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도시락

슬기엄마 2012. 6. 23. 22:53

 

 

토요일 진료를 마칠 무렵

예정에 없던 그녀의 방문이 있었습니다.

나를 위해 손수 만든 도시락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녀는

내가 힘들어 보이고

내가 박사논문 쓰느라 고생했고

그런 나를 위로하고 축하해 주고 싶었나 봅니다.

이제 기분 업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담은 카드와 함께.

 

그녀도 힘든데

각종 약 부작용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밝은 표정으로 씩씩하게 치료받으려고 애쓰고 있는 거 내가 아는데

그런 그녀가 나를 위로해 줍니다.

나눔은 자신에게 뭔가가 많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에너지를 나에게 나누어주고 갔습니다.

 

전이성 유방암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그렇게 나에게 가르침과 에너지을 주는 환자들을 종종 만납니다.

환자지만,

또 다른 생활이 있기 때문에 온전히 환자로 살지 않습니다.

엄마로서 애들 학원도 챙겨보내고 학부모 회의도 다니고

며느리로 시댁 제사도 챙기고

집안 경제에 보탬이 되고자 수많은 삶의 현장을 함께 뛰며 일합니다.

자기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원봉사도 하고

가족과 힘든 주위 사람들을 걱정하고

자기 건강을 챙기느라 등산도 다니고 운동도 하며 생활을 챙깁니다.

그 삶의 순간 순간

그녀의 마음에는 외로움과 찬바람이 불고 언제까지 이어질 지 모르는 치료 스케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찾아오지만, 그래서 남몰래 눈물도 흘리지만

또 자기 힘으로 씩씩하게 그 고비를 넘기고 몇번이고 마음을 다잡고

예쁘게 화장하고 곱게 옷 차려입고 저의 진료실을 찾습니다.

언제 그런 고민을 했느냐는 듯이

쿨하게, 진솔하게, 일상의 평범함 속에 자신을 위치지웁니다.

 

저는 그녀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종양내과 의사니까

좋은 약을 찾고, 적절하게 선택하여 최대한의 치료효과를 볼 수 있도록 하는 실력있는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쉼없이 공부하고 연구하여 최신 지견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하여, 우리 환자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암 치료는 마음이 있다고 잘 되는게 아니니까요.

 

가끔은 환자들도 나 때문에 상처받고 속상해 합니다.

가끔은 저도 환자들 때문에 상처받고 속상해 합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병원 유방암 클리닉에서 항암치료를 받는 대부분의 환자들과 강건한 유대의 끈을 갖고는 치료적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세상에 태어나 이제까지 살면서 이렇게 타이트한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우리 환자들을 그냥 환자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유대관계가 지금의 저를 채찍질해주는 강력한 드라이브입니다.

 

그녀의 도시락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줍니다.

의사로서 내가 환자에게 주는 사랑보다

내가 받는 사랑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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