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라해도
난 환자와 가족에게
설명 하나는 잘 해드리는 편이라고
내심 자부하는 편인데
알고보면 그런 것도 아닌가보다.
사실 외래에서는 심도깊은 얘기를 할 겨를이 없다.
외래에서 항암치료를 진행할 정도의 컨디션이라는 것 자체가
일단 전신상태가 양호하다는 것, 환자 상태가 그만그만 잘 견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래에서 많은 대화를 못하고 싸이클에 맞춰서 항암치료를 하던 중
어떤 새로운 증상이 나타났을 때
병이 나빠지면서 환자의 컨디션이 나빠질 때
입원을 하시게 된다.
즉 입원을 하는 상황 자체가
환자와 가족에게 뭔가 추가적인 설명을 더 해야 하는 때라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암환자는 힘들다는 이유만으로도 입원이 필요할 때가 있다. 원인을 잘 찾아보면 이 환자가 힘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지금 치료의 독성, 질병 진행 등이 그 원인이다.
(그러므로 집에서 돌봐줄 보호자가 없다든지, 혼자 밥 해먹기 힘들어서 입원하고 싶어하는 분들에게는 입원장을 드리지 않는다.)
그래서 입원을 하시면
환자에게는
그동안 외래에서 자세히 못 보여드렸던 사진도 예전것부터 시리즈로 쭉 보여드리며
본인 질병의 경과를 설명해드리고
보호자는 따로 만나 - 첨부터 같이 만나 같이 예후를 얘기하면 화 내는 보호자들이 많기 때문에 일단 처음에는 따로 만나야 한다 -
앞으로 예상되는 예후가 어떻게 될지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그래서 이렇게 면담하느라 저녁시간이 약속으로 꽉 찬다.
환자가 나빠지는 과정에
최소한 한번은 그런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환자도 그렇고 가족도 그렇고 본인에게 남아있는 시간을 헤아리고,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해 곰곰히 따져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판단 시점에 의사가 의학적 견지에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치료계획은 어떤지, 평균적으로 앞으로 예상되는 코스는 어떤지 설명을 해 주어야 거기에 맞게 환자와 가족들도 입장을 정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나의 의도나 바램과는 달리
그동안 여러 번 설명을 했는데도
그 내용과 의미를 잘 모르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이 많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지난 여름 뇌 전이 뇌막전이가 발생하여 방사선치료를 했다. 그래도 가끔 머리가 아프다. MRI를 다시 찍어 봤더니 조금 나빠지고는 있기는 하지만, 방사선치료를 마친지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방사선을 시도하기는 그렇고 감마나이프나 수술은 적절하지 않은 상태이다. 오마야 카케타를 넣어서 척수강으로 항암제를 주입하는 치료도 같이 하고 진행하였다. 평균적으로 아주아주 예후가 나쁜 상태인데, 사실 환자는 별 지장없이 일상생활을 잘 하신다. (이것이 유방암 환자들의 놀라운 점이다)
그래서 지난 여름, 머리에 병이 생겼을 때 가족을 불러 이런 사항을 다 말씀드리고, 예후는 좋지 않지만, 전신상태가 좋으니 항암치료를 하는게 도움이 되겠다고 말씀드리고 치료를 유지하였다.
그렇게 항암치료를 하던 중 비전형적인 양상의 폐렴이 생겨 험상궂는 CT를 찍고 입원하였다. 항진균제를 쓰면서 몇일 사이에 많이 좋아졌다. 항암치료를 하니 부작용이 생기고, 안하자니 병이 나빠지고, 그 양끝에서 마음이 왔다갔다 한다. 오늘은 보호자가 환자의 현재 상태를 전혀 모르는 듯한 질문을 한다.
'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항암치료 했는데, 왜 나빠지나요?"
"지금 나빠진 건 병이 나빠진게 아니구요 항암치료의 합병증 그리고 뇌막치료 때 사용했던 스테로이드의 합병증으로 면역성이 떨어지면서 폐렴이 온 겁니다."
"아니, 병원에서 시키는대로 치료했는데 왜 나쁜 일이 생기는거죠?'"
"(음.... 몇번 얘기했었는데) *****. &&&&&&, %%%%%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도 치료하면 좋아지겠죠? 우리 환자 오래 살 수 있는거죠?"
"(뇌막전이 후 4개월이 지났으니 이미 평균 여명을 넘어가고 있는 건데...) 어려움은 많지만, 지금 전신상태가 좋은 편이니 가능하면 편안하게 오래 사실 수 있게 해야죠. 하지만 그 기간이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을거 같아요."
"왜요? 비싸다는 표적치료도 다 하고 방사선도 하고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다 한건대..."
"잘 알려진 표적치료제를 다 썼습니다. 표적에 맞는 치료를 하지 못하면 일반 항암치료에 치료가 잘 될 확률이 높지 않거든요. 어떻게든 효과적인 약제를 써 봐야겠지만, 이제까지 썼던 약보다 치료성적이 좋지않은 약을 쓰게 될거에요."
보호자는 이런 나의 설명을 첨 듣는 듯한 표정이시다.
그런 표정을 보며
내 마음도 아차 싶다. 잘 이해하지 못하고 계신 거였구나.
그런 침통한 분위기를 깨는 보호자의 질문 한마디, "그런데 오메가 3 먹어도 되요?"
더 이상 설명드릴 힘이 없네...
약제를 바꾸고 많이 좋아진 환자.
약제 선정시 비용문제로 고민이 많았는데, 환자가 동의하였다.
그리고 한 주기가 지났는데, 많이 좋아지신 것 같다. 딱딱했던 배가 다소 부드러워졌다. 얼굴 안색도 더 좋아지셨다. 역시 ***는 효과가 좋네 생각하고 있는데, 환자는 다른 말을 한다. 교회에서 아는 사람이 배아픈 데는 효모랑 이스트랑 그런 걸 먹으면 효과가 좋다며 3주전부터 그 분이 주신 약들을 드시기 시작했는데 소화도 잘 되고 변도 잘 나오고 복막 통증도 줄어들고 진작 먹을 걸 그랬다며 아쉬워 하신다. 공교롭게도 항암치료를 받을 무렵에 효모랑 이스트랑 드시기 시작했나 보다. 뭣 때문에 좋아지셨을까.... 여하간 환자는 만족이다.
빠르게 나빠지는 드문 유형의 난소암, 20일 전 CT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그 후에 다시 찍은 CT에는 전체 간으로 병이 확 나빠져서 서둘러 항암치료를 시작했었다. 그리고 4주기까지는 드라마틱하게 병이 없어지는 것 같더니 6주기를 마치고 찍은 CT에서는 다시 너무나 많은 부위로 병이 진행되었다. 환자의 복통도 심하다. 아주 공격적인 유형인 것 같다. 처음 사진이 아주 흉악해서 잠깐 보여드리고 화면을 닫았던 기억이 난다. 2주기 끝나고는 두 사진을 비교해서, 지금 치료가 비록 힘들지만 얼마나 효과가 좋은지도 보여드렸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오늘 아침, 환자는 그동안 자신의 병에 대해 한번도 설명들은 적이 없다며, 사진도 왜 한번도 안 보여주냐고 불만을 표하신다.
본인의 정보처리영역 내에 내 설명은 들어가지 못한 상태이다. 부인하는 걸까... 난 다시 한번 그동안 찍은 사진을 다 펼쳐놓고 적나라하게 설명을 해 버렸다. 마음 속으로는 화가 난 것도 있어서 솔직하게 정보의 가감없이 그대로 설명하였다. 환자의 반응은 아직 확인하지 않았다...
여러번 설명드려도
환자와 가족은 항상 새로운가 보다.
나는 작심하고 설명해도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또다른 길이 필요한 것 같다.
지금 상태가 어떤가요?
환자의 상태는 항상 변하는 것이니 이런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해야지.
그런데 답변을 하다보면
몇번을 다시 말해도 늘 다시 물어보는 경우가 꽤 많다.
같은 한국말을 해도 그것이 다 소통되는 언어는 아닌가 보다.
환자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기,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이다. 노하우가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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