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206

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환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

항호르몬 치료제에 신약을 더한 임상연구에 참여했던 70대 할머니. 내가 보기에 할머니는 신약을 병용요법으로 투여하여 톡톡히 도움을 받으셨다고 생각된다. 항암치료를 하기에는 초반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다. 연세도 꽤 많으시다. 그러나 항호르몬제 단독으로 치료하기에 재발된 초반의 병변은 다소 험악하였다. 그렇게 험악했던 재발부위가 이제 거의 흔적만 남아있다. 치료 후반부로 올수록 병합한 신약의 독성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 그 약은 중단하고 항호르몬제만 유지하고 계신다. 임상연구로 치료한지 2년이 지났다. 국제적 규모의 임상연구라 항호르몬제도 계속 지원이 되고 있다. 2달에 한번 찍는 CT도 비용이 제공되고 있다. 임상약을 빼고 투여하더라도 치료적 지원이 계속 되도록 본사와 여러 차례 나의 의견을 문서로 전..

겉으로는 쿨 해 보였던 그녀

수술 후 금방 재발하였다. 현재 계속 재발 중이다. 처음 항암제로 4주기까지 약효가 유지되었던 것이 치료 효과의 전부다. 피부로 재발한다. 뽀글뽀글 병이 피부를 뚫고 올라온다. 항암제를 바꿔서 치료를 하고 있는 중에도 항암제에 굴하지 않고 계속 진행하고 있다. 나보다 나이가 약간 많은 그녀. 중립적인 표정으로 객관적인 표정으로 선생님 이번에는 이쪽으로 병이 나오고 있어요. 이쪽 피부가 좀 더 빨게 진것 같아요. 그렇게 나에게 보고해준다. 굳이 CT를 찍지 않아도 약효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매번 외래에서 윗옷을 걷어 붙이고 병변 주위를 샅샅이 살핀다. 마음 속으로 한숨 가득. 내가 낙심한 표정을 지어도 그녀의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좋은 약으로 치료해주세요. 그저 날 기다린다. 아바스틴은 우리나라에..

효심

나의 토요일 진료는 격주로 열린다. 오늘은 토요일 외래가 없는 날이지만 환자 2명을 진료하였다. 한명은 학원을 운영하는 내 또래 유방암 환자. 처음 진단을 받았는데 목 주위 림프절까지 이미 전이가 되어 당장 수술하는 것보다는 수술전 항암화학요법을 받는게 필요하다. 병기가 높기 때문에 치료를 미룰 수 없는데 주중 외래에서는 나도 그렇고 그녀도 그렇고 첫 설명을 제대로 할 시간이 없어 오늘 진료하였다. 또 한명은 내 또래 아들이 있는 유방암 환자. 이미 뇌로도 전이가 되었다. 그로부터도 2년이 지났다. 환자는 소뇌위축증이 있어서 원래 말씀도 약간 어눌하고 걸음걷기도 편치 않아 휠체어로 다니신다. 그냥 얼핏 보면 환자 컨디션도 않좋아보이고 큰 희망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우리 병원에서 오랫동안 치료받은 환..

환자가 달라졌어요!

손선생님께 오랫동안 치료받은 환자. 나랑은 지난 8월에 처음 만났다. 나랑 처음 만난 진료시간, 지금 불편한 점이 무엇인지, 지금 받은 항암치료로 어떤 독성이 나타나고 있는지 질문했다. 변비 속쓰림 콕콕 쑤시는 통증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호소하는 일반적인 통증이다. 나는 이전 약처방을 참고로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약을 처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처방하고 있는 나를 보더니 그동안 약 먹었어도 도움도 안되고 그렇게 추가로 먹는 약 때문에 부작용이 더 심했다며 자기 가방에서 각종 약 봉다리를 잔뜩 꺼내 진료실 책상에 던져놓는다. 그동안 처방받은 약들인데 효과도 없고 그런데도 계속 같은 약만 처방해 준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다소 무례하다. 최근에는 이렇게 처방해 준 약 하나도 안 먹었다고. 아주 화가 났..

지금 상태가 어떤가요?

누가 뭐라해도 난 환자와 가족에게 설명 하나는 잘 해드리는 편이라고 내심 자부하는 편인데 알고보면 그런 것도 아닌가보다. 사실 외래에서는 심도깊은 얘기를 할 겨를이 없다. 외래에서 항암치료를 진행할 정도의 컨디션이라는 것 자체가 일단 전신상태가 양호하다는 것, 환자 상태가 그만그만 잘 견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래에서 많은 대화를 못하고 싸이클에 맞춰서 항암치료를 하던 중 어떤 새로운 증상이 나타났을 때 병이 나빠지면서 환자의 컨디션이 나빠질 때 입원을 하시게 된다. 즉 입원을 하는 상황 자체가 환자와 가족에게 뭔가 추가적인 설명을 더 해야 하는 때라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암환자는 힘들다는 이유만으로도 입원이 필요할 때가 있다. 원인을 잘 찾아보면 이 환자가 힘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지금 치료의..

나쁜 환자

며칠전 저녁, 병동에서 세시간 넘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퇴원한 환자가 있었다. 유방암 뼈전이를 진단받은 환자였는데 뼈조직검사를 하고 퇴원하려고 했다가 조직검사 한 곳이 너무 아파서 하루 더 있다가 가기로 했다. 퇴원 예정이라 점심 식사도 안 나오고, 이후에 퇴원 취소 처방을 냈는데 병동을 옮기는 바람에 인계가 제대로 안되면서 또 식사처방이 빠져서 환자가 2끼 식사를 못하게 된 것이 발단이었다. 정확한 정황은 내가 직접 자리에 없어서 확인이 안되지만, 2번 다 식사가 안 나오니까 간호사가 사다 드시라는 말만 했다고 한다. 그말에 환자는 열받아서 퇴원을 하겠다고 결정하였다. 6시 넘어서 갑자기 퇴원을 결정하는 바람에 서류 처리에 시간이 걸렸고 그 왕 소란을 피우고 내 얼굴도 안 보고 돈도 안내고 퇴원해버..

착해 보이는 항암제

탁소텔 오래 쓰는 환자에서 특히 그런것 같은데 항암치료 중에 눈물이 글썽글썽 고이는 환자들이 있다. 자꾸 눈물이 난다고 한다. 언뜻 보면 환자가 꼭 울려고 하는 것 같다. 나는 환자 눈치를 보면서 무슨 일 있으세요? 하는데 정작 환자는 환하게 웃는다. 괜찮아요. 왜요? 아래 눈꺼풀에서 콧 속을 거쳐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비루관이 막히면 눈물샘 폐쇄증이라는게 생긴다. 항암제 때문에 미세 혈관/미세조직에 염증이 생길 수 있는데 비루관에도 염증이 생길 수 있고 그럴 때 눈물샘이 막혀 환자들은 항상 눈물이 그렁그렁 하다. 그래서 착해보인다. 순한 소 같다. 환자들은 원리를 설명해드리면 잘 이해하신다. 너무 눈물이 많이 흐르면 안과보게 해드릴께요. 안과 선생님이 뚫어주실거에요. 그 정도 아니에요. 착하게 보이면서 ..

가족이 함께 쓴 병상일지

지난 4월, 할머니가 제주도 분이라 제주도에서 항암치료 받으셨으면 했는데 그 사이 병이 많이 않좋아지셨나 보다. 따님이 제주도 병원에서 치료받은 기록을 떼어오셨는데 기록상으로는 상태가 많이 않좋아지신거 같았다. 가족도 다 제주도에서 사신다는데 서울까지 꼭 오셔야 할까? 서울까지 와서 치료를 받는 것이 할머니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내심 회의적이었다. 방사선치료를 시작하셨다고 해서, 일단 방사선치료를 다 받으시고 서울 오실 기력있으면 오시라고, 언제든지 입원장 드리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어제 입원하셨다. 내가 할머니를 처음 뵈었을 때보다는 않좋아지신게 맞지만 의무기록처럼 아주 상태가 나쁘지는 않아 다행이다. 그리고 정신도 너무 맑고 또렷하시다. 의학적인 설명에 대해서도 아주 잘 이해하신다. 서울에서 ..

온열치료 받을래요

항암치료 너무 힘들었어요. 다시는 못 받겠어요. 온열치료 받으면 부작용도 없고 편안하게 치료받을 수 있대요. 자연 항암제를 쓰면서요. 저 온열치료 받을 수 있게 소견서 써주세요. CT도 복사해 오래요. 자연 항암제? 무슨 말이지? 20대초반. 환자의 엄마가 나보다 한두살 많은 정도로 젊다. 이 가족에 사연이 많은 것 같은데 나를 처음 만난 그들은 아직 마음의 문을 열기 어려운가 보다. 사정은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수술 후 항암치료를 3번 받고 골수기능이 회복되지 않아 항암치료를 두달째 못하던 중에 자꾸 기침이 나오고 허리가 아팠다고 한다. 폐렴인줄 알고 우리 병원에 왔다가, 조직검사를 할 필요도 없이 명확한 유방암 전이상태라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유방암을 진단받고 수술한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

나도 아프고 가족도 아프고

40대 후반의 환자. 첫 유방암은 2003년. 2006년에 뼈로 재발했다. 2008년에는 반대쪽 유방에도 암이 생겨서 수술했다. 지금은 뼈에만 병이 있는 상태. 재발한 시점부터 따지면 5년이 넘는다. 젤로다 먹는 약 한가지로 치료한지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까지 큰 변화없이 잘 유지하고 계신다. 가끔 허리가 아프긴 했었는데 최근에 더 아프다고 한다. 한주기만 더 치료해보고 사진찍고 약을 유지할지, 방사선치료를 할지 결정하기로 했었다. 그러던 그녀가 당분간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한다. 선생님 항암치료를 좀 쉬어야 겠어요. 왜요? 요즘 허리가 더 아프다면서요? 사진찍어보고 필요하면 방사선 치료하려고 했었는데... 지금 무슨 검사를 더 하고, 나 좋아지겠다고 약 먹고 할 정신이 없어요. 무슨 일이 있으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