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206

사랑

나이 많은 할아버지 폐암으로 항암치료를 받으셨다. 할아버지 곁에는 나이가 훨씬 젊은 할머니가 계셨다. 아마도 둘째 부인이신것 같다. 자식들은 잘 나타나지도 않고 병원에 오면 그 할머니를 구박하는 눈치다. 재취라고 어머니 대접을 잘 안하는 것 같다. 할아버지 돈을 보고 두번째 부인이 된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다. 살림도 별로 여유롭지 않다. 병원에 입원하면 집에서 농사지은 고구마, 쌀, 콩 그런 걸 선물로 주셨다. 할아버지는 폐암으로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마지막을 할머니가 지켰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할머니가 불현듯 전화를 하셨다. 제가 최선을 다 한 걸까요?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못한 건 없나요? 선생님이 보시기에 어땠나요? 그러고 보니 돌아가신지 1년쯤 되었구나 싶다. 할머니..

모범환자 7호 - 이렇게만 하면 못할일이 없겠어요!

환자는 본인의 평소 백혈구 수치가 정상범위 중에서 낮은 경계에 해당하였다. 재발 후 지금 쓰는 항암제는 젬자와 나벨빈 두가지 병용요법이다. 이 두 약제의 특징은 구토나 기타 등의 증상으로 인해 환자를 힘들게 하지는 않는데 환자 컨디션이 좋은 것에 비해 백혈구 수치가 잘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멀쩡한 컨디션으로 기분 좋게 병원에 왔다가 피검사 결과가 나와 외래를 보게 되면 느닷없이 한주간 쉬자는 말을 듣게 되어 환자들이 많이 속상해한다. 항상 깔끔한 외모, 단정한 옷차림, 단정한 화장과 헤어드라이까지. 그렇게 예쁘게 하고 병원에 오신다. 한주일 쉽시다 선생님, 저 컨디션 좋은데 그냥 항암치료 하면 안되나요? 저 빨리 치료하고 좋아지고 싶어요. 그러니까 주사 맞게 해주세요. 백혈구 촉진제 맞고 항암치료 ..

가족을 한번 만나볼까요?

58세 여자 환자. 유방암이 재발한 지 벌써 4년이 넘었다. 뇌로 전이된 것도 2년이 넘었다. 환자는 늘 혼자 병원에 다닌다. 그리고 항상 불평불만이 많다. 왜 기침이 안 멈추냐? 폐에 병이 있어서 그래요. 일단 증상이 좀 가라않도록 약을 처방해 드릴께요. 코데인? 그거 먹어도 낫지도 않아. 처방하지 마. 집에 많아. 항암치료는 언제까지 할거냐? 지금 치료약에 반응이 좋은 편이니까 당분간 유지할 생각이에요. 별로 독성도 없잖아요. 언제까지 치료할 거라고 단정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병이 나빠질 때까지 이 약으로 치료하다가 나빠지면 다른 약으로 바꾸는 거라고 몇번 말씀드렸지만 별로 염두에 두시지 않는 것 같다.) 왜 이렇게 검사는 자주 하냐? 최소한 3개월에 한번은 해야 되요. 무엇보다 약을 쓰면서 환..

첫 만남의 중요성

오늘 입원한 환자. 염증성 유방암이다. 이미 간이나 뼈에도 전이가 되었다. 환자는 증상이 전혀 없다. 수술을 위해 검사를 하다보니 전이가 발견되었다. 수술할려고 병원에 왔는데 별 설명없이 검사를 잔뜩 하고 나서 외래에서 나를 만나게 된 가족. 왜 수술 안하고 내과 진료를 보게 되었냐고 공격적으로 질문하기 시작한다. 두 아들은 약간 화가 나 있고 검사 결과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듣기를 원한다. 처음 본 나에게 너무 많은 질문을 한다. 사진을 보여드리기는 했지만 환자도 그렇고 자식들도 별로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그래서 입원하기로 했다. 외래에서는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다. 4기 전이성 유방암, 그중에서도 염증성 유방암은 특히나 예후가 매우 좋지 않다. 평균 수명을 넘기기 어렵다. 항암제 반응도 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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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버님이 모두 목사이신 젊은 여자 환자 DNR을 받고 왔다. 보호자 설명하다가 나도 눈물이 났다. 전이성 암환자의 죽음은 내 생활과도 같은데 매번 쉽지 않다. 오늘 오전에는 회진 시간에 한분이 돌아가셨다. 상태가 아주 나쁘기는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은 나도 몰랐다. 가족들은 임종을 준비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분노하셨다. 나는 저승사자처럼 죽음의 시간을 잘 예측한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한계가 많다.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고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care에 부족함이 많기 때문에 가족의 입장에서는 의사와 병원에 서운한 것도 많다. 나는 그냥 그들의 분노를 그냥 받아들인다. 많이 설명하지는 않는다. 요즘 부쩍 임종이 많다. 매번 나는 최선을 다했는지, 어떤 부족함이 있었는..

다시 힘을 내는 환자들

양측성 유방암, 난소암 치료를 받은 아내를 위해 남편은 잘 나가는 서울 직장 생활을 접고 지방으로 이사가셨다. 아내는 난소암 치료가 끝난지 2년이 채 안되었는데 이번에 재발되었다. 전화로만 재발 소식을 들은 남편이 입원에 맞춰서 환자와 함께 서울로 올라오셨다. 난 사진을 보여드리고 정황을 설명하였으며 앞으로 검사 및 치료 계획에 대해 설명하였다. 남편은 꼼꼼히 많은 것들을 물어보았지만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는 나에게 잘 부탁한다고, 꼭 살려달라고 내 손을 꼭 잡으신다. 꼭 살려주세요. 선생님. 이미 많이 우셨는지 충혈된 눈. BRCA1 유전자 변이가 있는 환자. 이 환자의 질병 진행 코스는 교과서적으로 예상되어 있는 바 대로다. 그러나 전신전이가 없는 난소암 재발, 아직 완치의 희망을 놓기에는..

나도 Genome sequencing?

2000년 3월 2일 사회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의대로 편입하여 첫 수업을 들었다. 생화학. 예과2년을 마치고 본과로 진입한 동기들은 잔뜩 긴장하여 한학기 세포학 수업을 세시간만에 끝냈다며 수업이 너무 빡세다고 툴툴거렸지만, 나는 어리둥절할 뿐이다. 도대체 뭔 소리여? 산발적인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지식들이 마구 쏟아졌지만, 정작 나는 그들의 실체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옆에 앉은 동기에게 물어본다. 이게 다 뭣이여? 세포안에 있는 것들이죠. 세포는 핵이랑 인으로 구성된거 아니여? 뭐가 이렇게 많아? 고등학교 때 생물 안 배웠냐며 나를 비웃는듯한, 어이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회학을 공부할 때는 일단 전체 틀거리를 파악하고 그러한 관점을 유지한 채 지금 내가 주목하고 있는 사실들의 의미를 찾도록 훈련..

좋은 연구결과를 보고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이렇게 탁월한 효과가 입증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이런 약을 쓸려면 과연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요?" 학회장에서 만난 다른 병원 선생님의 안타까운 코멘트였다. 세계적인 규모의 학회가 열리는 곳에서는 환자를 보는 의사라면 누구라도 그 효과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데이터가 발표되는 순간, 모두가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보내는 일이 가끔 있다. 이런 일이 자주, 매년 있는 것은 아니다. (드물게는 그런 연구 성과가 몇년 후 반복적인 연구에서 결과가 번복되기도 하지만) 약제의 기전을 고려했을 때, 연구 과정이 과학적으로 타당했을 때, 기존 치료방법에 비해 탁월한 효과가 인정될 때 연구자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그 박수는 연구자를 향한 것이 아니라, 그 효과를 치료적 이득을 보게 될 우리 환자들을 위한 것이다...

뼈주사를 맞는 분들께

이번 학회 초반에는 Bisphophonate 그중에서도 zolendronic acid 에 대한 연구가 눈에 많이 띕니다. zolendronic acid의 상품명은 Zometa 이며 환자들도 조메타라고 잘 알고 계시는 약입니다. 상품명은 몰라도 뼈 전이가 있는 분들은 항암제 맞을 때 뼈주사를 같이 맞는다고 알고 계실 텐데요 그 뼈주사가 바로 조메타 혹은 파노린입니다. 이 약제는 원래 골다공증 치료제로 개발되었습니다. 그런데 원래 의도치 않았던 효과, 즉 이 약이 암세포를 제거하는데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침으로써 재발방지, 질병진행 방지, 생존기간 연장 등의 치료적 성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보다 확고하게 입증하기 위하여 현재 다양한 임상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 학회에서도 ..

김치

그녀는 유방암 수술 후 3년만에 폐로 전이가 되었다. 폐로 전이된 병변을 확인하기 위해 조직검사를 했었는데 그때는 폐 병변이 작았다. 그런데 그 때 무슨 연유에서 였는지 치료를 받지 않고 퇴원하였다. 그 뒤로 우리 병원에 안 오셨다. 그 후 1년이 넘게 시간이 지났는데 자꾸 기침하는 증상이 생겨서 다시 병원에 오셨다. 그리고 다시 찍은 CT에서 폐전이가 진행된 것이 명확하여 추가적인 조직검사 없이 나에게 협진 의뢰가 되었다. 환자에게 아주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하는 임상연구가 있어서 설명을 드렸는데 무조건 하지 않으시겠다고 했다. 그리고 항암치료도 받지 않으시려고 했다. 나는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여 겨우 승낙(!)을 받고 일반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매번 단순 폐 엑스레이만 찍어도 병이 호전되고 있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