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20분.
응급실에 온 환자를 보러 가는데
저 멀리 오늘 외래 오기로 한 환자가 지나간다.
오전 9시 30분 진료 예정인데 벌써 오셨구나. 피검사 하고 뼈사진 찍고 외래보기로 했는데...
60세가 넘은 나이에도 꼭 일찍감치 오셔서 서둘러 외래를 보고 가신다.
검사도 일찍 와서 하고, 당일로 외래에서 결과를 확인하고 돌아가신다.
병원에 자주 왔다갔다 하기 부담스럽다고...
직장 생활하는 며느리를 대신해서 집안일도 하고 애들도 봐줘야 한다며...
다리로 전이되어 방사선 치료까지 했으니 일하는데 너무 무리하시 말라고 해도
뭐, 이제 더 나빠져도 후회없다며
이대로 당신방식대로 살거라고 하신다.
표준 치료보다는 임상 연구로 하는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젊은 유방암 환자.
지금 표준치료를 해버리면, 다음에 나빠졌을 때 더 이상 좋은 선택지가 없으니
이번에 시작하는 신약으로 임상연구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약제의 기전, 유용성, 예상되는 독성 등을 설명하며 왜 당신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지 나의 견해를 설명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을 고려하면, 약도 제공되고 검사도 다 제공되니까 경제적으로 부담도 없으니 장점이 많다고.
환자는 충분히 이해했다고. 자기도 그렇게 치료받고 싶다고.
그렇지만 3시간이 넘게 기차타고 지방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셔야 하는데
매주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스케줄이 부담스럽다고 하신다.
병원왔다가 집으로 돌아가실 때는 기차 자리가 없어 입석밖에 없어서
신문지 깔고 앉아 가신다고 한다.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
새벽같이 병원에 와도
피검사 하고, 결과 기다리고,
검사결과 나오면 외래 보고
내가 처방한 항암제가 조제될 때까지 주사실에서 기다리고
순서에 따라 항암제 맞고 또 수액맞고 다시 항암제 맞고 하는 동안
하루가 훌쩍 간다.
어떨 때는 저녁에 막차를 타고 서울에 온다.
차비 아낄려고 서울역에서 걸어서 병원까지 오신다.
컴컴한 병원을 돌아다니며 한가롭고 냉난방 잘 되는 대기장소를 찾아 거기서 새벽녘까지 조각잠을 자기도 한다.
그들에게
난 어떤 의사인가...
날 둘러싼 어떤 조건도 불평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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