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제 효과가 좋았다.
유방의 종괴 크기도 많이 줄었고
폐로 전이된 병변도 거의 흔적이 없다.
이제 더 좋아질 게 없는 것 같은데도 CT를 찍어보면 계속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항암제 효과가 좋은 그녀는
독성도 그만큼 심하게 겪고 있다.
그녀가 적어오는 수첩은 그녀의 투쟁기다.
그녀는 매주 병원에 오는데
그때마다 수첩에 자신의 생활, 증상, 고민 이런 걸 잘 적어온다.
가끔 나는 빨간 볼펜으로 수첩에 코멘트를 남겨준다. 약 이름, 약 설명, 걱정말라는 OK 그런 기록들.
감기
요로감염
발톱염증과 진물
피부 트러블
손발 저림
백옥같던 피부가 먹는 항암제 먹고 엉망이 되었다. 예쁜 얼굴. 이제 화장도 잘 안한다. 트러블 때문에.
키크고 날씬한 그녀가 발톱에 생긴 염증 때문에 이제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심할 때는 다리를 절뚝절뚝 거리고 외래에 나타나기도 한다.
그녀는 항암제의 효과와 독성 모두가 민감하게 나타나는 체질이다.
그녀는 머리로는 이런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도 마음으로는 그걸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나에게는 내색하지 않는다. 그녀는 내 앞에서 한번도 울지 않았다. 아이 학교 바래다주러 가는게 힘들어서 속상하다는 말만 내비쳤다. 울먹울먹한것 같아 나도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반대쪽 유방에서 뭔가가 만져지는 것 같다고, 목에서도 뭔가 만져지는거 같다고, 겨드랑이가 따끔따끔 거리는 거 같다고, 마음의 두려움이 눈동자에 반영된다. 한달전에 CT찍었을 때 괜찮았다고 그래도 초음파 해보자고. 나는 그녀 마음의 두려움을 몰아내주고 싶었다. 다행히 검사마다 별 이상이 없었다.
항암제 용량을 감량했는데, 감량한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훨씬 수월하다고 한다. 치료 효과가 좋으니 마음 속으로 용량감량을 미루고 싶었나 보다. 잘 견디고 있다고 생각해서 감량을 안했는데, 한단계 감량으로 많이 편안해한다.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내가 너무 욕심부리고 있었나보다.
머리카락이 다시 나기 시작한다며 걱정을 한다.
머리카락이 자라면 암세포도 다시 자라는거 아닌가요?
아니오 그렇지 않아요.
머리카락 자라는 거 보고 너무 걱정하고 있었어요.
머리카락이 자라기는 해도 시원치 않을거에요. 금방 다시 빠질텐데...
아니에요 선생님 꽤 많이 자랐구요 빠지지 않고 잘 붙어있어요.
다행이네요. 다시 원래대로 스타일 가꾸시면 되겠네요.
기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그래요.
머리 많이 자랐으면 다음에는 가발 말고 진짜 헤어스타일 보여주세요
항암제 독성 때문에 너무너무 힘들어하면서도
내가 8차 치료까지 하고 항암제 중단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하니 불안하다고 한다.
이번에 사진 찍어보고 효과가 계속 좋게 유지되고 있으면 참고 맞겠다고 한다.
손발이 부르트고 물집도 여러번 잡히고 발톱도 빠지기 직전이다. 치료가 반복되면서 피곤함도 더해진다.
선생님, 효과가 좋으면 참고 맞을거에요
단호하게 한마디 하고 진료실을 나간다.
화장하지 않아서 약간 푸석해보여도
긴머리 자르고 짧은 가발을 쓰고 다녀도,
더이상 멋진 정장 스커트가 아닌 색바랜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다녀도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젊음의 에너지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나에게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고 꿋꿋하게 병원을 다닌다.
두 아이의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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