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모범환자 7호 - 이렇게만 하면 못할일이 없겠어요!

슬기엄마 2012. 1. 6. 22:19

환자는
본인의 평소 백혈구 수치가 정상범위 중에서 낮은 경계에 해당하였다.
재발 후 지금 쓰는 항암제는 젬자와 나벨빈 두가지 병용요법이다.
이 두 약제의 특징은
구토나 기타 등의 증상으로 인해 환자를 힘들게 하지는 않는데 
환자 컨디션이 좋은 것에 비해 백혈구 수치가 잘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멀쩡한 컨디션으로 기분 좋게 병원에 왔다가
피검사 결과가 나와 외래를 보게 되면 느닷없이 한주간 쉬자는 말을 듣게 되어 환자들이 많이 속상해한다.

항상
깔끔한 외모, 단정한 옷차림, 단정한 화장과 헤어드라이까지.
그렇게 예쁘게 하고 병원에 오신다. 

한주일 쉽시다

선생님, 저 컨디션 좋은데 그냥 항암치료 하면 안되나요?
저 빨리 치료하고 좋아지고 싶어요. 그러니까 주사 맞게 해주세요.
백혈구 촉진제 맞고 항암치료 하면 안되나요?

지금 이 수치로 항암치료를 하거나
일시적으로 백혈구 촉진제를 써서 올리고 난 다음 항암치료를 하면
다음주에 더 많이 떨어져서
골수기능이 회복하는데 점점 시간이 오래 걸려서 안되요. 쉬는게 정답입니다.

항암치료 하려면 백혈구가 몇개가 되어야 하나요?

전체 백혈구 보다는 그 중에 염증작용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호중구 수치가 중요한데요,
문헌에 따라 다르지만 1500개가 넘어야 한다는 근거도 있고 1000개만 넘으면 된다고 하는 근거도 있어요. 환자 컨디션이 괜찮으면 저는 1000개 넘으면 항암치료 합니다. 오늘은 600개 밖에 안되니까 쉬어야 겠어요.

어떻게 하면 백혈구 수치를 올릴 수 있나요? 누구는 닭발을 많이 먹으면 좋다고 하는데.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에는 동물성 단백질을 먹으게 회복에 도움이 됩니다. 고기를 좀 드셔요.

전 원래 육식 안먹는데...고기를 먹으면 오히려 속이 울렁거려요.

조리 방법을 다양하게 하시고 고기 종류는 상관없으니 이것저것 시도해보세요. 환자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은 그렇게 영양상태를 좋게 하는 것 밖에 없어요.

환자는 이렇게 몇번 퇴자를 맞고 집으로 돌아갔었다.

그러던 그녀가 최근 한두달 사이에 거뜬하게 백혈구 수치가 회복되어 외래에 오고 계신다.

요즘 고기 좀 챙겨드시나봐요? 백혈구 수치가 잘 회복되었네요.

환자가 눈물이 글썽글썽한다.

제가 지금 고기먹는 노력을 생각하면 세상에 못할게 없을거 같아요.
이 노력을 하면 지금이라도 시험쳐서 서울대도 갈 수 있을거 같아요. 정말 열심히 고기 챙겨먹고 있습니다. 하루에 최소한 한끼는 먹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살도 좀 찌네요. 하지만 고기 먹는거 너무 힘들어요. 항암제 맞는거 보다 고기먹는게 더 힘들 지경이에요.

갑자기 마음이 너무 안쓰럽다. 표정이 드러날까봐 우스개 농담이라도 해야할 지경이다.

전 고기 완전 좋아하는데. 그래서 성격이 포악해요. 우하하

(환자가 울먹거리다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오리고기 좋아하세요?

그럼요 전 뭐든지 좋아해요.


그녀가 오늘 오리고기를 잔쯕 팩에 싸서 사가지고 오셨다.

선생님은 항암치료 안하시지만, 그래도 고기 드시고 힘 내세요.

환자의 눈물겨운 노력. 그 정신에 나까지 챙기시고... 나도 눈물이 나려고 한다.
아직 림프절 전이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다음번 CT에서는 이들이 모두 소멸되어 버리기를 바랄 뿐이다.









'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 전이성유방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3) 2012.01.12
사랑  (0) 2012.01.10
가족을 한번 만나볼까요?  (2) 2012.01.03
첫 만남의 중요성  (13) 2011.12.25
...  (0) 2011.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