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206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업무상, 일 때문에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을 때 누군가는 나에게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그런 메시지를 덧붙인다. 난 그럼 마음 속으로 '내 일을 할 수 있는 시간, 공부할 시간은 주말밖에 없는데 과연 행복하게 잘 보낼 수 있을까? 할 일 너무 많은데..." 그런 썩은 미소를 스스로에게 보낸다. 주중에는 내 시간이 전혀 없다. 어제도 밤 9시가 안되서 병원에서 잠이 들었나 본데 눈을 떴더니 아침 6시였다. 쌓인 피곤이 회복이 안되나 보다. 그래서 난 그런 문자를 받으면 내심 나에게 씁쓸한 미소를 날리게 된다. 저녁이면 오늘 외래보다가 혹은 회진돌다가 마음속에서 뭔가 해결이 안된 환자 unit number 적어놓은 메모종이를 펼쳐놓고 한명씩 한명씩 다시 EMR을 열어본다. 자료도 찾아본다. 엄마 상태가 ..

소변이 똑똑...

중환자실에 있던 두명의 환자가 일반병실로 나왔다. 두명 다 투석까지 했다. 4기 암환자가 중환자실에서 투석까지 할 정도로 상태가 나빴지만 잘 회복되어 일반병실로 나오면 나는 안타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무사히 잘 퇴원하고 이후 예정된 치료를 하게 되면 나는 홈런이라고 말한다. 이번에는 2타수 2안타인셈이다. 그리고 이들은 현재 홈런을 노리고 있다. 매일 아침 출근하자 마자 EMR을 열면 이들의 소변이 나오기 시작하는지를 확인하였다. 아침 피검사에서 신장 수치를 확인하고 환자 침대 옆에 쭈구리고 앉아 소변줄로 소변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지 한참을 지켜보았다. 백혈구 혈소판 수치를 보면서 회복의 가능성을 기원하였다. 응급으로 유방을 수술한 환자. 유방의 상처가 낫지 않고 거기서 시작된 염증 때문에 패혈성 쇼..

두달이나 늦게 조직검사를 해서 그런거 아닌가요?

제가 2달전부터 얘기했잖아요. 피부에 뭐가 났다고. 그래서 저도 초음파 검사해 본겁니다. 초음파 소견상 악성 소견같지 않으니 경과관찰 하라고 한거고 그래서 저도 매달 계속 피부 병변을 눈으고 확인하며 확인한 거구요. (어쩐지 변명같은 이 말투) 그녀는 기본적으로 성격이 예민했다. 예민해서 이런 저런 증상을 남들보다 더 많이 느끼고 힘들어했다. 외과에서 유방 성형수술에 대해 설명을 제대로 안해줬다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수술 전 항암치료, 수술, 수술 후 허셉틴을 맞는 치료 과정 중 다른 환자들에게는 별로 발생하지도 않는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 생겨서 너무너무 힘들어 했었다. 하필 내가 그 결과를 늦게 알려줘서 힘든 기간이 1-2주 정도 연장된 셈이다. 그래서 나에 대한 불신이 좀 있다. 그래서 나도 그..

그녀의 죽음을 기다리며

오늘 대한 암학회를 갔다. 토요일이지만 사람들이 많이 왔다. Next generation sequencing을 주제로 한 워크샵. 사실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 고차원적인 테크놀로지. 잘 만들어진 파워포인트도 보여주고 한국말로 강의하는데도 아주 생경하다. CT 한번도 과잉해서 찍지 말고 환자를 자세히 문진하고 시청타촉 각종 신체검사를 잘 해야 하고 무조건적으로 기계와 검사에 의존하기 보다는 의사의 진료 능력을 함양해야 한다고 배웠지만 시대가 변한걸까? 캐주얼한 복장으로 강의하는 발표자들, 병원에서 늘 보는 의사들의 모습과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임상의사가 아닌 자연과학 분야의 박사, 연구자들이다. 최소한 암 분야에서는 이제 그들이 진단과 치료의 주역이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유전자 연구..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려면...

할머니가 돌아가셨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다른 가족 면담을 하였다. 그들도 애타는 마음으로 지금 환자의 상태를 궁금해 하고 앞으로 치료계획이 어떤지 알아야 하니까. 가족들이 다 모여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의사가 시키는 대로 치료를 다 했는데도 왜 재발했는지. 왜 잘 유지되고 있다고 했는데 느닷없이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었는지. 세상에 좋은 항암제가 많이 개발되고 있다고들 하는데 우리 환자에서는 효과적인 항암제가 없다고 하는지. 환자와 가족들은 그저 나의 어려운 설명을 들을 수 밖에 없다. 나의 제안을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주치의이기 때문에 뭔가 치료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과학적 근거와 퍼센트, 가능한 시나리오를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는 치료가 많지는 않다. 그런 치료가 많다면 암으로..

결국 운명 아닌가요?

그녀와의 인연은 1년이 채 안되었다. 전이성 유방으로 진단받고 첫번째 약제 탁솔로 항암치료를 하는 중에 나를 만났다. 그녀는 만화도 그리고 시각 디자인을 하는데 탁솔을 쓰는데도 손발저림증을 이겨내며 작업을 계속 하고 있었다. 처음 쓴 탁솔을 잘 견디길래 조금만 더 쓰다가 호르몬제로 바꿀까 생각하던 차에 병이 나빠져 버렸다. 그래서 아드리아마이신을 포함한 약제로 변경하여 다시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그녀는 병이 좋아지기만 하는게 아니라 나빠지기도 한다는 걸 처음 경험하고서는 나에게 전이성 유방암의 예후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한다. 전 언제까지 항암치료 하는 건가요? 병이 나빠질 때까지요. 끝이 없네요. 엄밀히 말하면 그래요. 그래도 호르몬제로 바꾸면 항암효과, 치료적 효과는 있지만 독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부부

환자는 3년전 유방암 0기를 진단받았다. 유방암 0기는 이론적으로 재발되거나 전이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그런 경우가 있다. 아주 드물게. 이 드문 일이 이 환자에게 발생했다. 환자는 우리 엄마 또래시다. 당뇨 고혈압 심장혈관질환 병력이 있고 뇌경색으로 인해 왼쪽 팔다리를 잘 못 쓴다. 골다공증이 심한 환자는 지난 여름 집에서 넘어지면서 다리 뼈가 부러졌다. 부러진 다리에 대해 정형외과적인 수술을 하려고 입원했다가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폐 엑스레이에 이상소견이 관찰되었다. 일단 다리 쪽 수술을 하고 나서 폐에 대해서도 수술적으로 검사를 했다. (다리 수술 할 때 같이 했으면 좋았으련만 나에게는 수술 후 협진이 의뢰되었다) 이론적으로 폐로 전이되는 타입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것이 유방암 전이인지, 폐..

영혼의 간이역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위지안 글쓴이 위지안은 1979년생이니까 나보다 한참 어리다. 그녀는 중국 상해 출신으로, 중국에서 대학을 나와 노르웨이 오슬러 대학에서 환경과 생태학에 대해 공부하고 조국 중국에서 숲을 가꾸고 숲에서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여 보다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연구자가 되어 나이 30에 상해 푸단대학에 교수로 임용되었다. 푸단대학은 세계 100위 안에 드는 좋은 대학이라고 한다.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성공적으로 통제하며 살아온 그녀. 노르웨이에서도 신문배달을 하며 자기 힘으로 돈을 벌고 공부했던 그녀. 똑똑하고 잘난 그녀. 남편과 19개월된 아들이 있는 그녀. 이제 막 교수로 발령을 받은 그녀는 새벽 2-3시까지 연구하고 강의를 준비하는 맹렬여성이다. 환경을 위해 자전거로 출퇴근 하던 어느..

생명력

객관적으로는 나쁜 예후인자가 많은데, 사진을 보면 무시무시한데 겉으로 보면 멀쩡한 환자들이 있다. 누가 환자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퇴원을 시켰는데 아주 좋아져서 발걸음도 당당하게 병원에 돌아오시는 분들이 있다. 심지어 돌아가실 줄 알고 집으로 보내드렸는데 2년만에 감쪽같이 좋아져서 나타나시는 분도 있었다. (물론 호르몬제를 계속 드셔서 병이 억제된 면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좋아지기는 힘들다.) 사람의 일은 비단 나의 능력과 의지로 100% 예상할 수 없고 100% 맞출 수도 없다. 의사는 평균과 통계로 치료하지만 환자는 자기의 생명력을 바탕으로 치유된다. 나의 처방은 그러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치료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항암제 만으로 좋아지는 것 같지 않다. ..

기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항암제 효과가 좋았다. 유방의 종괴 크기도 많이 줄었고 폐로 전이된 병변도 거의 흔적이 없다. 이제 더 좋아질 게 없는 것 같은데도 CT를 찍어보면 계속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항암제 효과가 좋은 그녀는 독성도 그만큼 심하게 겪고 있다. 그녀가 적어오는 수첩은 그녀의 투쟁기다. 그녀는 매주 병원에 오는데 그때마다 수첩에 자신의 생활, 증상, 고민 이런 걸 잘 적어온다. 가끔 나는 빨간 볼펜으로 수첩에 코멘트를 남겨준다. 약 이름, 약 설명, 걱정말라는 OK 그런 기록들. 감기 요로감염 발톱염증과 진물 피부 트러블 손발 저림 백옥같던 피부가 먹는 항암제 먹고 엉망이 되었다. 예쁜 얼굴. 이제 화장도 잘 안한다. 트러블 때문에. 키크고 날씬한 그녀가 발톱에 생긴 염증 ..