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용감씩씩한 환자가 있어요.
4기지만,
그리고 병이 좋아지는 듯 하다가 다시 나빠져서
지금 꽤 오랜 기간 동안 항암치료를 유지하며 치료하고 있지만
그는 정말 명랑하고 쾌할하고 잘 지내요. 그를 보기만 해도 내가 힘이 나는, 그런 젊은 환자입니다. 어두운 그늘이라고는 없어요.
젊어서 그런가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 그가 배가 아파서 예정에 없는 외래에 왔네요.
진통제 안 먹고도 잘 지내던 환자인데 배가 아프다고 하니 덜컥 겁이 나네요. 병이 나빠져서 그런가?
의사가 환자에 대해 갖는 그런 마음을 너무 솔직하게 노출하면 안된다고 해서 요즘 노력중이에요. 가면을 좀 쓰려구요. (우리 환자들은 제 표정을 너무 잘 읽어서 걱정이에요). 그래서 태연하게 내 마음의 걱정을 감추고, 요즘 뭐 특별히 다른 음식 먹은거 없냐고, 대변은 규칙적으로 잘 보냐고, 그런 루틴한 질문을 몇가지 했어요.
배사진도 괜찮고
장음도 특별히 문제없고
그런데 왜 배가 아플까요?
라며 내가 한동안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하자
환자가 털어놓네요.
사실 몇일간 술 마셨어요.
바닷가에 놀러갔는데,
넓고 푸른 바다를 보니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까?
내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되려나?
그런 서글프고도 불안한 마음이 들었대요.
바닷가 경치가 좋아서 술 한잔 했다고 말하지만
전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어요.
아무리 씩씩하고 용감한 환자라고 하지만
때론
아무도 모르게 밀물처럼 밀려들었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삶과 죽음에 대한 불안, 공포, 두려움, 걱정이 그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우리 환자들이
치료를 받는 동안
수도 없이 스스로 다짐하고
꿋꿋하게 일어서려고 애쓰고
겉으로 쿨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그 마음 속에 오만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번 수백번씩 왔다갔다 하고 있다는 걸
전 알아요.
그걸 안다해도 제가 특별히 어떻게 더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이겨내는 것 자신의 몫이니까.
쓸쓸한 그의 마음 속에서 에너지가 다시 샘솟아 나기를 기도하는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오늘 밤 기도합니다.
우리가 비록 때론 눈물 짓지만
그래도 웃으며 살아야 하는게 우리 인생이니까
하느님,
웃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눈물 따위는 한방울 흘리고 나면 나머지 모두 저 세상 속으로 날아가버리는 것에 불과하도록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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