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크록스와 발 맛사지

슬기엄마 2011. 9. 23. 22:18


67세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
허셉틴으로 치료하며 꽤 오랜 기간동안 병이 좋아지고 있었는데
1년 남짓 치료하다보니 다시 저항성이 생기면서 병이 나빠졌다.
허셉틴에 저항성을 보이면 다음으로 HER2를 막는 약은 타이거브.
이 약은 반드시 젤로다랑 같이 쓰도록 규정되어 있다.

타이커브와 젤로다를 같이 쓰는 용법은 독성이 겹친다.
손발 피부가 벗겨지고 손톱발톱이 들뜨면서 갈라진다.
설사도 자주 하고 하고 입안 점막이 벗겨지면서 구내염이 발생한다.
이러한 독성은 두 약제 공히 나타날 수 있는 독성이라, 사실 별로 좋은 조합이 아니다. 독성이 겹치는 용법은 환자들이 약을 수용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아직까지 타이커브와 조합해서 쓸 수 있는 약으로 입증된 약은 젤로다 뿐이다.

그러니까
유방암은 좋아지는데
삶의 질이 나빠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 환자도 치료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발이 많이 붓고 손발톱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난 번 외래 왔을 때에는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늘 처방하는 연고와 로션, 그리고 설사약을 드리면서
"잘 견디세요"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늘 온 환자, 별로 불평이 없고, 얼굴 표정이 환하다.
대개 외래 진료실 들어오는 순간,
환자 안색을 보면 환자가 지난 한 주기 동안 어떻게 지나셨는지 알 만한데,
이번 주기는 괜찮으셨나 보다.
'이 약제조합이 그리 만만치 않았을텐데, 표정이 밝으시네? '라고 생각하며 여쭙는다.

"잘 지내셨어요? 지난번보다 수월하셨나봐요?"
"응, 발이 많이 편해졌어."
"노하우 좀 알려주세요. 어떤 비법을 쓰셨나요?"
"아들이 밤 마다 발 마사지 해줬어.
각질 일어나는 발뒷꿈치 부위는 맨솔레담 로션 발라주고, 다리 붓는다고 마사지 매일 해주니까 훨씬 낫네. 발톱 일어나는 것도 연고 바르며 관리하니까 많이 좋아졌어. 밤마다 다리에 뭔가를 해주더라고"
"제가 사진 좀 찍어도 되요? 얼마나 좋아졌는지?"
"응 찍어."

양말을 벗는 환자를 지켜보는데
신발이 크록스다.

"크록스 신으셨네요?"
"응 폼은 안나도 이거 신으니까 발이 훨씬 편하고 좋네. 며느리가 크록스 사 신으면 발 편할거라며 이십만원 줬어."
"크록스가 그렇게 비싸요?"
"싼 거 사서 신었더니 별로 편한지 몰랐는데, 6만 5천원짜리 신어보니까 좋더라고. 그래서 며느리가 준 돈으로 두개 샀지."

가족의 사랑과 관심으로 좋아지셨구나...
전이성 유방암으로 2년째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할머니. 젤로다 때문에 얼굴이 좀 까매지기는 했지만, 혈색도 좋고, 생기도 있고, 썩 어울리는 가발을 쓰고 다니시니, 누가 항암치료 중인 전이성 유방암 환자라고 생각할까 싶다.

궁극적으로 생존기간이 몇개월 늘어났는가의 양적인 개념으로는 포착되지 않지만
양질의 치료를 받고
가족의 지지속에 존재의 자긍심을 잃지 않고 이렇게 사실 수 있다면
일단은 성공적인 치료를 받고 계신 것 같다.

치료약제는 의사가 결정하지만
환자를 도와주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질병체계 내에서 가족의 지지구조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매일 발 맛사지를 하는 아들.
시어머니에게 이십만원의 용돈을 드리는 며느리.
결코 넉넉한 형편이 아닌데도, 투병중인 어머니를 위해 시간과 노력과 관심과 사랑을 투자하는 자녀들이 눈물겹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크록스 인기에요. 병원에서도 많이 신구요. 할머니, 패션의 첨단을 걸으시네요."
"그래? 난 모양이 좀 투박해서 별론데, 요즘 젊은 사람들 신기하네." 하시면서도 싫은 눈치는 아니다.

근데, 겨울에는 크록스 구멍이 숭숭 뚤려서 발시려울텐데 어떻게 하지?
젤로다 용량을 감량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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