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할머니가 제주도 분이라 제주도에서 항암치료 받으셨으면 했는데
그 사이 병이 많이 않좋아지셨나 보다.
따님이 제주도 병원에서 치료받은 기록을 떼어오셨는데
기록상으로는 상태가 많이 않좋아지신거 같았다.
가족도 다 제주도에서 사신다는데 서울까지 꼭 오셔야 할까?
서울까지 와서 치료를 받는 것이 할머니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내심 회의적이었다.
방사선치료를 시작하셨다고 해서, 일단 방사선치료를 다 받으시고 서울 오실 기력있으면 오시라고, 언제든지 입원장 드리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어제 입원하셨다.
내가 할머니를 처음 뵈었을 때보다는 않좋아지신게 맞지만
의무기록처럼 아주 상태가 나쁘지는 않아 다행이다.
그리고 정신도 너무 맑고 또렷하시다. 의학적인 설명에 대해서도 아주 잘 이해하신다.
서울에서 치료받을 걸 괜히 갔어 하시는데,
원래 병이 그런거에요. 그런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했다.
의무기록으로 확인이 안되는게 있어서
따님께 몇가지 질문을 했더니
당신도 정신이 없어 생각이 안난다며 가방을 주섬주섬 뒤져서
헤어진 노트를 한권 꺼내신다.
초등학생들이 쓰는 예쁜 그림이 그려진 노트다.
온갖 내용이 다 기록되어 있다.
기록을 따님 혼자 한게 아니라 병수발을 한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기록을 같이 한 것 같다.
필체가 제각각이다.
간호사 인계장보다 더 열심히 쓰신 것 같다.
너무 열심히 간호를 하셨었구나...
마음이 숙연해진다.
솔직히
모든 환자를 내 가족처럼 돌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가족들이 합심하여 이처럼 열심히 간호하고
환자를 조금이라도 낫게 해주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더 열심히 치료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무기력해지려는 나를 채찍질하는 건 역시 환자구나.
마음을 다잡는다.
다시 고민을 시작한다. 할머니를 위한 항암제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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