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많은 할아버지
폐암으로 항암치료를 받으셨다.
할아버지 곁에는 나이가 훨씬 젊은 할머니가 계셨다.
아마도 둘째 부인이신것 같다.
자식들은 잘 나타나지도 않고 병원에 오면 그 할머니를 구박하는 눈치다.
재취라고 어머니 대접을 잘 안하는 것 같다.
할아버지 돈을 보고 두번째 부인이 된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다. 살림도 별로 여유롭지 않다.
병원에 입원하면 집에서 농사지은 고구마, 쌀, 콩 그런 걸 선물로 주셨다.
할아버지는 폐암으로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마지막을 할머니가 지켰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할머니가 불현듯 전화를 하셨다.
제가 최선을 다 한 걸까요?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못한 건 없나요? 선생님이 보시기에 어땠나요?
그러고 보니 돌아가신지 1년쯤 되었구나 싶다.
할머니는 울먹울먹 하신다.
오늘이 할아버지 기일이라 혼자서 소주 한잔 드시고 옛생각을 하다가 내 생각이 났나보다.
나에게 당신이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전화하신 것 같다.
그것이 사랑인것 같다.
저녁에 중환자실에 다녀왔다.
유방암 재발 후 첫 항암치료를 했는데, 갑작스러운 폐렴으로 중환자실에 들어온 지 1주일째.
재발 당시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아서 항암치료의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 어려웠다.
폐렴으로 치료시기도 지나가고 있다.
종양표지자 수치도 급격하게 증가하고
가슴 사진에서 폐렴도 급속도로 나빠진다.
동정되는 균주가 없으니 항생제, 항진균제, 항바이러스제 등 폐렴을 커버할 수 있는 모든 약제를 쓰고 있지만 호전이 없다. 암이 콘트롤되지 않으니 면역력도 약화된것 같다. 소변량도 줄고 신장수치도 증가하기 시작한다. 기계호흡기 역할도 점점 커지고 있다. 콧줄로 식사를 대신하여 영양캔 음료를 투여하고 있는데, 자꾸 역류한다. 장운동도 떨어지는것 같다. 여러모로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
그런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가족들을 만났다. 사진도 보여드리고, 내가 예상하는 코스를 말씀드렸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나빠질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한다고. 투석을 하게 될 상황이 되면 다시 설명드리겠지만, 투석의 이득을 별로 보지 못할 것 같다고....
그렇게 가족의 가슴에 못을 박는 설명을 하는데
가족들은 실날같은 희망이라도 놓칠 수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달라고 한다.
기계호흡을 하는 환자들만 있기 때문에 중환자실은 늘 조용한데, 주위가 시끌벅적하다. 면회시간이 되었구나.
인공삽관 상태에 있는 중환자실 환자를 가운데 두고 가족들이 누구야 사랑한다, 누구야 꼭 일어나라 그렇게 소망을 빌고 환자를 격려하고 있다. 환자는 진정제, 진통제로 푹 자고 있는 상태라, 누가 옆에서 말을 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상태이다. 그걸 알면서도 가족들은 환자의 손을 꼭 잡고, 옆에서 계속 환자에게 말을 건다. 힘 내라고, 사랑한다고, 이겨내서 여길 나가자고.
그것이 사랑인것 같다.
참으로 가슴아픈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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