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첫 만남의 중요성

슬기엄마 2011. 12. 25. 15:49

오늘 입원한 환자. 염증성 유방암이다. 이미 간이나 뼈에도 전이가 되었다.
환자는 증상이 전혀 없다.
수술을 위해 검사를 하다보니 전이가 발견되었다.
수술할려고 병원에 왔는데 별 설명없이 검사를 잔뜩 하고 나서 외래에서 나를 만나게 된 가족.
왜 수술 안하고 내과 진료를 보게 되었냐고 공격적으로 질문하기 시작한다.
두 아들은 약간 화가 나 있고 검사 결과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듣기를 원한다.
처음 본 나에게 너무 많은 질문을 한다.
사진을 보여드리기는 했지만
환자도 그렇고 자식들도 별로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그래서 입원하기로 했다. 외래에서는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다.

4기 전이성 유방암, 그중에서도 염증성 유방암은 특히나 예후가 매우 좋지 않다.
평균 수명을 넘기기 어렵다. 항암제 반응도 별로 좋지 않다.
앞으로 예상되는 코스, 항암치료의 원칙 등을 설명한다. 사진도 꼼꼼히 다 보여드리고 설명하였다.

간에 전이가 되어 있으니, 항암치료 기간 중에는 다른 보조식품을 드시면 안좋을 것 같다,
팔이랑 흉추에 전이가 되어, 필요하면 방사선 치료를 병행할 수도 있겠다,
2주기 정도 하고 CT를 찍을 예정이지만, 겉으로 유방을 보기만 해도 약제 반응성을 판단할수도 있겠다,
항암제를 자꾸 바꾼다는 것은 그만큼 약제 민감성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좋지 않은 싸인이다,
항암치료는 외래에서 진행하지만, 상태가 나빠지면 입원할 수 있다, 가능하면 주기적으로 외래 왕래하시고 일상생활을 유지하실 수 있게 도와드리는 것이 항암치료다, 
최선을 다해 치료하겠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항암치료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면 그때 다시 말씀드리겠다,
뭐 그런 이야기를 쭉 해드렸다.

아들들은 그런 나의 설명을 다 들으시고 몇가지 질문을 더 하신다.
우리는  차분히 그런 문제를 논의하였다.
처음의 공격적인 분위기는 없어졌다.
다만 이제 치료를 시작하는 마당에 환자에게 모든 것을 다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요청하신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

처음 병을 진단받았을 때
환자와 가족들에게
이런 정도로 충분한 설명을 해 드리면
이후 외래에서 진행되는 검사와 치료 과정이 순탄하다.
가족들이 나를 믿어준다. 이렇게 한번 관계가 형성되면 이후 외래에서 별 설명없이 치료가 진행되어도 지금 상황이 별 탈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상의할 문제가 생기면 나를 찾아 면담을 요청하고 설명을 들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초 한번의 설명으로 많은 걸 얻을 수 있다. 그것이 내가 환자를 입원시키고 가족들과 면담을 하는 주된 이유이다. 그 첫번째 만남이 중요하다.
그것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면, 사소한 일에도 의견이 합일되지 않고 소소한 마찰이 생긴다. 외래에서는 그걸 잘 해결하기 어렵다. 나를 믿어주는 것, 나도 가족의 요구를 충분히 파악하는 것, 그것이 첫 만남에서 얻어야 하는 항목들이다. 

지금 내가 진료하는 환자들은 손주혁 선생님이 진료하시다가 중간에 나로 주치의가 바뀐 경우가 더 많아서 그 최초 장면이 없다.
나와 그런 시간을 갖고 치료를 시작하는 환자와 가족은 그런 나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것 같다. 그래서 잘 참고 현명하게 요구한다. 그래서 그들이 무척 고맙다.
나는 내 환자를 부모님처럼 생각하고 진료하지 않는다. 모든 환자를 그렇게 진료하면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지치고, 때론 미워할 수도 있다. (많은 의사가 자기 가족에게 그러하듯이). 나는 이모나 고모정도로 생각하고 진료하려고 한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되 사촌에게 갖추어야 할 예의를 갖추며 애정을 갖는 정도. 평균보다 조금은 더 애정을 가지고 진료하는 것. 그것이 이모나 고모를 진료하는 마음 아닐까? 나는 평균보다 조금은 더 내 환자를 챙겨주고 싶다. 병원에 와서 너무 불편하지 않게, 치료받는 과정이 너무 힘들지 않게, 그래서 때론 서로에게 조금 섭섭해도 이해해주는 그런 관계 말이다. 
내 환자들은 대부분 그런 내 마음을 잘 이해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때론 외래를 볼 때 내 현실을 잊고 외래로 도피하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환자와 그런 교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당분간은 요령없이 이렇게 시간을 쓰려고 한다. 환자가 VIP 이건 시골 할머니이건 첫 만남에서 이렇게 설명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설령 환자가 내 설명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