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멋진 가족여행을 꿈꾸며
친구들 대부분은 방학이나 공휴일을 낀 연휴가 되면 부모님과 가족여행을 간다며 자랑을 한다. 토요일 학원을 결석하고 월요일까지 쭉 이어서 놀다 오는 친구들도 있다. 가족과의 야외 여행 후 까무잡잡한 피부색을 자랑하는 친구들이 부럽지 않냐고? 글쎄….
솔직히 난 집 나가면 고생이라고, 집에서 쉬는 게 편하다. 여행보다는 집이 편하다는 이런 애늙은이 같은 생각을 언제부터 하게 되었을가? 아마도 어렸을 때 몇 번 다녀오지도 않은 부모님과의 여행 때문이 아닐까?
여행에 대한 안좋은 추억 1.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당시 레지던트 2년차 엄마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였다. 내가더 크면 같이 놀러 갈 시간이 더 없을 거라며 1박2일 동안이라도 놀다 오자고 하여 나의 여름방학과 엄마의 여름 휴가기간을 맞추어 아빠와 셋이서 경상남도 외도에 다녀왔다. 아빠의 휴가날짜가 맞지 않아 우리는 주말을 이용해 여행 스케줄을 짜야 했다. 여행욕심이 많은 엄마는 1박2일 동안 바쁜 일정을 준비하였다. 너무 여기 저기를 많이 돌아다녀야 했다. 엄마는 신나서 돌아다니는데, 당시 9살이던 내가 어떻게 그 일정을 소화하겠는가? 정해준 시간 안에 구경을 마치고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숨가쁘게 걸어야 했다. 나는 마라톤에 참가한 기분이었고, 끝까지 뛰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목적지를 구경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야 했다. 그 이후로 난 부모님이 계획한 여행은 정말 가기싫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힘들고 재미없어~~~
여행에 대한 안좋은 추억 2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방학 중 내 생일이 끼어있었다. 일요일인 내 생일날 당일, 제주도에서 아빠가 참석하기로 한 학회가 있었다. 내 생일을 기념한답시고 학회에 참여하시는 아빠를 따라 엄마와 세 가족이 토요일 저녁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갔다. 그러나 이게 왠걸. 제주도에 도착하고 보니 폭설주의보. 제주도에 그렇게 눈이 많이 온건 몇십년 만에 처음이라고 하였다. 왜 하필 내가 가족여행의 안좋은 기억을 잊고 럭셔리한 호텔에서 잠을 자며 우아하게 제주도 올레길을 걸어보려고 했던 그 이틀간 총 2m에 육박하는 눈이 와야만 했을까. 렌터카를 빌렸지만 엉금엉금 별로 돌아다니도 못하고 괜히 체인만 망가뜨려서 렌터카 회사에 돈만 물어주고 돌아왔다. 제주도 호텔에만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여행에 대한 안좋은 추억 3
작년 11월 엄마가 일본 학회를 가게 되었다. 평소에 일본 만화와 노래에 푹 빠져 있던 나는 이게 왠 떡이냐 싶었다. 나의 프로필 그림을 그려준 제일 친한 친구와 함께 엄마의 학회일정에 맞추어 3박4일간 일본 여행을 계획하였다. 우리는 들떠서 신나게 여행 준비를 하였다. 인터넷을 뒤져 가며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빽빽하게 일정을 세워 놓고 교통편이며 먹을 것까지 완벽하게 준비를 해 뒀다. 학교에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고 4일 동안 당당하게 결석하기로 했다. 교무실 선생님들과 반 친구들에게도 자랑겸 인사를 다 했다. 그렇게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데 할머니에게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일본에 못 가게 됐단다. 엄마 환자 중 한 명의 상태가 너무 나빠져서였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나는 아무렇지 않게 쿨한 표정으로 다음 날 학교에 가야 했다. 마음은 정말 핫 한데…
요즘은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서 여행준비를 한다고 한들 엄마가 너무 바빠서 여행을 갈 틈이 없다. 갈 계획과 준비가 다 되어도 작년처럼 갑자기 취소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름 잘 된 일인지 모른다. 중3인 나는 하루하루 ‘성실하게; 학교와 학원을 다니고 방학이 되어도가족 여행 갈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 다른 곳에 마음을 쓰지 않고 해야 하는 일을 다 할 수 있다. 한 나절만 놀러 가려 해도 앞뒤에 있는 각종 학원 스케줄을 조정해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그래도 지금의 학창시절을 마치고, 나도 부모님도 좀 여유로워지는 시기가 오면 작은 여행 여러 번 안 간 것쯤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평생 기억에 남고, 의미 있고, 추억이 되는 대단한 여행을 다녀 오고 싶다. 꼭 그렇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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