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나쁜 환자

슬기엄마 2011. 10. 29. 12:58


며칠전 저녁, 병동에서 세시간 넘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퇴원한 환자가 있었다.
유방암 뼈전이를 진단받은 환자였는데
뼈조직검사를 하고 퇴원하려고 했다가 조직검사 한 곳이 너무 아파서 하루 더 있다가 가기로 했다.
퇴원 예정이라 점심 식사도 안 나오고, 이후에 퇴원 취소 처방을 냈는데 병동을 옮기는 바람에 인계가 제대로 안되면서 또 식사처방이 빠져서 환자가 2끼 식사를 못하게 된 것이 발단이었다. 정확한 정황은 내가 직접 자리에 없어서 확인이 안되지만, 2번 다 식사가 안 나오니까 간호사가 사다 드시라는 말만 했다고 한다. 그말에 환자는 열받아서 퇴원을 하겠다고 결정하였다. 6시 넘어서 갑자기 퇴원을 결정하는 바람에 서류 처리에 시간이 걸렸고 그 왕 소란을 피우고 내 얼굴도 안 보고 돈도 안내고 퇴원해버렸다.
나는 그날 밤 다른 병원에서 회의가 있어서 병동에 가보지를 못하고 전화로 연락만 받았다. 아주 찝찝한 기분이었다.
어제 조직검사 결과가 나와서 환자에게 전화를 했다. 조직검사 결과는 검체부족. 이런.
별 말 없이 나는 조직검사한 자리 괜찮냐고, 아프지 않냐고 물어봤다. 당뇨가 있는 환자는 조직검사한 자리가 잘 아물지 않고 진물이 나오는 것 같다고 한다. 오늘 당장 오시라고 했다. 조직검사 후 합병증을 확인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사실 그날의 자초지종을 다시 한번 환자랑 여유있게 얘기해봐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일 진료보다는 토요일이 낫겠다 싶어서.

겉으로 보면 밥 두끼 제대로 안나왔다고 소리지르는 교양없는 환자다 싶지만
내막은 복잡하다.
나에게 유방암 뼈전이가 의심되어 진료를 보기 전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고, 내가 그 경과를 정리해보아도 환자가 울화통이 여러번 터졌을 거라고 생각되는 경로였다. 그래서 난 내심 이 환자를 빨리 검사하고 결과를 확인해서 서둘러 치료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차였는데, 또 나한테 입원해서까지 문제가 발생한 상태였다. 환자는 밥 두끼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나도 동의한다.

2002년에 처음 다른 병원에서 유방암을 진단받고 수술받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수술 후 3일부터 수술한 자리가 너무 아팠는데, 의료진은 수술하면 원래 아픈거라고 하고 상처도 열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수술 후 5일이 지나서 열이 나기 시작하는데, 항생제만 주고 별 조치없이 계속 통증이 심해서 결국 남자 보호자가 화 내고 소리지르고 하니 그제서야 유방상처를 자세히 보았는데, 손대자마자 고름이 터져나왔다고 한다. 수술 후 감염이 동반되어 있었던 것이다. 6번을 다시 꼬맸는데도 상처가 낫지 않고 균 검사에서 강력한 내성을 가진 병원감염균이 동정되었다. 50일을 입원했다고 한다. 감염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제공되지 않고, 매번 문제를 의료진이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발견하고 검사해달라고 하고 조치해달라고 매달려야 조치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환자의 말을 100% 다 믿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정황이나 환자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2008년에 이미 뼈전이가 있었다. 그런데 환자는 모르고 있었다. 내가 설명할 때까지.
해당 병원에 문의해보니 뼈전이를 진단하고 방사선치료도 했다. 호르몬제도 전에 투여했던 약을 다른 종류로 바꾸어 전이에 준해 약제를 변경하였다. 적절한 조치를 다 했다.
그런데 정작 환자는 자신의 상태가 뼈전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자기는 이번에 엉덩이 아픈 것이 뼈전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뼈에 다른 병이 생겼다고 알고 있다. 내 설명을 듣더니, 그렇게 된 건줄 알았으면 바꾼 호르몬제가 치료약인줄 알았으면 열심히 먹었을 거라는 말을 한다. 의료진의 별 설명없이 하루에 한알씩 약을 먹으라고 해서 먹었는데 약이 떨어져도 병원에 안가고 몇달다가 가서 다시 약 처방받아 먹고 또 떨어지면 안 먹고 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다. 식당일을 하는 환자는 바빠서 병원을 꼬박꼬박 다니지도 않고 있었다. 항호르몬제는 몇달 먹고 또 안먹고 다시 먹고 안먹고 하기를 3년반 이상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증등록 재신청문제, 본인이 들어놓은 사보험의 혜택 문제, 이번에 우리병원에서 한 뼈검사 결과는 검체 부족으로 결국 암세포를 증명하는데는 실패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환자가 생계를 위해 벌여놓은 일을 정리하고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 문제... 우리는 1시간 반동안 그런 문제에 대해 상의하였다.

삶이 고단한 환자,
변변히 배운거 없이 29살부터 식당일을 시작해 남의 식당에서 일하다가 몇년전 작은 식당을 하나 사서, 빚을 갚으며 돈을 벌었고, 하나 있는 딸 가르치며 먹고 사는데 급급했다고 한다. 유방암을 처음 진단받을 때, 뼈전이를 진단받았던 당시도 다른 상처가 생겨서 검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된 것 같다. 암이나 암의 재발 등에 대해 별로 생각할 틈없이 생활고를 해결하시느라 어려움이 많으셨던 것 같다.

유방암의 유형 중에 이렇게 천천히 나빠지고, 약을 쓰면 병이 진행되지 않고 잘 유지되다가 조금 또 나빠지고 하기를 반복하며 오랫동안 생존가능한 타입이 있다. 이 환자가 그런 유형이다. 전이가 되면 평균 수명을 2년이라고 말하는데, 이 환자는 제대로 치료하지 않았는데도 3년 반 이상을 살았다. 지금도 크게 아픈 곳은 없다. 그냥 지낼만 하다고 하신다.
나는 전이성 유방암의 경과와 특징에 대해 설명하였고 향후 치료계획에 대한 나의 세가지 대안을 설명하였다. 환자는 나의 설명을 잘 이해하는 눈치다. 완치는 어렵다고 말해도, 환자는 괜찮다고, 완치안되도 이렇게만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아직 시집안간 딸 시집만 보내면 되니까 그때까지 남은 시간을 위해 열심히 치료하겠다고 한다. 임상연구에 대해서도 동의하셨다. 임상연구의 의미도 잘 이해하신다.

내가 보기에 이 환자는
비교적 상황에 대한 이해력이 좋고,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의사에게 잘 표현하며, 
의학적 전문지식이 없는 환자로서 의사를 믿고 치료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평균적인 환자였다.
그렇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환자의 모습은 나쁜 환자였다.
말 안 통하고 소리지르고 교양없는 그런 환자였던 것이다.

나의 설명을 다 듣고 나서 원무과에 가셔서 아무말 없이 밀린 병원비를 지불하셨다.
내가 미리 원무과에 상황 설명을 해 두었었다. 원무과 담당직원은 잔뜩 대비하고 환자를 만났는데 아무 말씀 없이 돈을 내셨다고 한다.
마음 고생 많으셨다고, 이제 잘 치료하자고, 불만이나 문제가 있으면 나에게 얘기하시고, 당장 즉각적으로 환자 편의를 위해 대답이 딱 떨어지지 않더라도 저를 믿고 기다려달라고 말씀드렸다.
차마 환자에게 말하지 못했던 의사로서의 책임감, 죄책감이 느껴진다.
환자 입장에서 억울하고 화나는 일이 많았다.

진료를 마치고 가면서 마지막에 환자가 하는 말,
그 약이 재발을 막는데 그렇게 중요한 약이었으면 매일매일 열심히 먹을걸 그랬어요. 아무리 식당일 바빠도 득달같이 병원가서 타다 먹을 수 있었는데. 그때 약을 꼬박꼬박 먹었으면 이번에 재발한 것도 늦출 수 있었을텐데... 그게 제일 속상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