되는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젤로다를 먹고 발가락이 아파요 말하는 환자의 양말을 다 벗겨서

발가락 사이사이 진물이 났는지 안났는지, 벌건게 어느 정도인지, 발톱은 괜찮은지,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있는 정도인지 아닌지, 발바닥 피부는 어떤지를 다 들여다보고 

항암제처방을 유지할지 쉴지 결정해야 한다.

환자에게 말도 많이 시키고 환자도 열심히 들여다 봐야 하는 과다.

 

그렇게 온몸을 들여다보면 잘 모르는 부분이 있기 마련.

나는 신경학적 검사를 잘 못한다. 그래서 망치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 잘 못하니까 안하게 된다.

나는 청진은 잘 한다. 그래서 항상 청진기를 가지고 다닌다.

환자가 자기 몸에 일어난 어떤 일에 대해 물어보면 척척 대답할 수 있을 때도 있지만

의사인 나 조차 이해가 안되는 상황도 있다.

 

나도 환자 앞에서 잘 모르겠다’는 말을 하게 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절대 그런 말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의사가 환자 앞에서 잘 모른다는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직무 유기 아닌가.

 

그런데 절대 다 알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몸이고 사람의 병인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내가 아직 잘 모르는 부분이 많다는 걸

나 스스스로에게도, 환자들에게도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

다만 모르는 걸 열심히 찾아보고 다른 이들의 의견을 구해보고

좋은 답을 찾는 과정에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고 변명해 본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경험이 쌓이면 이런 말 안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

없어보이는 건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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