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12년전에 중풍이 왔다.
중풍이 온 후로 왼쪽이 마비되어 왼팔, 왼다리를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다.
전동차 휠체어를 사서 집안에서 타고 다니며 집안일을 하며 지내셨다. 집안일은 오른손으로 하셨다.
할아버지, 아들의 식사 준비, 청소, 빨래 그런 일들을 오른손으로 하며
일상을 꾸려오셨다.
할머니는 3년전부터 유방에 만져지는 멍울이 있었지만
이미 60을 훌쩍 넘긴 나이. 그냥 지내셨다.
당뇨 고혈압 중풍의 오랜 병력에 지쳐서 그런 것까지 신경쓰기에는 생활고에 어려움이 많으셨나 보다.
할아버지가 장 봐 오시고 병원에 가서 할머니 약도 타오시고 바깥일을 다 봐주시니
할머니는 외출도 안하시고 3년동안 집안에서만 지내셨다.
다세대 주택 3층에 살고 있어서 전동차에 의지해 사는 할머니는 스스로의 힘으로 바깥 출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유방은 계속 병이 진행되고 있었다.
겉으로 상처가 생기고 진물이 나고 림프순환을 막아 오른손이 퉁퉁 부을 때까지 말씀 안하시고 지내셨다. 할머니는 그렇게 사는데까지 살다가 죽겠다고 생각했다 하신다.
할아버지는 그것도 모르고 지내시다가
밥상머리에서 숟가락질을 제대로 못하는 할머니를 보고
그제서야 겨우 눈치를 채고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왔다.
유방암이 진단되고 뼈와 폐로도 전이가 되었다.
워낙 아픈데 이골이 나서 어디가 특별히 더 아픈지도 모르겠다 하신다.
할머니는 병원비부터 걱정하신다.
다행히 약과 검사가 모두 제공되는 임상연구가 있어서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오늘 2주기를 마치고 처음으로 CT를 찍었다.
아주 많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결과가 내 성에 차지 않았다.
그렇지만 팔의 붓기가 많이 빠져서 할머니는 많이 좋아하셨다.
눈물을 글썽이며
'나 이제 살고 싶네. 더 많이 좋아졌으면 좋겠어.' 하신다.
3층집에서 전동 휠체어를 가지고 나올 수가 없어서, 병원 오실 때 119 들것에 실려 내려오셨는데
첫 진단 받은 이후 아직까지 그 집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우리병원에 장기 입원해서 2주기 항암치료까지 다 받고
얼마전 요양병원으로 퇴원하셨다가 오늘 외래에 오셨다.
할머지는 병원에 왔다갔다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오전에 와서 피검사 하고 CT, 뼈사진 다 찍고 상처전문간호사 진료도 보고 오후에 외래 진료를 보았다. 오늘 오후는 원래 외래가 없는 날인데 할머니 형편을 고려해서 할머니만 따로 진료하기로 했다. 오늘 3차 항암치료를 받고 조금 전에 요양병원으로 귀가하셨다.
3층짜리 다세대 주택 집을 팔고 서울 가까운 경기도 근처로 집을 줄여 전세를 얻었다고 하신다. 이번에 얻은 집은 1층이니까 좀더 바깥 출입이 용이하실 것 같다.
어려운 살림에 치료를 받기 위해 변화를 시도하시는 두 어르신들.
하나 있는 자식을 뭐라고 하기에
아들도 변변한 직장을 잡지 못해 근근히 지내는 눈치다.
입원하기 전에는 집에서 혼자 힘으로 소변을 잘 보셨는데 입원하면서 소변줄을 끼웠다.
소변줄을 빼자고 했더니,
병원 환경에서는 스스로 소변보기가 용이하지 않아 간호사나 다른 사람들 도움받아야 하는데
그거만큼은 정말 싫다고, 당분간만 소변줄 유지하게 해달라고 해서
안되는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소변줄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양병원에서도 소변줄을 빼지않고 지저분한 소변줄을 유지하고 계셨나보다.
새집으로 이사가면 요양병원에서 퇴원해서 집으로 가시겠다 하신다. 그리고나서 소변줄 빼시겠다고 한다.
의학적으로 장기간 소변줄을 유지하는 것은 여러 모로 환자에게 좋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이사갈 때까지 유지하기로 했다. 치료가 의학적으로만 성사되는게 아닌 것 같다.
다음 항암 치료 시점과 이사날짜를 맞추어 잡았고
이사할 무렵에는 할머니는 몇일간 우리 병원에 입원하기로 했다. 이사하는 동안 입원해서 소변줄 빼고 소변 잘 보시는지 확인하고 항암치료 하고 뭐 그렇게 시간을 몇일 보내다가 집 정리가 다 되면 집으로 퇴원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었다.
오늘 하루 종일 병원 주사실이나 상처 간호사나 연구간호사, 나 너나 할것 없이 할머니만을 위한 스페셜 진료를 하였다.
그런 마음이 모여 할머니에게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할머니는 완치되지 않는다는 거 다 알고 계신다. 팔의 붓기만 빠져도 이제 살 것 같다 하셨다.
환자는 조금만 좋아져도 많이 기뻐하고 희망을 갖는 것 같다.
다음 CT를 찍을 때까지 조금만 더 좋아지면 좋겠다.
할머니가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자존심을 되찾고
당신 과거의 삶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게
조금만 더 좋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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