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측성 유방암, 난소암 치료를 받은 아내를 위해
남편은 잘 나가는 서울 직장 생활을 접고 지방으로 이사가셨다.
아내는 난소암 치료가 끝난지 2년이 채 안되었는데 이번에 재발되었다.
전화로만 재발 소식을 들은 남편이 입원에 맞춰서 환자와 함께 서울로 올라오셨다.
난 사진을 보여드리고 정황을 설명하였으며 앞으로 검사 및 치료 계획에 대해 설명하였다.
남편은 꼼꼼히 많은 것들을 물어보았지만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는 나에게 잘 부탁한다고, 꼭 살려달라고 내 손을 꼭 잡으신다. 꼭 살려주세요. 선생님.
이미 많이 우셨는지 충혈된 눈.
BRCA1 유전자 변이가 있는 환자.
이 환자의 질병 진행 코스는 교과서적으로 예상되어 있는 바 대로다.
그러나 전신전이가 없는 난소암 재발, 아직 완치의 희망을 놓기에는 이르다.
재발되었지만 또 치료 가능성이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필요한 검사 다 하고 열심히 치료하자고 설명했지만 환자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학원을 운영하는 남편은 내 설명을 듣고 밤차로 내려가셨다.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내려간다고, 아내를 잘 부탁한다는 말씀을 남기고.
나는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되면 전화로 연락드리겠다고 하고 남편을 보내드렸다.
나는 오늘 오후 외래를 보고 나서
신경외과 컨퍼런스에 들어가 내내 졸았다.
외래 후유증이다. 너무 피곤했다. 외래를 다 보고 나면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지쳐서 병동으로 걸어오는데 계단을 오르내리며 운동하고 있는 환자가 보인다.
오늘 검사 잘 하셨어요?
네, 별로 아프지 않고 컨디션 괜찮아서 운동하고 있어요.
운동할만큼 마음이 좀 풀리셨나봐요.
네, 어쩌겠어요. 저 열심히 치료할께요.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
환자가 어색한 듯 나에게 웃으며 말한다.
남편을 집으로 내려보내고 밤새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셨을까. 다시 하고 싶지 않았던 재입원, 그 첫날밤을 제대로 주무시지도 못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새로운 출발을 결심한 것 같다.
그 마음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지친 내 마음에도 활력이 생기는 것 같다. 흐뜨러진 내 몸과 마음의 매무새를 다잡게 된다.
환자들은 내 앞에서 약해지고 무너지고 실망하고 화내는 모습을 보이지만
또 다시 오뚜기처럼 일어선다.
그리고 다시 치료에 도전한다.
다시 힘을 내는 환자들, 나는 그들을 마음으로 깊이 존경한다.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돕고 싶은 마음이다. 한계는 많지만.
자신의 존재를 걸고 다시 일어서는 그들을 위해
나도 하루하루 새로운 결심을 하고 환자를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월요일이지만 벌써 폭풍처럼 많은 일이 지나갔고
나는 환자 보는 일 말고도 다른 많은 일을 해야 한다.
그래도 푸념할지 말지어다. 나는 의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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