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합병증에 합병증을 더하여

슬기엄마 2012. 6. 2. 14:16

합병증에 합병증을 더하여

 

75세 할머니.

아마도 3년쯤 되셨다고 한다. 유방에서 뭐가 잡히기 시작한게.

다 늙어서 암 진단하면 뭐하겠냐며,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다고 아웅다웅 하고 싶지 않다고,

병원에 안 오셨다고 했다.

 

그렇게 지내시다가

숨이 차서 병원에 오셨다.

유방암 폐전이가 진단되었는데

폐로 전이된 병변의 위치가 심장으로 들어가는 큰 혈관을 누르는 바람에

혈액순환이 제대로 안되서

숨이 차고 얼굴이 부었다.

환자가 숨을 제대로 못 쉬고 힘들어 했다.

할머니 나이도 많고 전신 컨디션이 나빠서

호르몬제를 먹으면서 방사선치료를 하여 폐 전이된 부분의 종양크기를 줄이기로 했다.

 

그리고

많이 좋아지셨다.

그동안 왜 병원에 오지 않으셨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열심히 치료 과정에 임하셨다.

아마 양가감정이 있으셨겠지

생이란

삶이란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거니까

 

 

그렇게 좋아지기를 몇 개월.

다리 뼈로 새로운 전이가 발생하였다.

골절 방지를 위해 예방적 방사선 치료를 하였다.

다른 환자들은 방사선 치료를 외래 통원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하는데

할머니는 거동도 불편하고 다리가 아파서 퇴원하지 못하겠다고 하신다.

방사선치료만 하는 환자에 대해 입원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병원 진료원칙에 맞지 않지만 워낙 할머니니까 입원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방사선 치료를 받던 중 할머니가 화장실 다녀오는 길에 넘어졌다. 골절이 왔다.

방사선치료를 다 마치지 못하고 정형외과에서 수술을 했다.

 

당뇨가 있던 할머니는 상처가 잘 아물지 않았다.

상처에서 균이 자랐다. 그래서 입원해서 한달이상 항생제를 맞았다.

 

염증 수치를 확인하면서 균동정 검사가 동시에 진행되었는데 VRE가 나왔다.

환자를 격리했다.

환자 상태에 큰 변화는 없는 것 같은데 염증수치가 완전히 떨어지지 않고 자꾸 잡균들이 자란다.

 

그렇게 항생제를 계속 쓰다가

급기야 콩팥이 지치기 시작, 어제부터는 소변이 안나오기 시작한다.

일단 항생제를 감량하며 경과를 보기로 했다. 신장 수치가 오르기 시작하다니.... 아....

 

그 사이에 폐 병변이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유방암이 나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유방암 치료를 다시 재개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

쓸 수 있는 항호르몬제를 다 썼는데, 이제 와서 항암제를 시도하는 것은 더 어렵다.

 

할머니는 다시 숨차 하신다.

할머니 컨디션은 병원 입원 한달이 넘어가니 급격히 나빠진다.

처음 진단받을 때와 비슷하게 되었다.

 

치료를 하여 좋아졌던 수개월의 시간이 있었다.

그때 할머니도, 가족도 매우 좋아하셨다.

그렇지만 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병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가지 문제가 겹치면서 합병증에 합병증을 거듭하고 있다.

이럴 줄 알았다며

내 이래서 치료를 안 받으려고 했었다는 둥

치료해봤자 결국 다시 나빠지니 소용없다는 둥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있다.

병이 좋아져서 증상이 완화되고 좋았던 기간이 있었는데

그렇게 좋아지는 기간동안

내 삶에서 하지 못했던 일,

가족간에 하지 못한 정다운 말,

내 인생이 후회되지 않도록 돌아보아야 할 일

그런 숙제를 해결 할 수 있다면

소용없는 건 아니지 않을까?

삶은 쉽게 포기할 수 있는게 아니니까.

 

할머니가

치료 중 발생하는 갖은 합병증에 고생하시면서도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불평을 하지 않으신다.

내가 조금만 더 견디시라고, 참으실 수 있겠냐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시는게 더 안타깝다.

 

 

 

 

평원을 달리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한동안 달린 다음에는 말을 멈추고

달려온 길을 되돌아보며 기다립니다.

영혼을 기다립니다.

미처 따라오지 못한 영혼을 기다리는 것이라 합니다.

질주는 영혼을 두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영혼을 빠뜨리고 달리고 있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신영복의 그림 사색, 기다림

한겨레 201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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