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저는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죠.
매 수업시간에 선생님들의 수업이 좋았고 들려주시는 말씀이 귀감이 되었어요.
저도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인생이 어찌어찌 흘러 지금은 의사가 되었습니다.
의사도 의사선생님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고전적인 의미에서 선생님이라 함은 자고로 교육을 하는 존재.
실습나오는 학생이나 함께 환자 진료를 하며 배워가는 레지던트들에게 교육을 잘 하고 귀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학생 눈높이에 맞추어 교육을 하려면 노력이 아주 많이 필요합니다.
따라가기도 힘들게 발전하는 의학적 지식을 학생들 수준으로 체계적으로 잘 가르치고 공부해야 겠다는 의욕도 불어넣어주려면 어려운 지식을 쉽게 풀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 실력있는 자, 그리고 학생 교육에 관심을 갖는 자만이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노력을 많이 해야 합니다.
레지던트 교육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생명징후가 흔들리는 중환도 봐야 하고
어떤 경우에는 환자와 대화를 많이 하고 설명도 많이 해야 하고
자기도 모르는 것이 많은데 환자 진료를 잘 하려면 레지던트는 정신이 없습니다.
레지던트는
오더도 깔끔하게 잘 내야 하고
검사 푸쉬도 신속히 잘 해야 하고
환자 불평불만 없이 설명도 잘 해야 하는데
이 파트 저 파트 돌아가면서 잘 모르는 분야의 환자를 진료하고 경험하는 시간이 레지던트에게는 힘들기 짝이 없습니다. 당직이 아니어도 병원을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 레지던트들과 환자 한명 한명을 상의하고 주치의인 나로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단기적으로, 장기적으로 치료 계획은 어떤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레지던트와 공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그들 시각에 맞는 질문을 던지고 공부하게 자극도 주어야 합니다.
교육은 내가 아는 것만큼 하는게 아니라
내가 아는 것을 눈높이에 맞춰 풀어낼 줄알아야 합니다.
또 모든 시간을 교육에 할애할 수 없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가르침을 전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교육을 잘 하기 위해 나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 걸까요?
내 앞가림을 하느라
급한 내 논문을 쓰느라
환자 진료 이외에도 해야 하는 다른 일을 하느라
여러가지로 교육은 제일 뒷전으로 밀립니다.
제 자질의 문제도 있지만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종양내과에서 일하는 전공의 한명이 수두로 근무를 중단한 상태입니다.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환자랑 접촉하지 않고 쉬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몫까지 우리 파트 레지던트를 비롯해서 여러 레지던트가 업무를 나누어서 일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늘어난 환자, 그동안 우리파트에서 보던 환자가 아닌 다른 성격과 특징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을 보느라 레지던트가 바쁘고 힘들어 졌습니다. 대체 인력이 없으니 있는 사람들이 그 몫까지 땜빵을 하는게 우리 시스템입니다. 나라도 환자진료에 더 집중해야 겠습니다.
레지던트는 일하면서
힘만 드는게 아니라 뭔가를 배우고 얻어가는게 있어야 하는데
요즘의 나를 보면 뭘 위해 누구를 위해 뭘 하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우리 레지던트에게 뭘 가르치고 어떤 귀감이 되는 존재인가 쯧쯧...
그에게 말로는 그랬어요.
이렇게 힘들게 일하면서 자기의 능력이 업그레이드 된다고 생각해라. 좋은 경험이 될거다.
말이 쉽죠.
밥도 못 먹고 환자보느라 병동을 뛰어다니는 우리 레지던트에게 내일은 꼭 밥이라도 사줘야 겠습니다.
무능력한 선생님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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