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전이되었어도 수술하면 완치 되지 않나요?
유방암은 전신적인 질환이라고 말한다.
영어로는 systemic disease 라는 말.
시스템적인 병이라는 말의 뜻은
우리가 CT 등의 영상 사진을 찍어서 눈으로 볼 수 있는 병변은
어떤 한 장기에 국소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눈에 보이지 않은 암세포들이 전신적으로 분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는 뜻이다.
우리가 사진에서 어떤 이상을 발견할 때면 이미 10억개 이상의 암세포가 집중해서 모여있기 때문에 사진에서 이상 소견이 없다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숨은 암세포가 존재해 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암세포가 10억개가 아니라 1000만개 모여있으면 우리가 검사에서 놓칠 수 있다. (물론 좀 더 예민한 검사방법으로 숨은 암세포를 찾는 연구가 계속 되고 있다. 우리 유방암 팀도 하고 있고)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국소적인 병변만 집중해서 치료를 하다 보면
치료하지 않는 다른 곳에서 재발하기 쉽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폐에 작은 덩어리가 하나 보이는데,
간에 작은 결절이 하나 보이는데,
이게 전이를 시사할 때
환자도 그렇지만 의사도 그냥 확 떼버리고 싶다.
이것만 눈에서 안보이면 병이 잘 조절될 것 같다, 치료가 잘 될 것 같다는 유혹을 받는다.
요즘은 수술 기술이 좋아서 수술 후 합병증을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수술해서 눈에 보이는 걸 똑 떼어 내 버리고 싶다.
그렇지만 수술이라는게 내과 의사가 말하는 것처럼 쉬운게 아니다.
특히 암세포는 성장하면서 주변에 혈관을 많이 끌어당겨서 영양을 공급받기 때문에
보통 장기나 세포보다 주위에 혈관이 많고 혈관의 상태도 좋지 않다.
수술하는 외과 의사 입장에서 별로 좋은 대상이 아니다.
그렇게 어렵게 결정하고 수술하고 예상치 못한 합병증으로 고생하면서 치료의 투지를 불태웠는데,
재발해서 결국 다시 항암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환자들이 매우 힘들어 한다. 마음적으로.
결국 이렇게 항암치료 할거면 괜히 수술했다며….
자기가 결정한 일이면서도 수술을 권한 의사를 원망하는 마음도 생긴다. 인간지사 그 심정은 당연히 이해된다
전이성 암환자를 진료하는 종양내과 의사는
환자와 함께 하는 길고 긴 치료의 여정에서 언제든지 부분적인 치료적 접근(local control)을 통해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를 타진해야 한다.
전이된 곳을 수술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과연 적절하냐에 대해서는
아직 100% 입증된 진료 지침으로 자리잡지는 못했지만,
전이가 되었더라도, 전이된 부분을 절제해 주면
일부 환자그룹에서는 생존율을 증가시키고 재발을 억제하는데 도움을 받는 소그룹이 있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어떤 환자, 어떤 상황에서 지엽적인 부분적 수술, 방사선치료 등을 접목하는 것이 환자의 생존률 증가에 도움이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 물론 팀별 접근이 이를 보다 타당하게 뒷받침해 주겠지만 여하간 개별 의사 입장에서는 stage of art 의 수준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경험과 지혜가 필요한 부분이다.
내 머리 속으로는
과연 이 환자에서 언제 그 수술을 결정할 수 있을까? 그 날이 올까? 어떤 결정이 환자를 위해 가장 좋은 대안이 될까? 나는 아마도 치료하는 내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환자를 봐야 할 것 같다.
아직은 장기적인 계획없이 일단 항암치료를 시작하신 우리 환자분께.
제가 머리속으로 이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답니다.
일단 지금 시작한 항암치료에 잘 반응하여 병의 크기가 작아지면 제가 어느 시점에 수술에 대해 상의드리겠습니다. 이번에 발견된 전이 세포는 이전에 했던 치료를 이겨낸, 매우 저항성이 높고 공격적인 타입의 유전자로 구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직검사를 해서 전이된 부분의 유전자 검사를 다시 해보고 항암제를 선택하는 것. 먼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도 연구적 차원에서는 진행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아직 그런 임상테이너와 실험데이터가 아직 잘 분석되지 않고 있어서 추이를 지켜봐야 하는 수준입니다.
그러니 눈에 병이 한군데에서만 보인다고 덜컥 수술을 해서 보이는 부분을 제거하는 동안 전신치료를 시작하는 시점이 지연되면 수술한 나머지 부위에서 금방 재발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번에 제가 지금 수술을 하지 않고 항암치료를 시작한 이유입니다.
그런 저의 결정을 믿어주시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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