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나도 아프고 가족도 아프고

슬기엄마 2011. 10. 1. 09:56

40대 후반의 환자.
첫 유방암은 2003년.
2006년에 뼈로 재발했다. 
2008년에는 반대쪽 유방에도 암이 생겨서 수술했다.
지금은 뼈에만 병이 있는 상태.
재발한 시점부터 따지면 5년이 넘는다.
젤로다 먹는 약 한가지로 치료한지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까지 큰 변화없이 잘 유지하고 계신다.
가끔 허리가 아프긴 했었는데 최근에 더 아프다고 한다. 한주기만 더 치료해보고 사진찍고 약을 유지할지, 방사선치료를 할지 결정하기로 했었다.
그러던 그녀가 당분간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한다.

선생님 항암치료를 좀 쉬어야 겠어요.
왜요? 요즘 허리가 더 아프다면서요? 사진찍어보고 필요하면 방사선 치료하려고 했었는데...
지금 무슨 검사를 더 하고, 나 좋아지겠다고 약 먹고 할 정신이 없어요.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남편이 심장병 수술을 해서 지금 중환자실에 있어요. 집도 팔려고 내놨구요. 차상위 계층 신청을 해서 의료급여로 전환해야 할 것 같아요. 오늘도 사실 진단서 떼러 왔어요.
암환자는 5%만 내면 되니까 돈 많이 안들잖아요. 치료는 유지했으면 해요.
당장 하루하루 진료비 낼 돈도 없어요. 먹고 살 것도 없어요.
애들은 고1 고3인데..

시회복지팀에 문의했더니, 경제력 있는 -그러나 지금은 전혀 없는데- 남편이 있고 자기 집이 있어서 당장 지원은 어렵다고 한다. 임상연구도 마땅히 들어갈 수 있는 치료법이 없다.

일주일만에 환자가 또 왔다.
진단서 다시 떼려고 왔어요. 진단서에 무슨무슨 내용이 들어가야 한대요.
환자가 얼마나 비참하고 힘든지를 증명해야 의료급여 적용대상자가 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구절구절 근거가 될만한 치료과정을 다 써야 도움이 된다고 잘 써달라고 한다. 환자를 두번 죽이는 것 같다.


이번에 처음 유방암을 진단받은 50대.
외과에서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위해 종양내과 외래로 오셨다.
유방에 있는 암의 크기는 1cm 도 채 안되었고 수술 전 영상검사에서 겨드랑이 림프절은 보이지 않았다. 수술 당시 수술장에서 나간 겨드랑이 생검 림프절도 음성이었다. 그런데 수술 검체 전체를 다시 리뷰하여 나온 최종 리포트에, 겨드랑이 림프절이 4개가 양성인 것으로 보고 되었다. 즉 겨드랑이 림프절까지 전이되었다는 뜻이다.
환자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의학적으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수술 검체에서 최종 병리 리포트까지 나와야 비로소 환자에 대한 최종적인 병기가 결정된다. 처음에는 1기 초인줄 알았는데, 최종 결과는 3기가 되었다.
이런 경우
환자는 처음 얘기들었을 때보다 점점 병기가 점점 높아지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고
병원의 치료에 일말의 의심을 갖기 마련이라 설명을 잘 해주어야 한다.
나는 환자의 진단과정과 의미, 예상되는 치료과정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런데 설명을 듣는 환자의 얼굴은 단지 의구심을 갖는 그런 표정이 아니었다.
저 지금 꼭 치료 받아야 하나요?
왜요? 치료를 받기 어려운 형편이 있으신가요?
아들이 3년째 세브란스병원에서 대장암 치료를 받고 있어요. 계속 재발해서 오늘 PET-CT 찍어보고 방사선치료를 할지 항암치료를 더 해야할지 결정하기로 했어요. 오늘도 PET-CT 찍는 날이라 거기에 맞춰서 제 외래를 잡은거에요.
아들이 병원에 올 때만 자기도 병원에 올 수 있고
아들 수발을 해야 하는데 자기까지 항암치료를 받고 힘들어 하면 아들은 누가 돌봐주겠냐며 당신 치료는 별로 안중에 없으시다.
재발한지 3년이면 아마 이제 효과적인 약제도 없을텐데...
유방암 항암치료에 대해 더 이상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아들 ID가 어떻게 되나요? 저도 좀 보겠습니다.
엄마 치료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 아들 상태도 알아야 할 것 같다.
림프절 4개면 꼭 항암치료를 해야 하는데, 그것도 6개월, 그리고 나서 방사선치료도 해야 하는데, 그걸 다 안하면 재발율이 많이 올라가게 될 텐데... 이런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신 것 같다.

눈물이 다 마른 줄 알았는데, 나올 눈물이 남았네요....


우리나라는 복지 시스템이 아직 취약해서
가족 중에 큰 병을 앓는 환자가 생기면 시스템적인 차원에서의 지원보다는 일차적으로 가족의 책임, 그리고 가족 부양자의 헌신이 필요하다.
일차적인 부양자는 대개 엄마다.
그런 엄마가 아프고
엄마가 돌보아야 하는 가족도 아프고
그런 엄마를 진료하는 나도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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