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슬기의 일기 3 - 위기상황 아닐 때도 열심히

슬기엄마 2012. 5. 12. 22:28

위기상황아닐 때도 열심히

 

시간 빠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중3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았는데 요즘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고등학교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보니, 내년이면 내가 고등학생이 되는구나 싶다. ·하교길, 학원 다니는 길에서 꽃구경 한 게 전부인데 시험이 끝나고 보니 벚꽃은 이미 진 지 오래다. 벌써 푸른 잎들이 나와 그늘을 만들고 있다.

 

드디어 올해 첫 번째 중간고사가 끝났다

나는 꾸준히, 평소에 열심히 공부하는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대부분의 아이들처럼 벼락치기로 공부하는 스타일인데, 그래도 이번 시험에는 공을 좀 들였다. 평소보다 일찍 시험공부를 시작해서 내 기준으로보면 그나마 공부 좀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만만하게 첫 날 시험을 보고 채점을 할 때까지만 해도 내 실력이 나오는구나, 이제 나도 빛을 좀 보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채점을 마치고 다 맞은 사람, 한 개, 두 개 틀린 사람까지 손을 들어 보았는데 우리 반이 막강한 건지, 시험이 쉬웠던 건지, 애들이 다 열심히 한 건지, 예상을 뛰어넘는 많은 수의 아이들이 너도나도 손을 드는 것이었다. 3학년 들어 처음으로 치는 시험이어서 그런 걸까? 나는 몹시 충격에 휩싸였다. 나만 열심히 하고 심각한 게 아니었구나. 아직 공식적인 성적은 안 나왔지만 상대적으로 보면 성적이 그리 좋을 것 같지 않다. 기분이 별로다.

그러나 이번 시험은 나에게 좋은 계기가 됐다. 사실 4월 초 토플 시험을 봤는데, 학원 다니지 않고나 스스로 공부해서 시험을 보겠다고 큰소리를 쳤었다. 그렇지만 사실 공부는 제대로 하지 않고 시간만 때우다가 시험을 봤나 보다. 여유롭게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나온 점수는 모의고사에 훨씬 못 미치는 점수였고, 중간고사 하루 전에 토플 성적을 확인하게 되어 심리적으로 패닉 상태가 되었다. 그 충격적인 점수를 보고 이제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나마 학교 시험에서 경각심을 가지고 노력했던 것 같다. 평소 성적보다는 좀 오른 것 같은 느낌이다.

 

2학기 말에 있는 특목고 원서를 쓰기까지 두세 번의 시험이 남았다. 내심 이번 수준 정도로 시험을 본다면 더 바랄 것도 없겠지만 시험 2~3일 전에 바짝 공부해서 시험을 보는 나같은 학생보다는 중2, 1, 아니 어쩌면 초등학교 때부터 독사처럼 공부해 온 친구들이 많다는 것이 문제다. 솔직히 나는 다른 사람보다 집중력이 강해서 짧은 기간만 집중해서 공부해도 비슷한 정도로 성적을 내고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이런 집중력만 가지고서는 더 이상 이 친구들과 경쟁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성적으로 특목고를 가려면 그 친구들보다 더 확실하게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시험기간에는 취미생활을 접고 공부에만 전념해야 하지 않을까?

내 성적은 비슷한데 친구들이 시험을 너무 잘 봤다거나, 예상보다 토플시험을 못 본 것 같은 위기상황이 아니더라도, 앞으로는 내 목표에만 전념하여 최선을 다해 공부해야 할 날이 더 많을 것 같다. 최소한 시험 2~3주 전부터는 카카오톡이나 인터넷, 팬질이나 친구들과의 친목도모는 잠시 접어두고 공부에만 집중해야 할 것 같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정말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을 다 하면서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내기는 힘든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누군가는 중3이 되어 이런 결심을 하는건 이미 늦었다고도 한다. 부모님도 내심 초조해 하는 눈치다. 부모님이 다 괜찮다고, 너를 믿는다고, 넌 뭐든지 잘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사실 그게 더 부담스럽다. 누구나 삶은 과정이, 그 순간이 중요한 거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 알고 있다. 결과가 중요하다는 불편한 진실. 내가 이러한 시간을 얼마나 잘 견디고 운영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