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편지
5월 가정의 달
오늘 외래에서 환자에게 받은 선물
탈모샴푸 – 나 머리 빠지는거 걱정하며 때 되면 탈모샴푸를 사다 주시는 분이 계심
돋보기 – 노인 환자들에게 설명할 때 쓰라며.
달걀 – 자기 농장에서 손주 키운 닭에서 난 달걀 다섯꾸러미 (지푸라기에 싸 오심)
김치 - 내 인생 마지막으로 담그게 될 김치가 될 것 같다며 딸에게 보내심 ㅜㅜ
떡 – 당신이 먹으려고 샀는데 점심도 못 먹고 외래본다며 나보고 먹으라고 주고 가심
쿠키 – 럭셔리 쿠기 5개
초코파이와 사탕과 초콜렛 – 외래보면서 다른 환자들과 함께 나눠 드시라고.
야생 블루베리 – 외래 보면서 힘들 때 한 개씩 드시라고
천호석류액 – 여자 몸에 좋다며
포카리 스웨트 – 외래 올 때마다 꼭 2개씩 비닐 봉다리에 싸다 주심
요플레 – 외래 올 때 마다 꼭 3개를 비닐 봉다리에 싸다 주심
섹시 립스틱 – 화장 안하니까 립스틱이라도 바르라고 하심. 여자는 화장을 해야 한다며.
미나리 – 자기 동네에서 나는 미나리인데 너무 싱싱하고 맛있다며 싸 오심.
아줌마들 선물이라 너무 정겹다.
미나리가 압권이었다.
그리고 한 환자의 편지.
내 앞에서 씩씩했던 그녀.
사실은 항암제 부작용으로 고생을 많이 했나 보다.
나름으로 그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돌파구를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그녀가 찾은 방법은
바른 섭생과 규칙적인 생활, 대자연의 순리를 따르면 자연치유가 될 거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리고 병원에 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병이 나빠지고 몸이 힘들어져서 몇 달만에 다시 외래로 왔다.
나는 외래에 오지 않는 동안 몇번 그녀에게 전화를 했었다. 어렵사리 치료가 잘 되고 있는데 환자가 외래에 오지 않으니 말이다. 병원 전화를 안받는 건지 연락이 안되었다.
그녀가 다시 외래를 찾던 날
부랴부랴 CT를 다시 찍고 바로 치료를 시작했다.
그날의 일에 대해 그녀가 편지를 썼다.
당장 치료를 하자는 말에 왠지 용기가 났다고 했다.
주위에 3개월, 6개월 선고를 받은 환우들이 많았는데,
내가 서둘러 치료를 하자고 하니 왠지 용기와 희망이 생겼다고 했다.
물론 나도 환자가 다시 외래에 오던 날이 기억난다. 마음 속으로 화가 많이 났었다. 좋은 약으로 치료를 하고 있었고 반응도 좋았는데 그 후로 몇 개월이 지나버렸으니 이제 그 약을 다시 쓸수가 없다. 보험적용도 안되고 그 사이에 그 약제에 대한 저항성도 생겼을 것이다. 그래서 원래 효과를 보았던 좋은 약보다 훨씬 독한 약으로 치료를 해야 했기 때문에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화를 내면 그녀는 곧 깨져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또 좋아졌다.
목 주위의 림프절이 줄고
복부 팽만감도 좋아졌다.
독한 약인데도 환자가 이겨내고 있나 보다.
그걸 보며 내심 기뻐했던 내 마음을 환자가 알아준 것 같다.
또박또박 그녀의 글씨.
몇번이고 다시 읽는다.
나와 동갑인 그녀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했다.
환자의 마음에 실망을 주지 않는
좋은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기도하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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