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감기걸린 엄마

슬기엄마 2012. 6. 5. 20:25

 

최초 진단부터 병기가 높았다.

수술전 항암치료를 했지만 HER2 양성인 환자는 수술 전 요법으로 허셉틴을 허용하지 않는 우리나라 보험제도 때문에 수술을 하고 허셉틴을 써야  보험이 되었다. 수술시 종양은 별로 줄지 않았다. HER2 양성 환자는 가능한 빨리 HER2를 막는 약을 쓰는게 성적이 좋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임상연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여하간 수술을 하고 허셉틴 1년을 썼다.

 

치료 받는 내내 환자는 작은 일에도 병원에 찾아와서 증상을 호소하였다.

환자는 자신의 증상을 자세히 의사에게 표현하고 대응지침을 받는게 필요하지만, 너무 자주 증상을 호소하면 의사도 무덤해지는 마음이 생기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그런 나의 무덤한 마음을 지적이라도 하듯이 그녀의 증상은 항상 어떤 병과 관련이 있었다. 결국 그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쓰고 그 약 때문에 또 다른 부작용이 생겨서 다른 약을 쓰고.... 그러는 동안 환자의 불안 우울감도 심해졌다. 재발에 대해 너무 많이 걱정하였다. 지금 이 증상은 유방암과 관련이 없는 거니까 그냥 치료 잘 받자고 말하며 환자를 다독여야 했다.

 

그렇게 허셉틴이 끝나고 난 직후 피부에 발진이 생겼다.

한달간 경과관찰을 했는데 발진이 번지는 양상이라 조직검사를 했다.

피부전이가 진단되었다.

환자는 거의 패닉이었다.

그녀 진료를 보면 대기 시간이 왕창 길어졌다. 그녀는 너무 지쳐있었고 불안해 했고 힘들어 했다.

진작 조직검사를 해서 한달이라도 먼저 치료를 시작했어야 하지 않느냐

왜 재발을 막는 허셉틴을 썼는데도 이렇게 금방 재발하냐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거냐

 

마지막 허셉틴을 쓴지 1년이 되지 않아

허셉틴 내성이 있는 상태에서

현실적으로 HER2를 타겟으로 하는 약제를 쓰는 것이 보험으로 허용이 안되는 상황이었다. 일반 항암치료를 해야만 하는 상황. 그러나 요행이 환자가 등록될 수 있는 임상연구가 있었다. 어렵게 그 임상연구에 등록이 되어 신약군으로 배정을 받았다.

임상연구를 설명하고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도 환자는 너무나 큰 회의감과 절망감으로 힘들어 했다. 그녀를 진료하는 나도 힘들었다. 환자가 나빠지는 게 내가 치료를 잘 못해서 그런것 같다는 죄책감을 갖게 하였다. 그렇게 힘들게 임상연구로 다시 치료에 도전하였다.

 

약을 바꾸고 1주일째.

그 피부 병변들이 모두 사그러들었다. 놀라운 변화였다.

이번에 선택한 신약이 환자에게 잘 맞는 모양이다. 입안이 헐고 설사를 하고 얼굴에 뾰드락지가 나는 등 독성이 심해서 제 용량을 다 복용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환자는 이제 묵묵히 참는다. 예전처럼 불편감도 호소하지 않는다. 몸이 좋아지는 것을 자기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잘 참는다. 매주 병원에 방문해야 하는 불편함도 말없이 잘 감수한다. 환자는 정말 몸이 힘들었던 것이다. 몸이 힘들었던게 좋아지니 마음도 편해지는 듯 많이 차분해졌다. 이제 울지 않으시려나...

 

그런 그녀가 오늘 항암치료를 하는 날인데

마스크를 쓰고 울먹거리며 왔다.

애들한테 감기가 옮았다며.

애들은 감기에 걸려도 멀쩡한데 자기는 왜 이렇게 힘드냐며 눈물부터 흘린다.

겨우 좋아지고 있는데 너무 힘들어서 오늘은 항암치료를 못 받겠다고 하신다.

 

그녀는 초등학생 두 아들의 엄마다.

자기는 아이들을 위해서 하루라도 더 살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아이들 캠프에 갔다가 넘어져서 한동안 기브스를 하고 다녔다.

그녀는 그녀 나름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나의 모든 에너지를 짜내서 그녀를 위로한다. 그냥 감기라고. 면역성이 떨어져서 감기에 쉽게 걸리는 거라고. 지금 치료가 잘 되고 있으니 당장 오늘 항암제를 못 쓴다 하더라도 급할 거 없다고. 지금 백혈구 수치가 괜찮으니까 곧 나을거라고, 그러니까 기침약, 콧물약 먹으면서 잘 견디자고. 내 온 마음을 다해 그녀를 북돋는다.

 

그녀가 겨우 눈물을 그치고

진료실을 나선다.

 

나는 나의 에너지를 다 썼다.

다음주엔 그녀의 감기가 다 낫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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