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중환자실에서

슬기엄마 2012. 6. 15. 21:56

표정을 감추고 내 할 일을 다할 것

 

나라는 사람은 마음이 표정에 다 드러난다.

그래서 남들이 내 마음을 쉽게 읽는다.

환자들도 날 보고 내 마음을 아는 것 같다.

 

항암치료를 하고 나서 찍은 종양평가 사진이 많이 좋아졌을 때

항암치료를 하고 나서 복부 불편감, 뼈 통증이 좋아졌을 때

항암치료를 하고 나서 숨차던 게 좋아졌을 때

복막전이로 장 마비가 심해 몇 주를 고생하다가 장루 수술을 하고 나서 환자가 잘 먹게 되었을 때

너무 기운이 없었는데 갑상선 호르몬 검사를 해서 진단하고 약을 먹은 후 기운이 좋아졌을 때

뇌전이로 실망하고 눈물짓던 환자가 방사선치료하면서 증상이 좋아지고 다시 씩씩해 졌을 때

심지어 변비가 심하다고 툴툴거리다가 내가 준 마그네슘 먹고 좋아졌을 때

하다못해 알러지로 눈물 콧물로 고생하다가 내가 애용하는 스프레이, 안약을 처방해주었더니 귀찮던 증상이 좋아졌을 때

난 그렇게 환자의 뭔가가 좋아지면 내심 뿌듯하고 매우 기쁘다.

꼭 완치되지 않아도

불편했던 뭔가를 해결하면

그로 인해 느끼고 있던 삶의 고통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식사를 잘 하시게 되고

잠시라도 당신 힘으로 걷고 움직일 수 있고

잠시라도 통증을 잊을 수 있게 된다면

나는 그게 잠시라도 좋다.

환자도 자신이 뭔가 좋아질 수 있는 상태라는 것에 큰 희망을 갖는다.

 

그래서

반대로

환자의 뭔가가 않 좋아지면 나도 의기소침해지고 우울해진다.

오늘 외래에 오시는 분들 중 몇 명의 환자가 나빠졌다는 것을 대강 알고 들어가기 때문에

외래를 시작하기 전부터 마음이 우울한 적이 종종 있다.

환자보다 내가 더 오바하는 경우도 있다.

정작 환자는 꿋꿋하게 잘 견디고 있는데 내 마음이 흔들린다.

 

그래서 오늘처럼 환자가 갑자기 나빠져서 중환자실에 가게 되면 난 그 근처를 맴맴 돈다.

내 마음에 캥기는 게 있다.

, 하루라도 빨리 입원시킬 걸,

, 진작 항생제 바꿀 걸,

아 진작 환자에게 보통 폐렴이 아닌거 같다고 말해줄 걸

 

갑자기 호흡곤란이 생겼다.

당시에는 원인이 명확하지 않았다.

중환자실에 가서 인공삽관을 하고 났더니 심장기능이 떨어져서 다시 환자를 심장내과 중환자실로 옮겼다. 건물이 다른 중환자실로 이동하는게 불안정하고 폐가 좋지 않은 환자에게 썩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밤사이 환자가 심장기능이 더 떨어지면 응급으로 관상동맥조영술을 해야 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응급상황을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오늘 하루동안 환자의 보호자들은 별 어려운 의학적 설명을 다 들어야 했다.

Atypical pneumonia,

ARDS (acute respiratory distress syndrome),

acute myocardiac infarction,

stress induced cardiomyopathy…

이런 중한 병들이 한방에 진단되는 것도 아니고,

폐가 먼저 나빠진건지 심장이 먼저 나빠진건지도 확실하지 않다.

한마디로 환자 상태는 매우 나쁘지만 원인이 명확하게 감별이 잘 안되는 상황.

또한 그녀는 4기 암환자로 4년 이상 살아왔지만, 아직 말기가 아니다. 최근까지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지금 포기할 단계가 아니다.

심장내과 선생님이 심장 초음파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고

호흡기내과 선생님이 항생제 선택할 때 같이 상의하고 인공호흡기 조절하는 걸 지켜보고

레지던트랑 같이 EKG 모니터를 쳐다보고

환자가 일단 안정화되는 걸 보고 내려왔다.

 

환자와 심리적 거리가 가까우면

종양내과 의사로서 정서적 감정소모가 심하기 때문에 좋지 않다.

그러면 직업으로서의 종양내과 의사로서 살기 힘들다. 평생 갈 수 없다. 중간에 꺾여 버릴 것이다. 그래서 환자와 적절한 거리를 갖고 감정소모 하지 않게 마음 단속 잘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그 거리 조절을 못하고 감정소모가 심해서 자책도 많이 한다. 그건 내 미래를 위해 좋지 않다.

 

그런 나에게 한 윗 선생님이 충고를 해주셨다.

어떻게 의사가 그 모든 걸 다 할 수 있겠냐고

아무리 종양내과 의사라고 암환자의 모든 것을 좌우할 수는 없는 거라고.

그러니까 환자가 좋을 땐 좋은데로, 환자가 나빠질 땐 나쁜 상태대로, 그 상태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주면 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환자가 나빠진다고 해서 그걸 내 탓으로 생각하거나 무기력하게 생각하면 안되는 거라고. 종양내과 의사는 환자의 그 모든 과정을 함께 하는 사람인 거라고.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환자를 보며 마음이 힘들 때마다,

환자 상태가 나빠질 때마다,

울고 싶은 마음을 지우고

그를 위해 지금 내가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방법을 찾고 노력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오늘도 중환자실에서 속상해 하지 않고 꿋꿋하게 환자 옆을 지켰다.  

조금 단단해진 것 같다.

 

환자가 무사히 중환자실을 나오실 수 있게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히 의사인 나의 몫

환자는 자신의 생명력을 믿어보는 것

가족은 의사의 판단을 믿고 기다려 주는 것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또한 너무 받아들일 것.

이유가 뭐가 되었든.

누가 뭐래도 더 이상 할말 없을 만큼, 하는 동안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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