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난 오늘
이불을 선물로 받았다.
내가 받은 가장 인상적인 선물 넘버원, 빤스 2벌을 누르고
이불은 가장 인상적인 선물로 등극했다.
나는 보자기를 열어보고 빵 터졌다.
딸이 사준 거라며 엄마환자가 놓고 간 선물이다.
내가 ‘뭘 이런걸’ 이렇게 말하기도 전에 그냥 놓고 나가버렸다. 아주 어색해 하면서.
내가 간간히 연구실 라꾸라꾸에서 자는 걸 딸이 눈치챈 것 같다.
여름용 라꾸라꾸 커버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짱아찌도 받았다.
5년째 호르몬치료를 받고 있는 뼈전이 유방암 환자.
안정적으로 치료를 잘 받고 계신다. 그래서 별로 할 말도 없다.
그냥 스케줄대로 한달에 한번씩 뼈주사도 맞고 호르몬제를 타가신다.
그렇게 별로 말이 필요없는 관계가 좋은거다.
내가 ‘뭘 이런걸’ 이렇게 말하니까
워낙 많이 담궈서 남아서 가지고 온거라며 어색해 하며 주고 나가신다.
한병에 짱아찌 가득. 비닐봉다리로 정성껏 싸 오셨다.
딱 한병. 정겹다.
수술 전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20대 후반 젊은 아가씨.
부작용없이 잘 받고 있다. 사실 부작용은 있지만 환자가 그 증상들을 잘 무시하며 지내고 있다.
심지어 지난주에는 항암치료 중 백혈구 수치가 제일 떨어지는 기간에 동남아시아 여행도 다녀왔다. 딱 제일 수치가 낮은 때 여행을 가게 되었다. 여행 전날 외래에 와서 백혈구 검사를 시켰다. 너무 낮으면 촉진제라도 맞출려고 했다. 여행가서 열나면 먹으라고 항생제도 미리 처방해주었다. 미리부터 계획해 놓은 거라고 꼭 갈 거라고 한다. 정말 신경쓰였다. 이제 곧 수술할 날짜가 다가오는데 감기걸리면 어떻게 하나 나는 노심초사 걱정인데 정작 환자는 해피하게 여행계획과 준비로 바쁘다. 엄마도 안절부절이다. 꼭 가야 하냐고. 수술하고 나서 가면 안되냐고. 환자는 친구들이랑 이미 오래전부터 해놓은 여행계획이라고 꼭 간다고 한다. 심지어 가서 수중 스쿠버다이빙을 한다고 했다. 오마이갓, 백혈구 몇십개 밖에 없는 기간에 스쿠버 다이빙을 하겠다니 미칠 노릇이다. 아무튼 외래에서 몇번 실갱이를 벌이고 컨디션을 조절한 후 여행을 떠났다. 오늘 마지막 항암치료를 받으러 온 그녀. 내가 동남아 여행 선물의 으뜸, 부탁했던 말린 망고를 엄청 많이 사가지고 왔다. 열대 음료 2병과 함께. 원래 환자들이 선물을 주면 외래 간호사 선생님들과 나눠 먹는데 이번 망고는 몽땅 내 차지다.
허셉틴 유지치료를 받으시는 환자.
치료 끝무렵이 다가오니 지치셨는지 우울해 하신다.
지난번 외래에서
한 여름 되기 전 날씨 좋을 때 제주도 여행 한번 다녀오시라고 처방을 했다.
여행 다녀오니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고 하신다. 좀 힘들기는 했지만 잘 갔다온 것 같다고 하신다.
갔다 오시는 길에 제주도 초콜렛을 사다주셨다.
진료실에 비싼 초콜렛이 등장했다. 아주 스페셜 초콜렛이다.
탁소텔을 맞고 나서 우울감이 오는 환자. 함께 온 남편에게 환자한테 좀 잘해주라고 했더니 뭐라뭐라 말씀하시는데 꼭 화를 내는 것 같다.
나, 왜 화를 내고 그래요?
부인, 원래 목소리 톤이 그래요.
남편, 뭐 맨날 그래요.
(이 분위기는 사실 험악한 분위기가 아니라 화기애애하다. 이런 말도 서로 눈치 안보고 하는 관계다)
남편은 무뚝뚝하고, 관심없는 척 하고, 아는 척 안하려고 하는 전형적인 돌쇠 남편 스타일이다. 나는 부인이 치료 기간 중에 좀 히스테리를 부려도 이해해 주시라고 부탁한다. 탁소텔 맞으면 원래 그런거라고. 그러니까 잘 해주라고 했더니, 지금보다 뭘 더 어떻게 잘하냐고 뚱하게 한마디 하신다.
그러면서도 빵이 가득 담긴 큰 보따리를 내 앞에 밀어놓으신다.
빵 좋아하신다매요? 우리 와이프 잘 좀 봐줘요.
너무 사랑스러운 뇌물이다.
환자들의 정성어린 뇌물을 받고 보니
내가 과연 이런 정성을 받아도 되는 사람인가 싶다.
하루하루가 청천벽력처럼 무너지는 것 같고
때때로 밀려드는 불안감과 걱정 때문에
마음에 짙은 그늘이 수차례 지나갈텐데
그 와중에 나에게 이런 뇌물을 준비해 주시다니 눈물겹다. 고마워 죽겠다.
뇌물받은만큼 잘 할께요.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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